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풍경소리] 전생을 알고 싶은가

매달 초에 여는 월광사 법회 때 강의하러 오신 분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전생을 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아마 세간에서도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한다. 그동안 일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전생에 대해 상담했다는 얘기를 전해주었다. 이 얘기를 들으니 지금부터 이십여년 전 어떤 정신과 의사가 전생에 대한 내용을 주제로 하여 책을 발간한 것을 기억한다. 필자는 그 당시에 다른 직업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사주, 풍수, 점(占)법 등 연구는 계속해왔다. 그때는 사주학으로 현재 직업과 인연을 맺을 거란 생각은 없던 때였다.

그때 종교인, 무속인은 아니었지만 전생에 관해 얘기하는 의사의 얘기에 관심을 가졌었다. 필자도 전생에 대해 갖는 견해는 분명하다. “전생은 있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에게 있어 전생은 그리 새롭고 놀라운 얘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사주라는 것 자체가 전생을 포함한 다생겁래의 살아온 흔적에 대한 코드인데 뭐 그리 새삼스럽게 전생이야기를 찾아다니는가 싶기도 하다. 물론 오탁악세를 살아가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풀어내는 방식이 사주명리학을 통하거나, 무속인들처럼 구슬을 흔들며 깃발을 뽑으면서 점치듯 하는 것만이 아니다. 마치 최면을 통해 하듯 조용히 사색하며 풀어내는 방식이 신선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어지는 내용을 들어보니 필자가 상담할 때마다 사주명조를 풀어내는 방식과 강조하는 내용의 원리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었다.

존재하는 세상과 무릇 생명이 있거나 없거나를 막론하여 모든 존재들의 실존을 설명함에 있어 석가모니부처님이 이미 밝혀 놓으신 내용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 없음을 확인할 뿐이었다. 부처님은 존재가 끊임없이 윤회함을 고통이라 보셨다. 이를 일러 중생들이 화택(火宅) 즉 불타는 집에 사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 삶의 고통과 악연의 이어짐이 전생 또 그 전생 등 세세생생 끊임없이 나고 죽고 하는 것을 깨달음을 통해 확연히 보신 것이다. 물론 때때로 존재로서의 달콤함과 즐거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행복한 삶이라 하지만 그 행복함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지나가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그 행복이 끊어질까 두려워하며 애착과 집착을 갖게 되고 이는 또 다른 고통의 원인이 됨을 처절히 보신 것이다. 즐거움 역시 반드시 대가가 따르기에 중생들은 고통이 없는 삶을 꿈꾸며 끊임없이 복을 비는 것이다. 궁극의 행복이란 것은 모든 집착을 걷어 낸 평정한 마음상태인 것을 아셨고 그의 성취에 이르는 길 또한 깨달으신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 삶은 단지 바로 전생의 결과물만은 아니다. 전전생, 또 그 전전생 그리고 또 그 이전의 전전생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법구경에서 이렇게 말씀했다. “전생의 일이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현생에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라. 내생이 궁금한가? 그렇다면 지금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를 보라(欲知全生事 今生受者視 欲知未來事 今生作者視)”고. 초기 경전에 나와 있듯 업(業)만이 자기 재산인 것이다. ★김상회의 풍경소리(02-533-8877)에서는 부산 및 지방 애독자들을 위해 전화 상담을 진행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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