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희의 눈]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

‘인생은 바둑과 같다’는 말이 있다.

 

바둑돌을 하나하나 놓아가며 한판승부를 벌이는 모습이 인생에서 큰 그림을 완성하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말에서 의미를 따온 것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어렸을 적에는 “이렇게 재미없는 것을 몇 시간에 걸쳐 돌장난이나 하고 앉아 있는지“라며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을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런 바둑을 이제야 조금이나마 이해할 무렵 바둑에서 쓰이는 언어의 의미도 찾아보게 됐다. 5000년이나 되는 바둑의 역사를 증명하듯 우리가 쓰는 언어, 특히 시사나 방송 뉴스에서 쓰이는 언어가 바둑 문법이 많이 들어와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실제로 이런 말들은 훌륭하게 우리 삶들에 녹아 적용되고 있다. 드라마 제목으로 쓰여 큰 히트를 친 ‘미생’이란 단어는 원래 바둑 용어이다. 완전히 죽은 돌을 뜻하는 사석(死石)과는 달리 미생은 완생할 여지를 남기고 있는 돌을 의미한다는 차이가 있다.

 

호구란 말도 원래는 바둑돌 석 점이 둘러싸고 한쪽만이 트인 그 속을 뜻하며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호구(虎口)’라고 명명됐다. 호구 안에 상대의 돌이 들어올 경우 한 수만 더 놓으면 그 돌을 따낼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어수룩하고 순진해서 이용하기 좋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경제에 사활을 걸고 활로를 모색해야’라는 문장도 뉴스에서 자주 봐 왔을 것이다. 이말 역시 바둑 용어로 활로는 돌이 뻗어 나아가 살아날 수 있는 바둑판 위의 교차점을, 사활은 결정적인 순간에 돌 하나가 승패를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삶과 죽음의 사이를 뜻한다.

 

놀랍게도 ‘꽃놀이패’라는 단어도 바둑 용어다. 화투에서 흘러나왔을 법한 이 단어는 대표적으로 잘 못 받아들여 쓰고 있는 바둑용어로 ‘이기면 큰 이익을 얻고 저도 큰 부담이 없다는 마치 봄날의 꽃놀이를 하러 가는듯한 가벼운 마음의 싸움’이라고 정도로 쓰는 바둑 용어다.

 

‘경제 불황 타개를 위한 대안이 필요하다’에서 ‘타개’는 어렵게 꼬여 있는 일이 잘 풀려 길이 열린다는 바둑 용어이고, ‘일을 저질러 자충수를 두는 꼴이 됐다’는 말에서의 ‘자충수’도 스스로 행한 행동이 결국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바둑 용어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는 문장에서의 ‘장고’는 오랜 시간 동안 생각하며 고민한다는 뜻이다.

 

‘난 오늘 실리를 추구하겠다’는 문장에서 ‘실리’는 바둑에서 돌을 놓아 획득한 자기 소유로 확신할 수 있는 공간을 가리킨다. 또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할 때 ‘국면’은 바둑에서의 바둑판 돌의 모양을 뜻하는 것이고, 돌 모양을 볼 때 쌍방의 실력이 파악되기에 일이 벌어지는 장면이나 상태를 지칭한다.

 

스스로 정리하면서도 이리도 많은 단어와 문장들이 바둑에서 나왔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바둑이 인생의 축소판이란 말을 다름이 아닌 우리가 쓰는 말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개그맨 황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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