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준의 독한S다이어리] 손흥민 ‘88분’ 이승우 ‘0분’… 벤투 감독의 '고집 or 계획'

[스포츠월드=권영준 기자] 손흥민(27·토트넘)이 대표팀에 합류한 지 이틀 만에 88분을 뛰었다. 이승우(21·헬라스 베로나)는 조별리그 3경기 동안 ‘0분’ 출전했다. 파울로 벤투(49·포르투갈)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의 의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한국 축구대표팀은 17일(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알나얀 스타디움에서 끝난 중국과의 ‘2019 UAE 아시안컵’ C조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황의조(감바 오사카)와 김민재(전북)의 골에 힘입어 2-0으로 승리했다. 조별리그 3전 전승을 기록한 대표팀은 승점 9로 조 1위를 확정했다. 대표팀은 오는 22일 16강 토너먼트를 시작한다. 대표팀은 오는 22일 두바이의 라시드 스타다움에서 A·B·F조 3위와 16강전에 나선다.

벤투 감독은 이날 파격적인 베스트 11을 꺼냈다. 손흥민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발 명단에 포함했다. 지난 14일 소속팀 경기에 풀타임을 소화한 뒤 곧바로 비행기에 올라 7시간 비행, 그리고 약 2시간 차량 이동으로 대표팀에 합류한 손흥민은 15일 단 하루 대표팀 훈련에 참여한 뒤 이날 경기에 출전했다.

 

효과는 분명했다. 손흥민은 전반 13분 민첩한 움직임으로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이를 황의조가 성공해 결승골을 뽑았다. 후반 5분에는 정확한 코너킥으로 김민재의 헤딩 추가골을 어시스트했다. 이날 대표팀이 기록한 2골에 모두 관여했다.

 

그러나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벤투 감독은 2-0으로 앞서간 이후에도 손흥민을 교체하지 않았다. 후반 막바지에는 킥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한다는 손흥민도 정확도가 확연하게 떨어졌다. 심지어 손흥민을 최전방으로 끌어올려 체력 안배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굳이 포지션을 최전방으로 끌어 올리면서 출전 시간을 늘릴 이유가 있었을까. 팀 전술을 수비 모드로 전환하면서 체력이 떨어진 손흥민을 최전방에 배치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물론 중국전 후 5일의 시간이 있다. 하지만 이전 스케줄을 고려하면 5일이라는 시간이 그리 넉넉하진 않다. 손흥민은 소속팀에서 12월부터 대표팀에 합류하기 전까지 45일을 기준으로 총 14경기(EPL 9+리그컵 2+FA컵 1+UEFA 챔피언스리그 1)에 출전했다. 3일에 1경기꼴로 한 달이 넘는 시간 강행군을 펼쳤다. 여기에 심적 부담감이 큰 국제 대회에 출전한다. 심리적 안정은 물론 근육을 쉬게 해줄 필요가 있다. 당장 경기 출전에는 문제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차후에 발생할 수 있다. 그럴 리는 없어야 하지만, 손흥민이 다치면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 중국전을 통해 손흥민이 있는 대표팀과 없는 대표팀의 차이가 확연하다는 것을 눈으로 봤다.

반대로 부상자 대체 발탁으로 벤투호에 합류한 이승우는 대표팀이 이번 대회 3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1분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이날 체력 안배 차원에서 손흥민 대신 이승우를 투입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벤투 감독은 이승우를 외면했다.

 

문제는 이승우의 출전 여부가 아니다. 선수 출전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다. 전술의 색깔과 경기 흐름에 따라 감독이 판단하고, 운용한다. 해당 경기에서 활용도가 떨어진다면, 더 필요한 선수를 투입하는 것이 맞다. 벤투 감독의 선택에 대한 문제는 전혀 없다.

 

그러나 구상에서 완전히 배제한 선수를 경기에 투입할 계획도 세우지 않고 선발했다면 문제가 크다. 벤투 감독은 이승우를 두고 확실히 선을 그었다. 11월 평가전에서 이승우를 제외하며 "경쟁력에서 앞선 선수가 있다"고 명확하게 설명했다. 이어 대회 최종엔트리에서 제외하며 "전술적으로 멀티 포지션을 소화할 수 없다"고 재차 설명했다. 그런데 부상자가 발생하자 돌연 이승우를 선발해 "공격진 멀티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벤투 감독이 이승우를 투입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공격수 운용에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실제 벤투 감독은 2차전 키르기스스탄전, 그리고 중국전 모두 똑같은 교체 선수를 운용했다. 황의조를 빼서 체력 안배하며 지동원을 투입했고, 이청용을 빼고 주세종을 투입해 중앙 미드필더 황인범을 끌어올렸다. 차이는 키르기스스탄전은 2명만 활용했고, 이날은 정규시간 종료 2분을 남겨두고 손흥민 대신 구차절을 투입했다. 기성용(스완지시티)이 빠지면 계획을 튼 부분도 있지만, 애초 구상대로 팀을 운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구상에 이승우가 없다면 선발하지 않았어야 한다. 예비 선수로 UAE까지 데려갔던 김준형(수원) 이진현(포항)을 발탁하는 것이 맞다.

 

이승우는 이날 교체 멤버와 함께 몸을 풀다가 교체 선수 3명을 확정한 이후 벤치로 돌아오면서 곁에 있던 물병과 수건을 걷어차는 모습을 보였다. 반성해야 할 일이다. 토너먼트 대회에서는 팀 분위기가 중요하다. 선수 개개인의 행동 하나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벤투 감독 역시 이승우 선발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야 한다. 출전 여부를 떠나 감독이 선수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팀 스포츠에서 주전과 백업은 나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구상에 없는 선수라도 대표팀에 발탁한 이상 ‘내 선수’이다. 책임을 져야 한다. 23명의 선수 모두가 ‘내 사람’이라는 믿음은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뛰지 못해도 ‘우리’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손흥민의 체력, 이승우의 활용은 단판 승부로 펼쳐지는 토너먼트에서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지켜볼 일이다.

 

young0708@sportsworldi.com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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