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LG와 두산이 대결한 28일 잠실구장에는 6회말 두산 교체투수 이재우가 마운드에 올라온 후 잠시 실랑이가 있었다. 이재우는 평소 야간 경기에 주황색 빛이 들어간 보호 안경을 끼고 마운드에 오르는데 이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김재박 LG 감독이 강광회 주심에게 뭔가를 요청했고 심판이 이재우에게 다가가 보호 안경을 벗어줄 것을 주문했다.
굵은 안경테가 은색으로 반짝거렸는데 불빛에 반사돼 타격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였다. ‘투수는 마운드에서 타자에게 방해가 되는 어떤 이물질도 부착을 한 채 투구를 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안경을 벗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
이에 이재우는 기분이 상했지만 잘못하면 퇴장까지 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안경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때 더그아웃에 있던 김경문 두산 감독도 얼굴빛이 굳어졌다.
이재우는 7회말에도 마운드에 오르며 또 같은 안경을 끼고 나왔다. 여기서 김재박 감독은 또 항의를 했고 주심이 다시 한번 안경을 벗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이번엔 김경문 감독과 코칭스태프도 감정이 상했는지 심판에게 강하게 어필했다. 김경문 감독은 타자에게 과연 어떤 지장을 주는지 따졌지만 규정은 규정이었다.
결국 두 번씩이나 마음이 흔들린 이재우는 곧바로 선두 타자 안치용에게 우중간 2루타를 맞으며 실점했다. 두산이 5-6까지 따라간 상황에서 추가점을 내줬으니, 의미가 아주 큰 점수였다. 김재박 감독의 어필이 만점 효과를 발휘한 셈이었다.
김재박 감독이 이런 종류의 ‘투수 흔들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9연패에 빠져 있던 지난 11일 한화와의 원정 경기에서 상대 좌완 류현진의 팔꿈치에 테이프를 감은 것을 문제 삼아 연패를 끊었고, 18일 KIA전에서는 투수 이범석이 땀을 닦아 공에 묻힌다며 항의를 해 승부의 흐름을 돌려놓았다. 김재박 감독에게 현역 시절부터 ‘여우’라는 별명이 따라다니는 이유가 분명히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잠실=배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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