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4’와 ‘하스스톤’으로 본 블리즈컨의 재구성

 

[애너하임(미국)=김수길 기자] 매출과 브랜드 파워 기준으로 세계 5위의 게임 기업인 블리자드는 매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열리는 블리즈컨을 전후로 화제의 중심에 선다. 지난해 말부터는 유독 웃는 날보다 울어야 할 일이 많았다. 그 날의 사건을 재구성한다.

 

1. 이렇게 쉬웠는데 그토록 어렵게 돌아오다니… ‘디아블로4’

 

# 2018년 11월 3일(이하 현지 시각) 블리즈컨 첫 날.

 

당초 이른바 블리저(blizzer, 블리자드에서 내놓은 게임 콘텐츠를 즐기는 전 세계 마니아)들 사이에서 점쳐진 ‘디아블로4’(Diablo IV) 대신 모바일 게임인 ‘디아블로 이모탈’ 제작 소식이 알려졌다. 블리자드 단독이 아닌 중국계 게임 업체 넷이즈와 공동 개발하고 있다는 게 골자였다. 이를 접한 블리저들은 순식간에 분노했다. 기다렸던 소식이 아니라는 아쉬움뿐만 아니라 넷이즈가 과거에 ‘디아블로’를 거의 베끼다시피해 몰래 양산한 곳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디아블로 이모탈’ 제작진 중 한 명인 와이어트 쳉 수석 디자이너가 “여러분들 휴대폰 없냐?(Do you guys not have phones?)”면서 ‘디아블로 이모탈’을 애써 포장하자, 한 팬이 “혹시 이거 철지난 만우절 농담이냐”(Is this an out of season April Fools’ joke?)고 물었고 현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환호했다. 한국에서도 “님폰없?”이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화가 풀리지 않은 팬들은 아직도 ‘디아블로’ 유튜브 공식 영상 등에서 ‘싫어요’를 누르며 조롱하고 있다. 이처럼 블리자드는 예상하지 못한 비난에 직면했다.

 

# 한 해가 흐른 2019년 11월 1일.

 

블리자드는 마침내 ‘디아블로4’ 소식을 전했다. 수려한 영상과 스토리로 무장하고 관객들 앞에 트레일러의 영상이 흐르자 팬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올해 4월부터 일각에서는 블리즈컨에서 ‘디아블로4’ 관련 정보가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6개월 전, 팬들의 바람처럼 ‘디아블로4’를 소개했더라면 이번 블리즈컨은 ‘디아블로4’의 제작 진행 상황을 개발진과 팬들이 함께 점검하면서 만족감을 배가할 수 있었다. 결국 욕은 욕대로 먹고 만들고 있는 게임을 이제야 발표하는 블리자드의 이상하리만큼 아마추어적인 처사에 블리즈컨을 찾은 블리저들은 “늦었지만 이제 공식화됐으니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디아블로4’는…

 

액션 RPG(역할수행게임) 장르에 한 획을 그은 바 있는 ‘디아블로’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시리즈로 이어지는 점에서 낯익은 위협과 더불어 새로움이 공존하는 세계가 펼쳐진다. 여러 단계에 걸쳐 대결해야 하는 거대한 월드 보스와의 치명적인 만남 등이 예비 이용자들을 기다린다. 블리즈컨에서는 상징적인 세 직업 드루이드(Druid)와 야만용사(Barbarian), 원소술사(Sorceress)가 첫선을 보였고 이후 2종이 추가된다. 어둠에 잠식당한 새 스토리 라인에서는 그동안 경험해본 적 없는 난관에 맞설 영웅들이 소환된다. 야만용사는 새로운 무기고 시스템(Arsenal, 가칭)의 위력을 선보인다. 공격 기술별로 무기를 지정해 한 번에 4종류의 무기를 무장하고 교체·사용할 수 있다. 원소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원소술사는 적들을 얼려 파괴할 수 있고, 벼락을 내려 감전시킬 수도 있다. 하늘에서 불타는 유성을 쏟아지게 해 적을 처치한다. 드루이드의 경우 늑대인간, 곰인간, 인간의 형상으로 모습을 바꾸는 맹렬한 변신의 귀재다. 불타는 지옥의 힘에 대한 자연의 분노로 천재지변을 일으킨다.

 

사용자가 지정할 수 있는 특성 트리와 기술, 영감을 자극하는 전리품 등을 통해 무궁무진한 캐릭터 빌드를 실험하고 탐색해볼 수 있다. 전설 및 세트 아이템을 수집하고 룬과 룬어 조합, 열린 세계를 횡단할 개인 탈것까지 제공된다. 무한 리플레이가 가능한 던전을 완료하고 새로 소개되는 열쇠 던전(Keyed Dungeons, 가칭)으로 자신의 운명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다. 까다로운 던전의 탐험 환경 유형을 지정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디아블로 이모탈’은…

 

굳이 ‘디아블로’ 시리즈의 한 편이라고 부를 수 있도록 모바일 액션 RPG 장르로 개발이 한창이다. ‘디아블로2’와 ‘디아블로3’ 중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디아블로’ 마니아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을 당하면서 언제 출시될지, 어떤 방식으로 개발이 이어지는지에 대한 관심도 줄어든 게 사실이다.

