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넷플릭스가 증명한 다큐멘터리의 성공 가능성

코로나19 사태로 북미 최대 극장 체인들이 셧다운에 들어가면서 오히려 반사이익을 얻은 업계도 존재한다. ‘안방극장’ OTT 업계가 대표적이다. 전폭적 자가 격리에 들어간 뉴욕 등 대도시 중심으로 급격히 파이를 늘리고 있다. 닐슨에 따르면 3월 1~3주차까지 미국서 OTT 스트리밍 총량은 전년 동기에 비해 무려 85%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가 격리가 본격화된 3월 3주차에 이르면 전년 동기 2.2배로 껑충 뛰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짐짓 주목할 만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 OTT 넷플릭스를 통해 남다른 오리지널 대히트작이 탄생한 것이다. 7부작 다큐멘터리 ‘타이거 킹: 무법지대’다. 기묘한 이력을 지닌 중년남성이 고양잇과 전문동물원을 운영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룬다. 동물학대, 폭력, 방화, 종교적 컬트집단의 암묵적 성상납, 살인청부 등등 가지각색 범죄들이 넘실댄다. 와중에 등장인물 한 명의 배우자 살해의혹 음모론까지 다룬다.

 

‘타이거 킹: 무법지대’는 지난달 20일 공개 후 꾸준히 통합 스트리밍 차트 10위 내 랭크되다 지난 월요일 드디어 1위까지 올랐다. 상업성 떨어진다고 여겨지던 다큐멘터리 장르로 저 수많은 영화, 드라마들을 제치고 얻어낸 결과다. 나아가 공개 보름여 만에 미국서 모든 미디어를 뜨겁게 달구며 가히 문화현상 격 반향마저 일으키고 있다.

 

어쩌다 이런 이변이 벌어진 걸까. 다큐멘터리 장르 자체가 미국서 갑작스레 재조명이라도 받는 걸까. 굳이 말하자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좀 더 복합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타이거 킹: 무법지대’ 대성공도 알고 보면 혼자 툭 불거져 나온 ‘이변’이라 보긴 힘들다. 대략 2~3년 전부터 다큐멘터리 장르는 넷플릭스 기반으로 서서히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다 올해 들어 ‘킬러 인사이드: 아론 에르난데스는 왜 괴물이 되었나?’ ‘가브리엘 페르난데즈의 재판’ 등이 1~2월 통합 스트리밍 차트에서 상위 랭크되며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였다. ‘타이거 킹: 무법지대’ 대성공은 그런 일련의 흐름에 편승한 사건이라 봐야 한다.

 

위 3편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공통점은 크게 둘이다. 먼저 미국서 벌어진 실제 범죄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그것도 최악의 범죄, 살인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만큼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다. 다른 하나는, 모두 3화 이상 분량 시리즈물이란 점이다. 가장 짧은 것도 총 3시간을 넘어가고, 대부분 5~6시간 정도 분량이다.

 

언뜻 전자가 결정적 인기비결일 것 같지만, 사실 핵심키워드는 후자라 봐야 한다. 전자 같은 경우 웬만한 방송 탐사보도프로그램들도 얼마든지 다룬다. 한국선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 몇 안 되지만, 미국은 그런 탐사보도프로그램들 천지다. 적어도 자극성과 선정성 면에서 차별화를 이루긴 어렵다.

 

그러나 후자는 다르다. 같은 사건을 다루더라도 6~8화, 5~6시간 분량으로 얘길 확장시켜 놓으면 기껏 1시간 내외 방송프로그램, 2시간 내외 극장용 다큐멘터리로 상황을 풀어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콘텐츠로 변모한다. 단순히 사건 개요와 관계묘사, 사건에 개입된 인물들 감정적 반응 정도만 담는 게 아니라, 해당사건 중심으로 그 관련 인물들이 살아가는 ‘세계’와 그 ‘세계관’까지 담아낼 수 있게 된다.

 

이런 게 6~8화 분량 넷플릭스 콘텐츠 강점이다. 픽션이건 논픽션이건, 장편 서적 분량으로나 담아낼 수 있는 풍부한 디테일을 고스란히 살린다. 그러면서 일종의 도피성 엔터테인먼트 효과까지 내준다. ‘사건’과 ‘인물’의 관계가 아니라 ‘사건’과 그 사건이 벌어진 ‘세계’와의 관계를 담아내기에 그렇다. 당장 ‘타이거 킹: 무법지대’만 해도 그렇다. 마치 데이비드 린치 영화 속 기괴하고 몽환적인 세계가 현실로 다가온 듯하단 평가다.

 

이제 한국을 돌아보자. 한국은 어찌 됐건 ‘극장용 다큐멘터리 불모지’가 맞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형식 자체가 대중적으로 인기 없는 건 또 아니다. 앞선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 탐사보도다큐멘터리, KBS1 ‘인간극장’ 등 휴먼다큐멘터리 등은 수십 년째 올드미디어 플랫폼에서 장수하고 있다. 여전히 7~10%대 시청률을 방어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공짜’ 장르로 인식되는 부분이 크기에 극장용 또는 이런저런 2차 시장 콘텐츠로 기능하지 못했던 셈인데, 여기서 유료 정액제로 저항감이 적은 OTT가 기능해줄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무료→유료로 넘어가는 심리적 장벽이 그렇게 완화되고 나면, 보다 긴 제작 기간을 통해 5~6시간 분량으로 보다 폭넓게 상황과 인물, 그 ‘세계’를 전하는 다큐멘터리들도 기존 올드미디어 플랫폼을 벗어나 성립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할 콘텐츠는 분명 차별성이 있다. 예컨대, 한국서 가장 널리 알려진 범죄사건, 화성 연쇄살인 사건만 해도 그렇다. 그 당시 화성이란 어떤 도시였으며, 그 주민들 삶은 어떠했는지, 당시 정치 사회적 기류와 경찰력 한계들은 또 무엇이었는지까지 5~6시간 분량으로 보다 폭넓게 그려내며, 궁극적으로 1980년 중후반 ‘그 세계’를 체험시켜주는 콘셉트가 성립될 수 있다. 이외에도 기존 올드미디어 플랫폼으로 소화하기 힘든 콘셉트, 그러나 OTT 환경에선 상업적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듯한 콘셉트는 상당히 많을 것이다.

 

이제 막 넷플릭스를 통해 드라마 ‘킹덤’ 시즌2까지 성공적으로 안착한 상황이다. 여기에 방송계 대표적 3D 분야로 기피되던 다큐멘터리까지 올드미디어의 답답한 제약을 벗어나 상업적으로 성립될 수 있다면, 한국 영상산업은 보다 다양한 영역에서 또 다른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된다. 코로나19 판데믹 상황 속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열풍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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