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은 누군가의 안내 없이 자유여행으로 다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가끔은 여행지에 녹아든 이야기를 들으며 지역을 온전히 알아가는 것도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 수 있다.
대구관광재단은 최근 지역의 역사적 인물을 통해 대구의 매력을 재발견하는 ‘대구인물기행 대구와 인(人)연을 맺다’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대구관광재단이 기획하고 한국자전거나라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15일,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 대구를 다녀왔다.
이번 투어에서는 1900~1910년대에 태어나 한 동네에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한국 근현대 미술·음악·문학·경제를 주도한 네 명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었다.
조선의 고갱으로 불리는 화가 ‘이인성’, 오빠생각을 만든 음악가 ‘박태준’, 민족저항 시인 ‘이상화’, 삼성을 일궈낸 기업가 ‘이병철’을 주제로 한 장소를 찾아다닌다. 주요 무대는 1900년대 지어진 빨간 벽돌건물이 이어지는 중구 지역. 인물들이 일상을 보냈을법한 장소를 따라 도보로 걸으며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
약속장소에서 만나면 가이드로부터 송수신기를 받는다. 한쪽 귀에 이어폰을 착용하고 가이드르를 들으며 여행지를 둘러보기 위해서다. 마치 미술관에서 도슨트 투어를 하듯 여행지를 둘러볼 수 있어 인상 깊었다.
◆동무생각 태어난 ‘청라언덕’
우선 청라언덕을 향해 간다. 1900년대 선교사들이 주택을 지으며 담쟁이를 많이 심은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아직도 건물들이 남아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 시간을 두고 둘러보며 걷기 좋다. 이곳에는 음악가 박태준의 ‘첫사랑’ 사연이 녹아있다.
박태준은 청라언덕 인근 계성학교를 다니던 시절, 이웃 신명여고 여학생을 짝사랑했다. 둘의 이야기를 들은 친구 이은상이 시를 썼고, 박태준이 곡을 붙여 ‘동무생각’이 태어났다. 청라언덕에서 20분 남짓 진행되는 몰입형 연극을 통해 보다 재밌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화가의 모델이 된 ‘계산성당’
청라언덕을 내려가면 대구 중구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뾰족한 계산성당이 보인다. 이곳에는 화가 이인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가난했지만 굉장한 재능으로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인정받은 화가 이인성. 그는 대구 남산병원장의 딸과 결혼하며 장인 김재명 병원장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았다. 김 병원장은 이인성에게 병원 3층을 ‘양화연구소’로 내어줬고, 이인성은 이 곳에서 창문너머로 보이던 성당을 그렸다. 계산성당은 대구 최초로 외국인이 만든 건축물이었던 만큼, 화가들에게는 좋은 풍경 모델이었을 것으로 유추된다.
이인성의 대표적인 계산성당 작품(1930 계산동성당)에는 감나무가 그려져 있는데, 실제 그림 속 나무는 성당에 그대로 남아 있다. 대구시가 이인성나무로 명명, 보존하고 있다.
◆근대 대구 힙스터 집결한 ‘무영당’
이인성·박태준·이상화 등 투어 주인공의 아지트이자 거점인 ‘무영당’을 찾았다. 이는 1937년 조선인이 지은 최초의 근대백화점이다. 무영당의 건물주인 이근무는 개성에서 대구로 내려온 거상인데 이인성·박태준과 친하게 지냈고, 이병철과도 교류한 인물이다.
박태준은 무영당 2층에 음악연구소를 개설해 오르간·바이올린을 가르쳤다. 이상화는 당시 찾기 어려운 외국 도서가 많은 무영당을 자주 찾는 단골손님이었다. 이상화·이인성이 진부함을 버리고 새로운 예술을 선보이기 위해 시작한 모임 ‘영과회’의 아지트였다. 지금은 대구 MZ세대의 힙플레이스로 떠오르며 다양한 예술행사 등이 열리고 있어 볼거리가 많다.
인근의 이상화 생가 터도 자리잡고 있다. 이를 개조한 곳에는 카페 ‘라일락뜨락1956’이 들어섰다. 수령 200년이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는 라일락 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곳에서는 이상화가 즐겨 마셨을 것으로 추정되는 당시의 원두로 만들어낸 커피를 구현한 ‘상화커피’를 마실 수 있어 여행의 낭만을 더한다. 계산성당 인근의 ‘이상화 고택’은 시인이 1939년부터 작고하던 1943년까지 거하던 곳으로 둘은 다른 곳이다.
◆이병철 선대 회장 출퇴근길 따라 걸어볼까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이 대구에 자리 잡아 1948년까지 약 10년간 머문 대구 옛 집을 찾았다. 이곳에서 이건희 전 회장이 태어났다. 고가 내부는 들어갈 수 없지만, 이곳을 시작으로 인교동 오토바이 골목을 지나 옛 삼성상회 터까지 걸어간다. 삼성을 일궈낸 이병철 선대 회장이 다녔을 출퇴근길을 따라가본다. 과거 삼성상회 앞은 도소매상들이 끌고 온 짐 자전거와 소달구지 등으로 북적였다고 한다.
특이점이 있다면, 이 코스를 찾는 사람들은 ‘부자의 기운’을 받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선대 회장 옛 집의 대문 문고리와 삼성상회 금고가 있었던 자리의 조형물을 만지면 ‘좋은 기운’을 받아갈 수 있다고.
TIP. 대구관광재단은 오는 21·22일에는 문학테마투어를, 28·29일에는 기업가투어를 오전·오후로 나눠 진행한다. 또 14·21·28일에는 3회의 전일투어가 기다린다. 다음달 11·12일에는 1박2일 투어를 운영하며 대구의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는 숙박·식사도 포함됐다. 대구관광재단, 한국자전거나라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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