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세계관 전략’ 通했다…대박난 ‘캡틴 마블’

미디어 관심이 온통 승리-정준영 사건에 집중된 시점이지만, 와중에도 엔터테인먼트산업은 맹렬하게 돌아간다. 대표적으로 영화산업, 극장가가 있다. 최신 마블 수퍼히어로 영화 ‘캡틴 마블’은 지난 16일 하루 동안 47만2278명을 동원, 누적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정확히는 423만3504명이다. 근래 마블 수퍼히어로 영화 중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의 396만3964명은 이미 제쳤다. ‘앤트맨과 와스프’ ‘닥터 스트레인지’도 곧 제칠 분위기다.

 

그럼 그만큼 ‘캡틴 마블’이 만족스러운 엔터테인먼트였나. 그렇다고 보긴 애매하다. 비평계 반응을 총합한 로튼토마토에서 79%, 메타스코어에서 64점을 받았다. 역대 마블영화 중에서도 가장 낮은 급이다. 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 유저 평점 역시 7.1로 마블영화 중에선 매우 낮은 급이다. 그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일단 마블 수퍼히어로 영화 자체가 지난 4~5년 사이 점점 흥행몸집을 불려가는 현상부터 지적할 필요가 있다. 특히 단독 캐릭터 첫 작품 측면에서 그렇다. 개봉순서대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135만 명=>‘앤트맨’ 285만 명=>‘닥터 스트레인지’ 545만 명=>‘스파이더맨: 홈커밍’ 726만 명=>‘블랙 팬서’ 540만 명 순이다. 기존 인지도가 부단히 높은 스파이더맨을 제외하고 보면 분명한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현재로서 600만 이상 관객동원을 예고하는 ‘캡틴 마블’은 이 같은 흐름에 방점을 찍어줄 예정이다.

답은 사실 단순하다. 마블 수퍼히어로 캐릭터들을 총괄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자체에 대한 충성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단 것이다. 그런데 기존에 통용돼온 충성도 개념과는 또 약간 다르다. 기존 충성도는 신뢰도와 연동되는 개념이었다. 프랜차이즈 영화들이 흔히 갖게 되는 개념, 즉 ‘보장한 재미’에 대한 신뢰다. 그런데 그런 신뢰도 정도론 이렇게까지 집요한 상향곡선을 그리진 못한다. 5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007 프랜차이즈부터 시작해 ‘엑스맨’ ‘스타워즈’ ‘스타트렉’ 등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 편 퀄리티에 따라 흥행은 오르락내리락해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같은 이전 사례는 딱히 존재하질 않는다.

 

그럼 뭘까. 이 충성도가 신뢰도에서 온 게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근원일까. 상당부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세계관’ 전략이 먹혀들어간 결과라 봐야한다. 영화 한 편을 파는 단계에서 그 캐릭터를 파는 프랜차이즈 단계로, 그리고 이제 서로 다른 여러 캐릭터들이 같은 세계 안에서 관계를 갖고 존재한다는 세계관 단계로 흥행법칙이 넘어간 셈이다. 결국 대중은 그 ‘관계’를 산다고 보는 편이 맞다. 관계들 속으로 빨려 들어가 하나의 커다란 집단서사, 세계관을 형성시키며 충성도를 극단적으로 높이고 있는 것이다.

 

‘캡틴 마블’도 크게 다르지 않다. ‘캡틴 마블’은 사실상 곧 개봉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네 번째 총집편, ‘어벤져스: 엔드게임’ 빌드업 영화라 봐야한다. 그 세계관을 온전히 완성시키고 관계를 따라가려면 ‘꼭 봐야만 하는 영화’이기에 ‘세계관 팬’들이라면 놓칠 수 없는 영화가 됐단 얘기다. 그런 식으로 ‘세계관 영화’들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흥행을 성공시킨다.

이 ‘세계관 전략’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유행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모두 마블 전략이 제대로 먹혀들어간 탓이다. 비단 수퍼히어로물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제임스 완의 호러영화 ‘컨져링’ 관련으로도 ‘컨져링 유니버스’가 성립된 상황이다. ‘컨져링’ 중심으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애나벨’ ‘더 넌’ 등이 차례로 성공을 거두며 점점 유니버스 안으로 기획되는 영화들이 늘고 있다. 한편 고질라, 킹콩 등 워너브라더스 영화사가 판권을 갖고 있는 크리처 캐릭터들도 ‘몬스터버스’를 이루고 있다. 개막 편 ‘미이라’의 흥행실패로 진전이 어두워지긴 했지만, 유니버설 영화사의 ‘다크 유니버스’도 꾸준히 도전 중이다. 드라큘라, 프랑켄스타인, 늑대인간, 투명인간 등이 이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밖에도 많다.

 

한국영화산업 입장에선 그저 부럽기만 한 대목이다. 한국선 세계관은커녕 그 전 단계인 프랜차이즈 성립조차 요원한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메인스트림급 상업영화 히트작 중 속편이 등장하는 영화 자체가 무척 드물다. 그러니 안정적 흥행으로 이끌어줄 방어 장치, 흥행전략을 성립시키기가 무척 어렵다. 모든 영화가 ‘단 한 편’의 온몸승부라 봐야한다. 도박성이 무척 짙다. 어떤 의미에선 매년 불거지는 ‘한국영화 위기설’도 바로 이 세계관 전략에서 밀린 한국영화계 풍토의 패배라 보는 게 맞을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이 ‘세계관 전략’은 묘하게도 한국선 아이돌산업이 이어받고 있단 사실이다. 단순히 그룹에 가공의 ‘배경’을 설정해 스토리텔링을 만든단 차원을 넘어서, 사실상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유사한 개념, 즉 대형그룹 내 유닛들을 총괄하는 개념으로서 응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간 보이그룹에서 주로 적용되다가 이달의소녀를 기점으론 걸그룹에도 적용되는 모양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건 아이돌그룹이건 ‘세계관 전략’은 근본적으로 팬덤 전략이다. 큰 의미에선 특정 아이돌그룹 팬덤에 따로 이름을 붙이는 매우 일반적인 팬덤 전략 역시 세계관 전략의 일종이라 볼 수 있다. 그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특정개념들을 하나둘 늘려나가 충성도와 결집력을 증폭시킨단 차원이다.

 

그런데 이제 저 자폐적 이미지의 각종 팬덤들은 점차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다. ‘그사세’는 맞는데 ‘그사세’들 규모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사실상 ‘대중성’이란 개념 자체가 본 의미를 잃을 수준이 돼간다. ‘그사세’를 과연 어느 규모까지 늘려나가는가, 바로 그 점이 현 시점 대체적 의미에서의 ‘대중성’ 개념이 돼가고 있단 얘기다. ‘캡틴 마블’의 ‘예상된 성공’ 역시 이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어벤져스’라는 1000만 관객 규모 대형그룹 내 유닛으로서 안정된 파이를 지켜낸 성공이다.

 

어찌됐건 인터넷 등장과 함께 각자 취향별로 잘게 나뉜 대체적 대중성의 시대, ‘팬덤의 시대’에 가장 빨리 적응한 건 한국서 아이돌산업 쪽이다. 그리고 글로벌 시장은 글로벌 성공신화로서 이에 화답해줬다. 이제 영화산업이 이에 도전장을 내밀어볼 때다. ‘1000만 영화’ 신화를 수없이 써오면서도 매번 도박판 같은 홀몸승부만 보려하다간, 저 세계관-팬덤 전략이 탑재된 할리우드 영화들이 등장할 때마다 ‘한국영화 위기설’ 역시 단골손님처럼 찾아들고야 말 것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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