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보헤미안 랩소디’, 대중을 알면 흥행이 보인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기적적인 뒷심을 보이고 있다. 먼저 개봉 45일차인 지난 14일 일간흥행 1위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관객 수도 적지 않다. 11만3045명으로 개봉 7주차 일간기록으로선 전대미문이다. 아무리 대단한 블록버스터여도 7주차쯤 이르면 일간 1만 명 이하로 떨어지는 게 상례다. 이어 15일 토요일에도 일간 1위를 지켰고, 누적관객 수 772만8549명을 기록했다. 이런 식 뒷심이라면 ‘천만영화’ 등극도 먼 일은 아니란 예상이다. 사실상 한국극장가 ‘올해의 현상’으로 불려도 과하지 않다.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 세계흥행 추세다. 전 세계 흥행집계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는 19일까지 한국서 미화기준 5431만1080달러를 벌어들였다. 미국, 영국에 이어 세계 3위 흥행수치다. 그런데 곧 그마저도 뒤집힐 듯 보인다. 같은 19일까지 영국선 5725만2862달러를 벌어들여 박빙인 데다, 영국선 이미 주말흥행 5위권 밖으로 벗어났지만 한국선 언급했듯 1위 자리까지 탈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화가 다룬 그룹 퀸의 ‘조국’에서보다 한국서 더 인기 있는 영화가 됐다는 것. 나아가 영화 제작국 미국과 비교해도 인구규모와 입장권평균가격을 감안하면 한국 쪽 열기가 배 이상이다.

 

이제 이쯤 되면 단적으로 결론내릴 수 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보헤미안 랩소디’가 가장 인기 있는 나라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애초 한국은 퀸이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나라였을까. 어떤 관점에서건 그렇다고 보긴 힘들다. 일단 퀸에 대한 세대 간 인지도 차이부터가 극명하다. 거기다 퀸 전성기 시절을 겪은 이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다소 갈린다. 그렇다면 이처럼 불가사의한 ‘보헤미안 랩소디 현상’은 대체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수수께끼 같은 일이지만, 차례차례 나눠 생각해보면 사실 해석이 어렵진 않다. 그리고 그 해석들 하나하나가 한국대중 자체의 문화향유 특성들과 그대로 연결된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가장 많이 언급된 부분, 한국의 유난한 ‘음악영화 사랑’ 분위기다. 이 부분은 예가 너무 많아 하나하나 대기가 힘들 정도다. 그리고 해외에서마저 인지할 정도다. 미국 할리우드 리포터 11월12일자 기사 ‘왜 ‘스타 이즈 본’은 해외관객들로부터 인기가 없나’가 대표적이다. 기사는 “음악영화가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이란 표현과 함께, 한국은 “저예산 아일랜드 음악영화 ‘싱스트리트’마저도 380만 달러를 벌어들인” 나라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법하다. 그중 대표적으론, 음악 사랑이 상당한 분위기임에도 특이하게 공연문화는 자리 잡지 못한 환경이 꼽힌다. 각종 음악공연은 그 가격설정 차원에서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한단 평가다. 한국대중에게 음악은 적은 지출로 가볍게 자주 소비하는 장르란 것이다. 그러니 웬만한 공연 1/10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장르, 그중 음악영화 서브장르가 바로 그런 간극을 메워주고 있다는 것. 이 같은 특성이 존재하기에 퀸 공연현장을 재현한 ‘영화’가 퀸 자체 인지도와 인기에 비해 두드러지는 성공을 낳았으리란 판단이다.

 

둘째, 한국극장가 특유의 밴드웨건 현상 만연을 들 수 있다. 한국극장가는 본래 쏠림현상이 극도로 강하다. 사실상 한국문화산업 전체가 그렇다고 볼 수 있는데, 유행에 극히 민감한 사회문화 분위기가 그에 일조한다. 당장 모두가 롱패딩을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거리 분위기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영화산업 차원에선, 한 해에 전체인구 1/4이 보는 영화가 1~2편씩 꼭 등장하는 분위기를 들 수 있다. 사실상 세계 어디서도 보기 힘든 현상이다.