 

 

2. 자유와 민주라는 소중한 가치를 돈으로 막지 마… ‘하스스톤’

 

# 2019년 10월 12일.

 

블리자드의 카드 게임 ‘하스스톤’을 소재로 한 e스포츠 대회에 출전한 홍콩 출신 프로 게이머 청응와이(활동명: 블리츠 청)가 우승 소감으로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유민주화 시위의 구호인 ‘광복홍콩 시대혁명’(光復香港 時代革命)을 외쳤다. 곧장 블리자드 측은 블리츠 청에게 향후 1년 간 ‘하스스톤’ 게임 대회 출전 자격을 박탈했고 누적된 상금도 없앴다. 당시 대회 해설자 2명 역시 반강제적으로 해고됐다. 이에 블리저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 게임 마니아들이 들고 일어났다. 블리자드가 홍콩 시위를 탄압하고 있는 중국 정부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면서 게이머들의 입을 막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블리자드의 실질적인 모회사인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전체 매출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0%선이다. 여기에 중국 국적의 게임 회사 텐센트는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지분 5%를 갖고 있다.

 

막대한 부(富)를 가져다주는 중국 시장을 외면하기 힘들었을 법도 하나, 유난히 확고한 신념을 자랑해온 블리자드로서는 자기부정을 한 셈이다. 이로 인해 블리자드 사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터졌다. 회사 측이 본사 사옥 내 오크 전사 동상 아래 새겨진 블리자드의 8가지 경영철학 중 두 가지인 ‘Every voice matters’(모든 의견이 중요하다)와 ‘Think Globally’(세계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라)를 종이로 가려버리자, 임직원 수십 명은 홍콩시위를 연상시키듯 우산을 들고 경영진의 속단에 항의했다.

 

 

# 그로부터 약 두 달 뒤인 2019년 11월 1일.

 

블리자드의 최고 수장인 J. 알렌 브랙 사장은 블리즈컨 오프닝 무대에 올라 홍콩 지지 발언을 한 선수를 제재한 것을 두고 재차 공식 사과했다. 앞서 3주 전 사과문을 발표한 것에 이은 후속 조치다. 항의하는 블리저들이 블리즈컨 현장 곳곳에 포진한 터라, 브랙 사장은 개막식에서 사과의 변(辯)을 먼저 꺼냈다. 브랙 사장은 “블리자드는 한 달 전 ‘하스스톤’ e스포츠를 통해 세상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서 “지나치게 성급한 의사 결정으로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고 여러분과 소통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고 했다. 이어 “많은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특히 우리가 세워왔던 높은 기준을 맞추지 못했고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매우 아쉽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겸허히 받아들이고, 사과한다”고 덧붙였다. 브랙 사장의 발언에 맞춰 “Free Hong Kong”(자유 홍콩)을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또한 각종 커뮤니티에서 “홍콩 관련 티셔츠를 입고 블리즈컨에 참가하자”는 제안을 실천으로 옮겨 홍콩시위를 지지하는 티셔츠를 공짜로 나눠주는 모습이 주목을 받았다. 이를 주도한 홍콩계 미국인 제인 웡은 “블리자드가 엄청난 부에 집착해 홍콩의 자유를 향한 발걸음을 가리지 않길 바란다”며 “함께 해준 블리저들에게 매우 고마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기부를 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했으나, 제인 웡을 비롯한 참가자들은 정중히 거절하면서 순수성을 확인시켰다. 이밖에 중국 시진핑 주석과 닮은 것으로 알려진 곰돌이 푸의 모자와 의상을 착용한 이들도 눈길을 끌었다.

 

 

◆‘하스스톤’은…

 

‘디아블로’·‘스타크래프트’ 시리즈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 블리자드를 상징했던 작품과는 다소 차이가 있던 첫 카드 게임이다. 아홉 개의 영웅들 중에서 플레이할 직업을 고르고, ‘워크래프트’의 독특한 판타지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하수인, 주문, 무기 등으로 카드 덱을 구성할 수 있다. 긴박감 넘치는 대전 모드와 이야기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1인 모험 등 다양한 게임 모드가 있다. 블리저들의 지지 덕분에 전 세계에서 1억 명의 회원을 확보한 흥행작이다. 일본 이용자들이 미국 서버를 이용해서 체험하는 사례가 많자 일본으로 직접 진출하기도 했다. 일본은 블리저들의 비중이 낮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블리자드로서는 도전에 만족해야만 했다.

 

블리즈컨에서는 135장의 고공비행 카드가 담겨 있는 새로운 확장팩 ‘용의 강림’(Descent of Dragons)이 공개됐다. ‘하스스톤’ 사상 처음으로 한 해에 걸쳐 전개돼 온 긴 이야기의 장대한 결말을 장식한다. 용의 강림에서는 ‘워크래프트’ 역사상 가장 강력한 용인 갈라크론드(Galakrond)로 변신하는 능력을 비롯해 무시무시한 용의 화력으로 무장하게 된다. 내달 11일 정식 출시된다. 신규 플레이 방식인 ‘하스스톤: 전장’도 회자됐다. 총 24명의 독특한 영웅이 등장하는 시끌벅적한 8인 자동 전투 게임 모드다. 각자 하수인을 모으고 전략적으로 배치해 우위를 점해야 한다. 별도로 카드를 수집해 덱을 구축하거나 유지할 필요는 없다. 오는 13일 공개 테스트로 만나볼 수 있다.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