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흡수#재편#확장…유키카로 본 ‘K컬쳐의 위력’

여성솔로아티스트 유키카가 세계 최대급 K컬쳐 페스티벌 2019 KCON의 일본무대에 초청됐다. 언론에선 4월 초 기사화됐지만 KCON 측에서 공식발표한 건 지난 주, KCON 재팬 시작 불과 열흘 전이다. 유키카는 지난 2월22일 디지털 싱글 ‘NEON’으로 데뷔한 신예 솔로다. 지난달 23일엔 일본 팬들을 위한 첫 쇼케이스를 도쿄에서 갖기도 했다.

 

알려졌다시피 유키카의 본명은 테라모토 유키카이고, 일본인이다. 2006년부터 일본서 모델, 배우, 성우 등으로 활동하다 2016년 ‘리얼걸 프로젝트’란 프로젝트 걸그룹에 유일한 일본인 멤버로 참여하면서 한국 활동을 시작했다. 2017년엔 JTBC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믹스나인’에도 출연했다. 여기서 눈에 띄어 소속사를 이적하고 솔로 데뷔까지 이르게 된 순서다. 그리고 솔로 데뷔곡 ‘NEON’은 1980년대 일본서 유행한 시티팝 서브장르 곡이다.

 

이런 상황이면 이 복잡다단한 K팝 씬에서도 상당히 진기한 풍경이 된다. 일본서 활동하던 일본연예인이 한국서 아이돌로 데뷔한 뒤 한국프로듀서들이 한국어로 제작한 일본 시티팝 곡을 다시 일본서 열리는 K팝 무대에서 부르는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듣기만 해도 뭔가 어지럽다. 그런데 이처럼 어지럽고 복잡한 광경이 곧 K팝, 나아가 한류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특성이라 생각해볼 수도 있다.

K팝은 사실상 온전한 음악적 장르라기보다 하나의 ‘방법론’이라 볼 수 있다. 전 세계 갖가지 음악장르들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흡입력으로 흡수한 뒤 이를 다시 한국서 설정하는 아이돌상품 규격에 맞춰 재편하는 식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일단 ‘흡수’ 그 자체가 K팝 방법론 근간이다. ‘장르의 진공청소기’란 언급까지 붙을 정도인데, 이를 특정 서브장르로서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러니 고집스러운 국지적 음악전통 등이 개입할 여지도 없다.

 

그렇게 K팝은 음악장르를, 작곡가와 안무가들을, 결국 실제 퍼포먼스를 보여줄 아티스트들을 끊임없이 해외로부터 무한정 흡수해온 역사다. 이미 일본, 중국, 대만, 태국 등지에서 온 한국아이돌은 지극히 흔한 풍경이 됐다. 그러다 결국 유키카란 흥미로운 테제(상황을 규정하는 논지)까지 왔다. 모든 음악적 경향과 인력 흡수의 결정판에 가깝다.

 

생각해보면 비단 K팝만이 아니다. 한국대중문화 자체가 이처럼 엄청난 흡수력을 통해 끝없이 진화해온 구조라 볼 수 있다.

 

한류 시발점이었던 TV드라마 장르만 봐도 그렇다. 중남미식 텔레노벨라 형식을 흡수한 뒤 일본 트렌디드라마 성격을 또 흡수했고, 곧 미국 장르드라마 개념까지 흡수한 뒤 이 모든 경향들을 뒤섞어 특이한 K드라마 구도를 만들어냈다. 물론 어디나 많건 적건 해외 경향을 흡수는 한다. 하지만 한국은 그 속도와 범위, 적극성 차원에서 확실히 남다르다. 드라마 한류 첨병이었던 MBC ‘대장금’의 경우 “일본 요리 배틀 만화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작가의 변도 있었다. TV예능프로그램이나 영화 등 여타 장르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세계인에 사랑받는 K푸드 대표는 한국식 치킨과 치즈닭갈비다. 모두 흡수의 산물이다.

 

당연히 이 모든 게 단순 ‘흡수’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관건이 되는 건 한국서 ‘재편’해 설정하는 미래트렌드 방향이다. 여러 경향과 인력들을 흡수한 뒤 자신들이 감지하는 미래트렌드에 따라 재료들을 뒤섞고 뭉그러뜨리는 과정이 곧 K팝, K드라마, K무비 등을 아우르는 전반적 K컬쳐 방향이라 볼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선 바로 이 지점에서의 독보성이 지난 20여 년 간 한류가 확장세를 계속해온 핵심이라고도 볼 법하다.

 

즉, 유사한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 초고도 압축성장사회 한국만큼 해외로부터의 ‘변화’에 극히 민감하고 또 능숙하게 적응해온 역사를 지닌 나라가 또 있느냐는 것이다. ‘변화’에 대한 민감성과 능동성, 그리고 변화 자체를 일종의 선(善)으로서 받아들이며 거부감을 최소화시키는 사회분위기 자체가 곧 문화트렌드선도 차원에서 K컬쳐 확장세 기반이 아니었느냐는 것. 최소한도 어떤 식으로건 문화적 갈라파고스화가 불가능한 분위기고, 그만큼 꾸준히 글로벌 확장세를 이끌어갈 자국 내 ‘풍토’가 조성된 분위기란 얘기도 된다.

 

그리고 바로 그런 차원에서 유키카와 같은 존재의 상징성도 부각될 수밖에 없다. 해외시장 확대를 위한 인력흡수과정에서 한국에 등장한 아티스트, 미래트렌드 설정 차원에서 되살려낸 시티팝이란 서브장르, 그리고 당연한 듯 일본으로 ‘되팔기 위한’ 교두보 격 무대 성립까지 모든 면에서 그렇다. 거기다 생각보다 더 흥미로운 현상들도 감지되고 있다.

현재 유튜브 등에서 유키카의 ‘NEON’을 놓고 만들어지는 각종 UCC들에선 기묘한 흐름이 포착된다. 19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등을 화면배경으로 깔고 ‘NEON’을 흘려보내며 이게 얼마나 잘 맞는 조합인지 알리려는 UCC들이다. 게시자 절대다수가 일본 외 국가들에 거주하는 일본문화 팬들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이들 1980년대 일본문화 팬들은 한국서 활동하는 아티스트의 한국어 곡을 들으며 그 시절 일본문화를 추억하고 있단 얘기다. 그리고 곧 그런 방향에서 실질소비도 점차 늘어날 것이다.

 

이처럼 독특한 상황은 문득 1990년작 할리우드 영화 ‘백 투 더 퓨쳐’ 3편 한 대목을 떠올리게도 한다. 영화 속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는 타임머신을 타고 실수로 1885년의 미국서부에 떨어진다. 그런데 그렇게 도달한 미국서부는 존 포드 감독-존 웨인 주연 정통서부극 속 그 모습이 아니었다. 1960년대 이탈리아 영화인들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 미국배우 한두 명 데려다놓고 이탈리아 대지를 배경으로 ‘미국서부인 척’ 만들어낸 변종서부극, 스파게티 웨스턴 스타일의 서부였다. 스파게티 웨스턴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호응을 얻어내면서 곧 미국발(發) 장르 대표 격인 정통서부극 전통마저 대체해버린 풍경이다.

 

‘재편’ 과정을 거친 ‘흡수’ 상품이 원전상품을 대체하다 못해 그 본국의 대중적 인식마저 뒤바꿔놓은 상황. 우리가 이미 K팝 등을 통해 수없이 목격하고 있는 상황이다. 곧 K컬쳐, 한류의 위력이기도 하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사진=KCON 2019 JAPAN, 에스티메이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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