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넷플릭스, 작은영화들에게도 기회다

넷플릭스. 전 세계 영화계 차원에서 현재 가장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멀티미디어 엔터테인먼트 OTT 기업이다. 그 역할과 기능, 급격한 확장추세에 대해선 더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2017년 7월 이미 전 세계 가입자 1억 명을 돌파했고, 한국서도 지난해 ‘옥자’ 사태로 인지도를 크게 넓혔다. 미국선 가입자가 5100만 명을 돌파, 미국 프라임타임 인터넷 트래픽 1/3을 넷플릭스가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여기서 잠시 미국 넷플릭스 새 소식을 살펴보자. 2016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OA’ 소식이다. 오랜 준비기간 끝에 마침내 지난 1월 그 시즌2가 촬영에 들어갔다. 올해 말 공개 예정이니 시즌 간격이 2년이 되는 셈이다. 1년 간격으로 공개되는 ‘기묘한 이야기’ 등 여타 넷플릭스 히트작들보다 텀이 길었던 이유가 있다. 애초 ‘OA’는 처음부터도 큰 성공을 기대하지 않았고, 또 대중 반향이 상당히 천천히 일기 시작한 슬리퍼 히트작, 일종의 컬트 시리즈였기 때문이다. 그 상업적 가능성이 다소 늦게 입증됐다.

‘OA’는 확실히 ‘그랬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희한한 드라마 시리즈다. 일단 장르부터 뭐라고 딱히 규정하기가 힘들다. 내용은 더더욱 설명하기 어렵다. “‘아라비안나이트’와 데이비드 린치를 섞어놓은 결과물”이란 설명까지 나온다. 설명 자체만으로 이미 예측이 불가능한 독창적 콘텐츠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기이한 시리즈가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2017년 한 해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빈지 워치(한꺼번에 몰아서 보는 소비행태)된 쇼 10편 안에 들게 됐다. 시즌2 결정은 그렇게 이뤄졌다.

그런데 여기서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시리즈 주연배우일뿐더러 제작과 각본까지 겸한 팔방미인 브릿 말링 얘기다. 말링은 본래 독립영화 출신이다. 독립영화계에서도 똑같이 자신이 각본을 쓰고 그 각본을 토대로 제작과 주연을 맡는 식으로 활동해왔다. 그런데 당시 반응은 절대 ‘OA’처럼 열광적이지 않았다. 그녀의 주연/제작/각본작 3편은 모두 독립영화 기준으로 봤을 때도 흥행이 저조했다. 특이한 영상세계로 주목은 받지만 흥행은 안 되는 영화작가였던 셈이다.

그럼 ‘OA’가 기존 그녀 행보와는 전혀 다른 드라마여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다. ‘OA’는 사실상 말링의 첫 주연/제작/각본작 ‘사운드 오브 보이스’와 구성이나 내용상으로 상당히 닮았다. 같은 작가가 아니었다면 표절시비까지 나올 수 있었을 정도다. 결국 ‘사실상 같은 콘텐츠’가 극장용 영화계에선 무시(‘사운드 오브 보이스’ 극장흥행 총수익은 웬만한 한국영화 북미흥행 수익보다도 낮은 40만5614달러였다)당하고, 넷플릭스에선 최고 성공작 10편 안에 들게 됐단 얘기다.

바로 이런 점이 넷플릭스를 위시로 한 멀티미디어 엔터테인먼트 OTT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자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른바 기존 2차시장 기능의 확대다.

물론 이전부터도 영화 2차시장이란 1차시장을 ‘보완’하는 형태였던 게 사실이다. 할리우드 배우 커트 러셀의 코멘트, 즉 “홈비디오 시장이 없었다면 내 커리어도 존재할 수 없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 내내 ‘코브라 22시’ ‘괴물’ ‘빅 트러블’ 등 메인스트림 흐름에서 벗어난 장르영화들에 출연한 그는 그 특이한 선택들만큼이나 극장흥행에선 늘 죽을 쒀왔다. 그런데 메인스트림 영화들의 천편일률적 패턴에 질린 영화팬들이 2차시장에선 ‘다른 선택’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차시장 내에서 성장한 커트 러셀은 ‘숨은 티켓파워 스타’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그에 가능성을 본 제작자들로부터 섭외가 끊이지 않아 1990년대 이르러선 일약 특A급 메인스트림 스타로 거듭나게 됐다.

2차시장은 본래 ‘다른 선택’의 장(場)이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다. 1차시장인 극장용 영화는 사실 한계가 명확하다. 일단 극장나들이는 그 자체로 ‘혼자 관람’이 적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극장이란 공간 자체가 집단적 레저에 가깝기 때문이다. 대부분 데이트무비나 지인 동반 관람으로 이어지기가 쉽다. 그러다보면 각자 독특한 취향을 보상받는 대신 다수가 대충 만족할 만한 보편적 콘텐츠로 선택이 이뤄지기 쉽다. 그렇게 메인스트림 영화의 ‘안전한 전형’이 마련된다.