 

근본적으론 집단주의 감수성이 강한 한국사회 전반적 분위기 탓이지만, 어찌됐건 ‘보헤미안 랩소디’는 그 정확한 수혜자에 속하고, 사실 ‘보헤미안 랩소디’뿐 아니라 초대박 흥행을 터뜨린 영화들은 대개 이런 분위기가 그 바탕이자 동력이 된다. 뭔가가 세간에 유행이 되고 있다면 취향을 불문하고 다들 구경하러 가는 분위기다. 초반 흐름이 ‘대세’로 드러나고 그에 따라 미디어 조명이 잦아지면 밴드웨건 현상은 콘텐츠 성격을 가리지 않고 늘 일어난다. 마니아시장에 가까운 공연시장에서조차 콜드플레이 등 이른바 ‘트렌드’성 대박이 일어나곤 하는데, 그보다 대중적으로 가까운 영화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편 셋째로 들 배경은 좀 더 특이하다. 한국은 세대 타깃상품의 세대 간 장벽이 상대적으로 꽤 낮은 환경이란 점이다. 부모세대 문화가 자녀세대로 옮아가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부모세대 역시 자녀세대 문화정보를 상대적으로 많이 받아들이는 편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은 자녀와 부모가 상대적으로 오래 동거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자녀가 결혼을 통해 자기 가정을 꾸리기 전까진 부모와 함께 사는 분위기가 여전히 만연하다. 결혼연령이 30대 초반으로 올라간 현 상황에선 그 분위기가 대중문화 주 소비연령 전체를 커버하게 된다.

 

그런 환경 하에선 확실히 문화적 측면에서도 부모세대 기억과 관심이 자녀세대에 전달되기 쉽다. 자녀들 역시 그를 거부하지 않으며, 사실 부모세대에 관심이 많다. 영화 장르에선 ‘그대를 사랑합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등 노년층 중심 콘텐츠가 뜻밖의 젊은 층 호응으로 깜짝흥행을 거둔 사례들이 많다. 장년층 이상 대표문화코드처럼 여겨지는 트로트 장르 역시 2030세대에서도 여전히 노래방 분위기 띄우기용으로 자주 사용되고, 2000년대 들어서도 ‘어머나’ ‘샤방샤방’ ‘사랑의 배터리’ ‘아모르 파티’ 등 젊은 층 호응을 얻는 히트곡들이 꾸준히 탄생해왔다. 퀸은 정확히 그런 효과를 내주는 4050세대 콘텐츠였고, 현 2030세대가 부모세대의 ‘보헤미안 랩소디’ 관심에 자극받아 극장까지 도달했을 가능성도 있다.

 

마지막으로, 그래도 결국은 퀸 역할을 들 수밖에 없다. 아무리 다른 원인들이 작용했을지라도 대중이 퀸 음악에 반응하지 않았으면 이 정도 초대박은 불가능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퀸 음악은 세대를 넘어 한국대중이 늘 좋아할 만한 것이었다. 이른바 “따라 불렀을 때 즐거운” 음악이기 때문이다. 한국공연에 괜히 ‘떼창문화’가 존재하는 게 아니고 노래방문화가 그토록 급속도로 퍼진 게 아니다. 퀸에겐 그를 충족시켜줄 캐치한 멜로디성을 지닌 곡들이 많고, 구성진 가창력을 필요로 해 부르는 ‘맛’도 있다. 점차 사운드 중심으로 재편되는 아이돌씬 음악과 그 극점에 있는 솔로가수들 발라드 음악으로 양극화된 한국대중음악계 현 상황에서, 사운드와 멜로디성을 겸비한 퀸 음악은 ‘한 세대 전 이미 등장한 대안’이 됐다는 것.

 

생각해보면 영미대중음악이 한국대중에게서 멀어진 첫 시점도 바로 이 “따라 불렀을 때 즐거운” 음악에서 영미음악계가 크게 벗어나버린 1990년대 초중반, 그런지 열풍 시점부터다. 이후 한국서 직접 해외 팝 경향을 도입, “따라 불렀을 때 즐거운” 후크송 중심으로 아이돌산업을 통해 제공하기 시작하자 영미대중음악을 비롯한 각종 해외대중음악 자체가 시장가능성을 잃고 사실상 주류시장에서 퇴출되다시피 했다.

 

퀸은 바로 그 오랜 ‘비주류 기간’ ‘퇴출기간’, 그리고 그만큼 해외대중음악 자체에 낯설고 어색해진 분위기를 뛰어넘어 다시 한 번 한국 젊은 대중에 다가섰다. 그리고 그 모든 성공담은, 위 언급한 ‘지극히 한국적인 문화적 배경’들이 함께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무릇 모든 ‘현상’은 실제적으로 그를 일으킨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 법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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