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나랏말싸미’, 무엇이 문제였을까

지난 7월 한국영화 관객 수가 2008년 이후 7월 집계 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14일 영화진흥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7월 한국영화 관객 수는 334만 명을 기록했다. 전년대비 38% 감소한 수치이며, 매출액 역시 42.7% 줄었다. 전체 흥행수치가 떨어진 건 아니다. 7월 전체 관객 수는 오히려 전년대비 10.8% 증가한 2192만 명을 기록했다. 전체 매출액도 10.9% 성장한 1841억 원이었다. 단적으로, 한국영화‘만’ 안 된 셈이다.

 

원인은 크게 둘로 지목된다. 먼저 7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너무 쟁쟁했다. ‘스파이더: 파 프롬 홈’ ‘라이온 킹’이 등장했고, ‘알라딘’과 ‘토이 스토리 4’도 달을 넘겨 장기흥행 국면에 들어갔다. 한국서 특히 잘 먹히는 마블-디즈니-픽사 삼각연대다. 웬만해선 당해내기 힘들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자는 그에 대항할 한국영화 자체의 경쟁력 부진 탓이라 볼 수밖에 없단 점이다. 영화시장 역시 다른 많은 시장들처럼 정해진 파이를 놓고 나눠 갖기만 할 뿐인 제로썸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될성부른 콘텐츠가 나오면 시장은 폭증한다. 결국 한국영화 7월 최대기대주였던 ‘나랏말싸미’ 부진이 결정적이었다고 봐야한다.

 

‘나랏말싸미’는 8월20일까지 95만2148명을 모았다. 130억 원 제작비에 손익분기점이 350만 관객으로 설정됐던 영화다. 아무리 부진해도 150~200만 선은 ‘보장’이라 예상됐었다. 그런데 그 최저 예상치에도 절반 밖에 못 미쳤다. 뜻밖의 대형 참패 여파가 결국 7월 전체관객 집계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럼 ‘나랏말싸미’의 ‘무엇’이 그리도 문제였던 걸까. 주된 원인은 역시 하나다. 도마에 오른 역사왜곡 논란 탓이다. 조선시대 실존 승려 신미대사를 한글창제 주역으로 묘사한 점이 문제가 됐다. 역사학계 정설로 자리 잡은 세종의 한글창제를 뒤집는 발상에 한글문화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까지 반대 입장을 냈다. 영화의 해외보급을 막아달란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했다. 그와 맞물려 관객 수도 급감했다. 개봉 일주일여 만인 8월1일, 일일관객 수 7위까지 주저앉았다. 스크린 수도 개봉일 약 30% 수준인 332개까지 떨어졌다.

 

의아해질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계 역사왜곡 논란은 사실상 숨 쉬듯 일어난다. 영화계는 그때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란 논리로 맞대응한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가 먹혀들어간다. 말 그대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를 다룬 문화 콘텐츠 중 일정수준 이상 왜곡이 안 들어간 경우를 찾기가 더 힘들기 때문이다. 때론 거의 완전 창작에 가까운 콘텐츠까지 등장해왔고, 그런 콘텐츠마저 때때로 성공을 거둬왔다. 그런데 ‘나랏말싸미’는 대체 ‘무엇’이 그리도 밉보인 걸까 말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다소 긴 설명이 필요하다.

 

애초 역사 블록버스터는 한국영화계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항하려 고안해낸 특이한 블록버스터 형태다. 특히 여름시즌에 그 대항마로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논리는 단순하다. 여름시즌용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당해낼 여타 국가 콘텐츠란 원래 성립되기 힘들다. 그 어마어마한 규모와 오래 다듬어진 상업적 노하우가 일거에 시장을 초토화시킨다. 물론 그렇다고 최대 영화대목을 손 놓고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래서 다른 논리로 차별성을 찾는 ‘사회파적 블록버스터’가 고안되고, 특히 여름이나 설날, 추석 등 대목용으론 스펙터클한 전개가 가능한 ‘역사 블록버스터’가 고안됐다. 이 대안형 블록버스터는 외국영화가 대신해줄 수 없는 자국민의식 고취로서 추가적 상업성을 얻어낸다. 그렇게 소위 ‘의미 있는’ 블록버스터가 탄생된다.

 

그런데 이들 역사 블록버스터 방향성엔 한 가지 단서가 공통적으로 전제된다. 결국은 이런 콘텐츠도 ‘역사’에 방점이 찍히는 게 아니라 ‘블록버스터’에 방점이 찍힌단 점이다. 그럼 그 블록버스터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할까. 단순하다. 관객은 이미 무슨 영화를 보게 될지 알고 있어야 하고, 영화는 그에 정확히 부응해야 한다.

