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표절’만 문제?…‘아스달 연대기’ 부진, 결국은 완성도 탓

tvN 판타지드라마 ‘아스달 연대기’가 1부 ‘예언의 아이들’을 마치고 2부 ‘뒤집히는 하늘, 일어나는 땅’에 돌입했다. 그러나 2부를 여는 첫 회, 7회차 방송분에서도 표절논란은 또 일어났다. 이번엔 미국-영국-이탈리아 합작드라마 ‘로마’에 등장하는 뉴스 리더, 즉 시민들에 중요한 뉴스를 손짓발짓 해가며 들려주는 직업인 설정 표절 건이다. 애초 ‘로마’를 제외하곤 여타 영화나 드라마에서 등장한 적 없는 설정이기에 더더욱 할 말이 없다.

이젠 거의 지겨운 수준이다. ‘왕좌의 게임’부터 ‘아포칼립토’ ‘아바타’ ‘원령공주’ ‘코난’ ‘은상전기’ ‘바사라’ ‘파이널 판타지’ 등에 이르기까지 영화, 애니메이션, TV드라마, 만화, 게임에 걸쳐 거의 모든 엔터테인먼트 미디어가 총동원된 표절논란 덩어리가 바로 ‘아스달 연대기’다. 아예 ‘표절 연대기’란 별칭까지 붙고 있다. 방송 직후 그 표절대상으로 지목된 ‘아포칼립토’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사건 역시 유명하다.

 

한편, 논란과 함께 시청률 역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토요일은 상대적으로 시청률이 낮고 일요일엔 소폭 올라가는 구도에서, 23일 일요일 8회는 6.5%(AGB닐슨)까지 떨어졌다. 지금껏 일요일 회차 중 최저다. 향후 치고 나갈 동력이 점차 상실되는 구도이며, 사실상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그럼 이 같은 패색은 과연 연이은 표절논란 그 자체가 원인이 되는 게 맞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노이즈 마케팅도 한두 번이다. 초반 설정 차원에서 멀리 벗어난 2부, 7회에서까지 또 표절 노이즈가 등장한다는 건 확실히 문제가 크다. 소위 ‘이미지’ 차원 훼손이 너무 심해진다. 그러나 비단 ‘그것만’ 원인이 된다고 보긴 힘들다. 몇 가지 다른 시각을 제시해주는 예시들이 존재한다.

예컨대, 2012년 작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경우가 있다. 개봉 즉시 아이반 라이트먼 감독의 1993년 작 할리우드 영화 ‘데이브’와 표절논란이 일었다. 그리고 사실 그런 논란은 정당했다. ‘데이브’에서 단순히 ‘왕자와 거지’ 모티브만 빌려온 게 아니란 흔적들이 여기저기서 발견됐다. 그런데도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성공했다. 1232만3745명을 동원하며 당당히 ‘1000만 영화’ 대열에 올랐다. 나아가 표절논란 자체가 사그라드는 현상까지 보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잘 만든 엔터테인먼트’였기 때문이다. 완성도 차원에선 오히려 ‘데이브’보다도 낫다는 평가가 많았다. 특히 주연배우 이병헌의 역대급 열연이 큰 화제를 모았다. 덕택에 대종상영화제와 백상예술대상에선 작품상까지 받았다. 표절논란이 일었던 영화치곤 상당한 비평적 환대였던 셈이다.

 

결국 ‘아스달 연대기’ 문제도 사실상 여기서 비롯된다고 보는 게 옳다. ‘아스달 연대기’는 표절논란을 차치하고서라도 어떤 차원에서건 잘 만들어진 콘텐츠라 보기 힘들다. 최소한 1부만 놓고 봤을 땐 그렇다. 세계관 설정도 어수선하고 이를 얘기 속에 잘 펼쳐놓지도 못했다. 긴장감 부여나 갈등상황 묘사 역시 부실하거나 애초 설계가 잘못됐다. 그러니 배우들 연기도 어딘지 붕 뜬 느낌이다. 결국 이 모든 소동의 근원은 그저 ‘재미가 없어서’란 얘기다.

