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희의 눈] 시사풍자 코미디를 못하는 이유

얼마 전 한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푸념 섞인 한 마디를 들었다

 

“현희야 한국에선 왜 풍자개그가 안되냐? 우리나라 개그 수준이 너무 낮아. 미국 봐라 대통령이 개그에 소재가 되잖아?” 이런 말을 듣고 한참을 고민했다.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 수도 있다. 그러나 자리가 어색해질까 봐 그냥 집에 들어와 컴퓨터를 켰다

 

사실 코미디의 꽃은 시사풍자다. 서슬 시퍼런 군부독재정권 시기에 김형곤 선배님은 ‘잘 돼야 될 텐데’, ‘잘 될 턱이 있나’를 외치며 넓은 이마와 턱을 쳤다.(여기서 이마는 전두환 전 대통령 턱은 이순자 여사를 상징 한 것으로 보인다) ‘딸랑딸랑’이라는 말을 하며 밑에서 눈치나 보며 아첨이나 일삼는 정부 관료를 비판하는 개그를 보며 자란 세대였지만 요즘은 왜 풍자 개그가 저때보다 후퇴했을까?

 

나 역시 시사 개그를 한다는 명목 아래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해봤자 제목을 차용하는 정도 예를 들어 ‘소비자 고발’이나 ‘불편한 진실’ 정도 되겠다.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해 봤다.

 

요즘은 누가 봐도 명확한 사건. 예를 들어 지난해 국정 농단 사건 정도 될 것이다 이 정도 사건이 아닌 이상 사실 총대를 매 주는 제작진은 없다. 시사개그를 하는 순간 시청자의 의견은 확연하게 반반으로 갈린다. 그것도 아주 극단적으로 갈린다. 방송된 내용 과 같은 의견의 사람들은 찬사를 보내지만 반대 의견인 시청자는 욕을 하기 시작 한다. 시작부터 반을 등지고 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전체를 관장하는 제작진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요즘같이 여론을 잘 반영하는 방송 분위기라면 더욱더 그럴 것이다. 해봤자 손해인 이일을 과연 누가 하려고 할 것인가?

 

흔히 말해 방송이 되기 전 검사를 맡는 곳에서부터 이 아이디어와 내용은 자체 편집이 들어간다. 윗선의 눈치를 볼 것이며 당시의 현 정부와 반대되는 의견의 내용이라면 할 생각 자체를 뇌 속에서 편집해 버린다. 수신료의 가치로 운영이 되는 곳이라면 더욱더 그랬다

 

지난 9년 동안 그렇게 후퇴해 왔다. 나 역시 시사 개그맨이라는 명목 아래 모 단체의 홍보대사가 됐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오를 정도면 말 다한 것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시사풍자 개그를 하려고 하는 개그맨들이 서있을 곳은 벼랑 끝 말고는 없다. 개그 아이디어 회의라고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욕을 안 먹을까 회의라 표현하는 것이 맞다. 이런 시기가 계속 이어지다 보니 요즘은 거의 씨가 말라 가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불편한 진실’이라는 코너에서 하려고 했던 내용 중 한 단락이다. 당연히 편집될 줄 알고 했지만 당연히 편집이 되었던 내용이다. 이 정도 내용이면 방송에 내는 것을 생각 못할 수준이니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셨으면 한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불편한 진실은 무엇입니까? 나라에 큰일이 생기면 무조건 북한 소행으로 돌리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 과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황현희였습니다.”

 

황현희 개그맨 겸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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