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편전쟁’ 美·中 분쟁과 흡사… 안정적 자산관리 필요

불과 9표 차이로 전쟁은 결정되었다. 전쟁 찬성은 271표, 반대는 262표로 나왔다. 더러운 전쟁을 시작해야 하는 의회 반대파 입장에서는 대영제국의 명예에 먹칠하는 일이라며 치를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은 당시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생산한 아편을 중국에 수출하고 있었다. 지금 같으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사형이나 무기징역 등 크나큰 죗값을 치러야 할 일이지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버젓이 통용되던 그때다. 피해자인 중국은 영국이 수출한 아편으로 골치를 앓았다. 거리는 마약중독자로 넘쳐났고 환각상태의 범죄뿐 아니라 마약을 사려고 가족을 인신매매하는 일까지 들끓어 사회는 혼란 상태로 빠져들었다. 급기야 중국 황제는 임칙서를 시켜 영국 상인들로부터 아편을 몰수하고 이를 모두 불태워 버리는 강력한 조치를 실행한다. 이에 반발한 영국 의회는 보상을 요구하며 전쟁을 결의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전쟁이 바로 1840년 아편전쟁이다.
임상빈 IBK기업은행 동부이촌동WM센터 PB팀장

문제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무역역조였다. 당시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차를 수입하고 있었다. 중국산 차는 영국인들 입맛을 사로잡았는데 귀족뿐 아니라 노동자들도 중국산 차를 마시는 습관이 들어가고 있었다. 일반 가정이 버는 수입의 5%를 차 구입에 퍼붓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 인기 덕에 처음 수확한 햇찻잎을 대양을 가로질러 가장 먼저 수입해 오는 화물선은 떼돈을 벌 수 있었다. 너도나도 중국산 차를 수입해 오는 경쟁에 뛰어들 정도로 차 수입품은 최고의 상품이었다. 그런 반면 영국이 역점을 둔 수출품은 모직물이었다. 그렇지만 당시 유일한 개항장이 있던 광둥성은 아열대 지역이다 보니 영국의 모직물을 중국인들이 살 일이 없었다. 다시 말해 영국은 중국차를 구매해가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중국은 영국산 제품 구매에 전혀 관심이 없는 상황이었으니, 무역역조의 원인이었다. 영국은 당시 중국의 결제통화였던 은을 해마다 2만8000t가량 차 수입대금으로 지급하며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결국 은의 부족과 무역 적자로 고심하던 영국은 인도산 아편을 전략 수출상품으로 취급하게 된 것이다. 인본주의를 거스르는 영국의 불명예 역사다.

과거 동아시아 역사의 기록은 지금의 미·중 간 무역전쟁과 닮아 있다. 중국 수출품은 미국에서 낮은 가격으로 인기가 좋다. 고도성장 속에서도 낮은 물가상승률을 장기간 기록할 수 있었던 미국 경제의 골디락스 호황은 낮은 노동비용으로 무장한 쓸 만한 중국 수출품 덕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변변한 수출품이 없다 보니 대중 무역 적자는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경상수지는 통계상 1971년부터 거의 50년 가까이 적자를 내는 대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1800년대 초 영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역조와 다를 바 없다. 그때처럼 결국 무역역조는 국가 간 분쟁을 불러오게 되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무역역조는 미국이 중국에 아편을 파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한 해결의 가닥을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시점 자본시장이 급등락을 보이며, 변동성이 높아진 이유도 글로벌 교역 불균형이 오랜 기간 쌓여 왔던 것이 본질의 문제점이다. 그런 이유로 완전한 해결은 어려울 뿐 아니라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적정한 선에서 양자 간 양보와 타협을 통해 전면전은 피할 공산이 크다.

그런 상황인식 속에서 투자자들은 여유로운 마음가짐과 함께 안정적인 자산관리에 나서야 한다. 단기적인 해결책보다는 본질적인 경제체질의 변화와 자유무역을 거스르지 않는 합리적인 교역의 룰 설정이 필요하고 그것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험자산 비중을 줄이고 우량등급 채권이나 통화분산 목적으로 달러화표시 채권 등 달러화 운용자산 비중은 강화하는 자산관리를 하기를 권한다.

임상빈  IBK기업은행 동부이촌동WM센터 PB팀장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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