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진의 시네마컷] ‘안시성’ 속 특별한 리더 양만춘

[스포츠월드=이혜진 기자] 영화 ‘안시성’에는 ‘특별한 리더’ 양만춘이 있다.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안시성’ 역시 선과 악이 확실하다. 우리 입장에서만 보자면 고구려를 침공한 당 태종 이세민은 ‘공공의 적’이요, 이를 막아낸 양만춘은 ‘희대의 영웅’이다. 철저하게 양만춘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가운데, 인상적인 부분은 영화 속 그가 보여주는 ‘리더십’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장군상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강력한 에너지로 좌중을 휘어잡기보다는, 낮은 곳에서 성민들과 대소사를 함께 나누는 리더로 그려진다.

 

사실 양만춘에 대한 사료는 많지 않다. 고증이 어렵다는 것은 기댈 곳이 마땅치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것을 도전할 여지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연출을 맡은 김광식 감독과 배우 조인성이 색다른 장군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터. 논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 없던 리더를 만들어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영화 속에서 양만춘은 치매에 걸린 노인을 무사히 동네까지 모시는가 하면, 말 타기에 성공한 소년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칭찬한다. 성 안의 모든 이들이 양만춘을 따르고, 존경한다.

 

양만춘의 개인 서사가 나오지 않는다는 부분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왜 성주가 됐는지 굳이 묘사하지 않는다. 오로지 양만춘이 안시성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에만 집중할 뿐이다. 역적으로 몰리면서까지 안시성 성민들을 최우선으로 하는 모습은 양만춘표 리더십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덕분에 흔하디흔한 권력 다툼이나 치정 싸움은 뒤로 밀려났다. 누군가의 재물을 약탈하거나 탐내는 모습도 이곳에선 해당 사항이 없다.

 

어쩌면 영화 속 양만춘은 ‘유토피아’에 가까운 존재일 수도 있다. 권위 대신 유머를 탑재한, 그러면서도 결정적인 순간 기지를 발휘하는 젊은 리더의 모습은 현실 세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양만춘에게 시선이 가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네 이상향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 매일 같이 쏟아지는 권력형 비리, 갑질 논란 등에 신물이 난 대중이라면 양만춘이라는 리더에게 더욱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듯하다. 

 

hjlee@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