 

블록버스터, 특히나 치열한 여름시즌용 블록버스터는 특별히 신선한 시각이 요구되는 콘텐츠가 아니다. 이미 알고 있는 ‘공식’대로 ‘보장된 재미’를 얻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다. 오히려 안전한 엔터테인먼트가 요구되는 시즌이다. 당장 근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 봐도 알 수 있다. 누구도 대안적 시각이나 정보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 입장이 나오면 오히려 공격당한다. 그런 걸 보러 입장료를 낸 게 아니란 얘기다.

 

같은 논리를 역사 블록버스터로 옮겨보면, ‘기존 역사인식’에 위배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반드시 역풍이 온다.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상식 또는 통념에 준하는 시각들만 받아들여진다. 실제 반론의 여지가 충분한 시각이더라도 그렇다. 그런 반론을 보기 위해. 그런 역사논란 중심에 서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로, 상식과 통념만 지켜준다면 다른 디테일들은 상당부분 왜곡이 일어나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반동인물은 인간이라 보기 힘들 정도로 극악하게, 주동인물은 아예 성인(聖人) 수준으로 만들어놔도 무방하다. 어떤 점에선 그런 만화적 선악구도가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바로 이 상황이 ‘영화는 영화일 뿐’이 먹히는 지점이다.

 

어차피 어느 사회건 그곳 대중이 요구하는 욕망대로 재구성된 게 해당사회 상식이자 통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는 바로 그런 대중주의가 작렬하는 엔터테인먼트 산 현장이다. 이를 맞춰주지 않고 성공을 바라는 건, 혹은 그런 논란이라도 충분히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내주리라 기대하는 건,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다.

 

이 같은 역사 블록버스터 생리 몰이해로 낭패 본 대표적 경우가 2017년 작 ‘군함도’다.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등 초호화 캐스팅에 1000만 영화 ‘베테랑’에서 바로 넘어온 류승완 감독작이었다. 267억 원이란 초거대 제작비가 투여됐다. 안 되려야 안 될 수 없는 1000만 기대작이었지만, 결국 총 관객 수 659만2170명으로 마무리됐다. 손익분기점 800만 명에 한참 못 미쳐 끝난 셈이다. 역시 ‘기존 역사의식’ ‘상식 또는 통념’에 위배되는 설정들을 취했기 때문이다. 일본을 ‘충분히’ 악하게 묘사하지 않고, 조선인들 문제점 등도 함께 다뤘단 이유에서다. 숱한 논란을 일으키며 불매운동까지 벌어졌었다.

 

‘나랏말싸미’도 유사한 경우라 볼 수 있다. 물론 주류사관이 아니라 해서 예술작품으로 다뤄져선 안 되는 게 아니고, 어떤 의미에선 바로 그런 태도야말로 ‘창작의 자유’에 속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입장은 최소한도 여름영화시즌엔 맞지 않는 얘기고, 블록버스터 규모 프로덕션으론 더더욱 말이 안 된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란 명제가 성립되지 않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 과열 등을 논하기 이전 문제다. 블록버스터 속성 이탈이다.

 

마침 여름시즌 막바지에 개봉한 ‘봉오동 전투’가 무모하다고까지 평가받은 ‘손익분기점 450만’을 너끈히 넘어설 모양새다. ‘기존 역사인식’ ‘상식과 통념’에 고스란히 적응한 블록버스터, ‘나쁜 조선인’조차 등장하지 않는 명확한 선악구도 블록버스터인 덕택이다. ‘군함도’ 패착에서 배운 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반복하지만, ‘다른 시각’이 나쁘단 얘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시각들이 보다 풍부한 함유를 드러내줄 때도 많다. 어쩌면 ‘나랏말싸미’도 중급 규모로 봄가을 시즌 개봉했더라면 적어도 지금보단 좋은 반응을 얻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름영화시장은 그렇게 만만한 장소가 아니다. 영화자본의 피 말리는 살육극이 펼쳐지는 현장이다. 실험과 도발은 다른 때 다른 장소에서 다른 방식으로 하면 된다. ‘군함도’ 실패가 결국 ‘봉오동 전투’를 낳았다면, ‘나랏말싸미’ 실패가 낳게 될 산물은 또 무엇이 될 지만 궁금해질 따름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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