그러나 2차시장은 그와 다르다. 2차시장은 1980년대 홈비디오 시장부터 성립된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의 장이다. 가정 그 자체가 개인의 각자 취향이 보상받는 환경이듯 말이다. 거기다 기본적으로 콘텐츠 창고 형태이기에 일시적 트렌드나 의도된 밴드웨건 현상에 지배받지도 않는다. 오랜 시간 축적되는 입소문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여기에 넷플릭스는 하나를 더한다. 월정액제 수익구조란 점이다. 그러면 한 편 선택할 때 드는 비용을 고려해 비교적 ‘안전한 선택’을 하고자 하는 심리까지도 부순다. 보다 모험적인 선택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브릿 말링 영상세계 대중화도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넷플릭스 등 멀티미디어 엔터테인먼트 OTT 수혜를 입은 영상작가는 당연히 말링만도 아니다. 메인스트림 영화계에서 ‘아슬아슬하다’ 여겨져 온 독창적 영상작가들이 하나둘 그에 합류하고 있다. ‘엔드 오브 왓치’의 데이비드 에이어, ‘더 문’의 던컨 존스, ‘오큘러스’의 마이크 플래너건 등이 이미 넷플릭스에서 오리지널 영화를 내놓은 상태다.

나아가 케이블채널 쇼타임에서 ‘트윈 픽스’를 부활시킨 데이비드 린치도 그 수혜자에 속한다. ‘트윈 픽스’ 시즌3는 대부분 쇼타임 본방이 아닌 온라인을 통해 시청됐고, 덕택에 쇼타임 전체 가입자 수를 늘렸다. 물론 극장흥행 수치로도 알 수 있듯 린치의 열성팬 자체는 많지 않다. 그러나 ‘트윈 픽스’를 보기 위해 쇼타임에 가입한 이들 중 상당수는 별다른 불만요소가 없는 한 계속 쇼타임에 돈을 내며 가입상태를 유지한다. 이런 식으로 ‘상업적으론 위험하지만 고정팬층을 갖고 있는 독창적 영화작가’들이 환영받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제 한국 영화계를 돌아보자. 매년 절대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영화계 고정논란이 바로 스크린독과점 논란이다. 지난 며칠 동안만 해도 영화감독 정윤철, 배우 김상경 등이 스크린독과점 현상을 비판하고 나섰다. 논리는 수년째 같다. 이른바 ‘작은 영화’들이 설 곳이 없고, 관객들의 선택권도 침해받는단 주장이다.

물론 저 ‘작은 영화’들이 2차시장에서 생존근거를 마련하며 관객들을 만날 수 있던 시기도 있었다. 1980~90년대 홈비디오 시장 확대 시기다. 각종 비디오용 에로영화와 ‘영구’ 시리즈 등 아동영화들이 오로지 홈비디오 시장 하나만 바라보고 제작돼 명맥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런 구조는 인터넷 서비스 시대로 접어들며 각종 웹하드 및 P2P 사이트들의 불법 콘텐츠 유통에 의해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멀티미디어 엔터테인먼트 OTT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역할 할 수 있다. 독립영화계, 혹은 다소 ‘위험한’ 영화를 만들어낸 중소영화사 입장에선 밤낮 ‘극장과의 전쟁’을 치르느라 골몰하느니, 멀티미디어 엔터테인먼트 OTT와의 협력관계를 쌓는 것이 더 유효한 해결방안이다. 영화는 당연히 극장에서만 보는 게 아니다. 그리고 이미 미국 등 문화강국들에선 2차시장 규모가 1차시장보다 더 커진 지 오래다. 물론 지금도 각종 웹하드 등에서 ‘작은 영화’들이 정식적인 루트로 배급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조건이 너무 불리하다. 미디어 특성상 건당 불법복제가 손쉽고, 또 콘텐츠별로 가격이 책정돼있어 소비자들이 선택하기에 무리수가 따른다. 대중의 모험적 선택을 기대할 수 있는 장을 선택해 꾸준한 교섭과 그 상업적 가능성에 대한 설득작업에 들어가는 것, 그것이 현 시점 가장 유효하며 어찌 보면 유일한 ‘작은 영화’들, 그리고 ‘독창적인 영화’들의 미래 생존전략일 수 있다.

그게 말처럼 쉽게 되겠느냐는 의문이라면, 앞선 브릿 말링 상황을 보면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 이름을 아는 이들은 영화팬들 사이에서조차 거의 없었다. 그런 그녀가 이제 새로운 미디어와 만나 가장 콘텐츠를 많이 파는 영상작가 중 한 명이 되고, 일약 스타 배우/제작/각본가 반열에 올라서고 있다. 미디어가 바뀌면 대중의 소비 취향도 그에 적응해 바뀐다. 콘텐츠 퀄리티만 좋다면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

그래도 의구심이 든다면, 지금 당장 한국 극장가를 보면 더 이해가 쉬울 듯하다. 할리우드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온통 수퍼히어로물 천지다. 한국영화도 어느 순간부턴 정치적 사안을 다룬 블록버스터들 중심으로 대부분 천편일률화 돼가고 있다. ‘보편적 취향’을 맞추다 보면 극장가는 한국이건 미국이건 그런 식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이제 출구를 찾아야할 때, 아니 정확히는, 출구를 ‘실험’해봐야 할 때다. 그리고 대부분의 실험은 바뀌어가는 시대 및 테크놀로지 흐름과 발맞춰 진행해나갈 때 성공률이 높아지는 법이다. 건투를 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스포츠월드 & Segye.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추천뉴스

스포츠월드 AD 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