 

모티브나 아이디어를 가져온 원전들을 압도하거나 최소 그 정도 완성도만 나왔어도 표절논란이 이렇게까지 커지진 않는다. 나아가 표절논란이 일더라도 그게 시청률 하락으로 연결되진 않는다. 표절이건 뭐건, 그저 어설프고 확신이 없다는 게 문제다. 그러니 답답하고 맥 빠져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이다. 확신 있게 독립된 드라마를 연출하려는 태도가 보였다면 그런 확신이 시청자들에게도 전달된다. 그러면서 그 세계관 안으로 빠져들게 된다. ‘아스달 연대기’는 여기서 낙제점을 받아 ‘여기까지’ 온 셈이다.

 

그럼 왜 그렇게 답답하고 맥 빠지는 드라마가 됐을까. 단순히 연출가나 각본가의 능력 이전 문제가 존재한다. ‘그런 식’으로 만들면 사실상 누가 만들어도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다.

 

앞선 ‘광해, 왕이 된 남자’ 사례를 다시 생각해보자. ‘데이브’와 플롯은 유사하더라도 배경이 달라지면서, 즉 현대 대통령 얘길 조선시대 왕의 얘기로 바꾸면서 사실 영화는 훨씬 자유로워졌다. 각종 플롯 장치들이 지닌 의미가 조금씩 틀어지고, 그렇게 같은 얘긴데도 신선해졌다. 최소한 ‘반복’이란 느낌은 크게 줄었다. 그러니 각본도 연출도 힘 있고 분명해졌다. 갈 곳이 명확하며, 그 갈 곳은 분명 차별화된 지점이란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더 없이 시의 적절했다. 영화가 개봉된 2012년은 제18대 대선이 있던 해다. 올바른 지도자를 바라는 국민적 관심과 열망이 ‘데이브=광해, 왕이 된 남자’ 테마와 잘 맞아떨어졌다. 굳이 이미 있던 얘길 가져온 의미가 충분히 있었던 셈이다. 그러니 한국정치상황과 맞물린 은유적 아이디어들도 계속 샘솟을 수 있었다.

 

반면 ‘아스달 연대기’는 이와 전혀 다른 조건이다. ‘왕좌의 게임’ 등 표절논란이 일었던 콘텐츠는 대부분 동서양 차이조차 미미한 ‘상고시대’ 배경이다. 사실상 ‘같은 배경’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표절이 보다 뚜렷이 절감하게 될 수밖에 없다. 굳이 같은 얘기를 반복해야 할 국지적 사정이나 배경조차 없다. 그저 ‘왕좌의 게임’ 등 상고시대 판타지물이 인기니 가져온 것뿐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빌려온 것들’을 ‘들키지’ 않으며 그 ‘비슷하게’ 갈 수 있나만 모색하게 된다. 당연히 자신감도 떨어지고 그만큼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들도 원전들에 종속돼버린다. 이렇듯 자신감 없는 ‘눈치밥’ 콘텐츠가 시청자들에 확신을 주며 자기 세계관으로 온전히 끌고 갈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답답하기만 하고 재미가 없어진다.

 

어떤 의미에서 표절, 혹은 모티브나 아이디어 차용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애초 할리우드엔 “세상엔 15편의 각본밖에 없다”는 격언이 존재한다. 그 15편을 놓고 이리저리 붙이고 응용해 수만 편 영화가 탄생된단 자조적 고찰이다. 굳이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의 혼성모방 개념까지 동원하지 않더라도 이는 실제적 차원에서 늘 통용되는 구조다. 나아가 일정부분 정당화되기까지 한다. 문제는 저 혼성모방이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달렸단 얘기다.

 

굳이 상고시대를 다루곤 싶은데 이렇다 할 오리지널 아이디어가 부족하다면, 같은 상고시대 판타지가 아닌 ‘전혀 다른 콘텐츠’에서 모티브를 빌려오는 게 훨씬 유리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편이 더 자유롭게 창작열을 부추기는 데도 도움이 된다. 굳이 ‘같은 무리’에서 모티브를 가져오는 것, 그렇게 스스로 ‘종속’의 길로 간다는 것, 그게 이 모든 실패담의 트리거다. 차라리 ‘매드 맥스’에서 영향 받은 상고시대 판타지, 또는 ‘왕좌의 게임’에서 영향 받은 ‘매드 맥스’ 류 포스트-어포칼립틱 스릴러 쪽이 더 말이 될 수 있단 얘기다.

 

‘아스달 연대기’처럼 이제 막 안 해본 장르들을 실험하고 있는, 그래서 상당부분 어디선가는 모티브를 차용해올 수밖에 없는 한국영상산업 입장에서 반드시 고려해볼 만한 방법론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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