[BS인터뷰] ‘승부’ 이병헌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기쁨 남달라”

바둑판 위, 돌 하나가 놓이는 순간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영화 승부의 이병헌 바둑 레전드 조훈현 9단을 연기한다. 고요한 세계 안에서 치열한 싸움을 풀어냈다. 승패를 넘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작품은 대한민국 최고의 바둑 레전드 조훈현(이병헌)이 제자 이창호(유아인)와의 대결에서 패한 후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다시 한 번 정상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병헌과 유아인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지난달 26일 개봉 이후 입소문을 타며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개봉 19일 만에 누적 관객수 170만 명을 돌파, 200만 관객을 향해 가고 있다.

 

마약 논란으로 활동을 중단한 일명 유아인 리스크로 촬영 종료 4년 만에 빛을 봤다. 주연 배우로서 마음의 걱정은 없었을까. 이병헌은 “이번에는 정말 신이 났었다. 우여곡절을 겪은 이 영화가 스크린을 통해 관객을 만난다는 것 자체로 행복했다. 그 사이 OTT(넷플릭스)로 간다는 얘기도 있었다. 확실히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스크린을 통해 보이는 것에 기쁨이 남다른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훈현 국수는 현역이다. 덕분에 캐릭터 분석에 도움을 받을 만한 자료가 방대했다. 이병헌은 실제 조훈현의 바둑 영상은 물론, 그가 과거 방송에서 남긴 말투, 눈빛, 자세까지 세밀히 분석했다며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것의 장점은 기대서 연기할 곳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외형적으로 참고할 자료가 정말 많았다”면서 “대신 어려운 점은 픽션보다 자유로움이 적다. 지금도 현역으로 계신 분이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기도 했다”라고 털어놨다.

 

가장 어려움을 느꼈던 장면은 제자 이창호에게 처음으로 패하는 순간이었다. 이에 대해 “자신이 데리고 와서 키우고, 먹이고, 가르쳐준 제자와 같이 결승에 올라온 것도 마냥 웃을 수 없는 감정이다. 실제 조 선생님도 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시더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경기에서 진 후 느껴지는 당혹감은 상상 이상의 것이라 생각했다. 자존심도 상하고, 충격도 받고, 상실감도 느끼고 말이다.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이라고 봤다. 나중에 이 장면을 다시 찍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욕심이 났다”고 설명한다.

 

승부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믿기 어려울 만큼 드라마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훈현과 이창호. 스승과 제자이자, 한집에 살던 두 사람이 결국 결승전에서 맞붙고, 스승이 제자에게 지고, 다시 경기로 맞붙는다. 이병헌 역시 “이게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아침에 한 집에서 일어나 같은 차를 타고 대국장에 도착해서, 마지막 상대가 되는 거잖나. 심지어 경기 후 집에서 다시 또 만나야 한다. 그 긴장감은 말로 설명이 안 된다고 봤다”라고 처음 시나리오를 접했던 때를 돌아봤다.

 

이창호 역을 맡은 유아인은 프로포폴과 대마 등 마약을 상습 투약한 혐의로 법정 구속돼 재판을 받았고, 지난달 18일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받아 풀려났다. 유아인과의 호흡에 대해서는 “이창호 국수는 돌부처 같은 인물로 유명하다. 무덤덤하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빛과 말투를 표현한 것이 대단했다.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서인지 촬영 현장에서 내내 과묵하더라”라고 전했다. 

 

“기약 없이 개봉을 기다려야 할 때는 아쉬움이 있었다”다는 이병헌은 “나보다 감독님이 걱정이었다. ‘보안관’(2017)을 찍고 몇 년 만에 정성스레 찍은 작품인데, 관객들에게 전달이 안 되면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라고 덧붙인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무심(無心)이다. 대역 없이 실제 붓글씨를 썼기 때문이라면서 “스스로 자랑할 만한 게 서예다. 초등학생 때 대회도 나갔다. 이거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다”며 너스레를 떤다. 오랜만에 귀까지 빨개진 이병헌이다.

 

실존 인물을 연기하며 또 한 번 자신의 연기 인생에 강렬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말한다. “(바둑처럼) 어떤 상황이 와도 다시 한 발씩 내디뎌가는 게 배우의 길 같다”고. 그리고 그 말처럼, 그의 연기는 오늘도 한 수 앞을 향해 조용히 나아간다.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사진=바이포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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