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령 옛길’ 따라 가을밤에 스며들다

[고성=글·사진 전경우 기자] 미시령 고갯길을 넘던 시절, 정상부의 휴게소는 ‘성지’였다. 90년대 이후 수 많은 여행객들이 동해 바다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맞으며 설악의 비경에 취했다. 

 

미시령은 이제 고갯길이 아닌 터널 이름이 됐다. 그저 ‘뚫고’지나가는 구간 이름이다. 고속도로와 터널 덕분에 동해바다는 3시간 이내로 가까워졌다. 효율을 얻은 대신 낭만은 사라졌다. 조그만 이정표로 남은 ‘미시령 옛길’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칠흑같은 밤 미시령 옛길에서 내려다 본 울산바위 머리 위로 별이 쏟아져 내린다.

▲미시령과 울산바위 

 

미시령을 넘어 가며 ‘야∼속초다!’ 라고 환호했던 사람이 많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지도에 표시된 미시령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고성군 토성면의 경계에 있다. 

 

미시령의 해발고도는 826m며, 진부령·대관령·한계령 등과 함께 강원 내륙과 영동을 이어주는 통로 역할을 했다. 미시령은 6·25전쟁 당시 개설된 진부령에 이어 1960년대에 넓은 길이 열렸다. 동국여지승람에 소개된 옛 이름은 ‘미시파령(彌時坡嶺)’이며, 오랜 기간 산적들이 출몰하던 험한 길이었다. 자동차 통행을 위해 포장 공사를 마친 것은 1989년 무렵이다. 

 

정상부에 있는 휴게소는 1990년 초반 개장했는데 터널 개통 이후 차량 통행이 뜸해져 결국 문을 닫았다. 지금은 전망대 형태로만 남아있다.  

 

미시령 정상에서 내려다 본 고성과 속초 야경.

울산바위는 미시령의 랜드마크다. 높이는 650m 남짓. 모두 6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고 정상부에는 항아리 모양의 구멍이 5개가 있다. 

 

울산바위는 천후산(天吼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옛 ‘관동읍지’ 문헌을 찾아보면 “이 산에는 바위가 많다. 바람이 산중에서 스스로 불어 나오기 때문에 하늘이 운다(天吼)”라는 표현이 나온다. 조물주가 금강산을 만들 때 경상도 울산 지방의 거대한 바위가 금강산으로 가다 늦어 주저 앉았다는 전설도 널리 알려져 있다.  

 

울산바위는 어두운 밤에 보면 더 신비롭게 보인다. 미시령 옛길 정상에서 내려오다 보면 울산바위 부근에 작은 전망대가 마련돼 있는데, 이 부근은 천체 촬영 동호인들에게 은하수 촬영 명소로 소문난 곳이다. 사진 촬영 목적이 아니더라도 별을 보러 올라갈 가치가 있다. 밤에는 바람이 세차게 불기 때문에 따뜻한 옷을 챙겨야 하며,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화진포 해변 풍경.

▲화진포와 왕곡마을, 고성의 명소들 

 

미시령을 내려와 남쪽으로 내려가면 속초, 북쪽은 고성이다. 고성은 인파가 몰리는 속초에 비해 조용한 여행지가 많다. 

 

화진포는 고성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강원 지방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된 이 지역의 면적은 2.3㎢. 호안선 길이 16km다. 김일성의 별장과 이승만 별장, 이기붕의 별장등이 유명하다. 겨울에는 고니 등 철새들이 찾아든다. 화진포 뒤 응봉(122m)은 주변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오는 포토 스폿이다. 인근 거진, 아야진, 마차진 등 포구에는 맛집들이 숨어 있다. 

 

화진포는 최근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며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인근 송지호 해안의 서낭바위, 운봉산, 능파대 등 네 곳이 지정됐는데, 운봉산의 풍경이 가장 멋지다. 군부대 입구에서 출발하는 운봉산 탐방로는 길이 무척 험해 단단히 준비하고 길을 나서야 한다. 

 

영화 ‘동주’ 촬영지로 유명한 정미소.

왕곡마을은 영화 ‘동주’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추운 날씨에 특화된 북방 가옥의 특성을 오롯이 살린 집들이 많이 있고 마을 전체가 거대한 정원을 연상시킬 정도로 잘 가꿔져 있다. 이 마을의 역사는 고려말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반대한 함부열이 간성에 은거한 이후 그의 손자 함영근이 지금 마을 터에 뿌리내리면서 시작됐다. 영화에 나오는 정미소, 우물 터, 그네 터 등 볼거리가 있고, 여름이면 연꽃이 만개하는 큰 연못이 있다.

왕곡마을의 풍성한 가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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