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준의 독한S다이어리②] K리그 풀뿌리, 아직 시들지 않았다

[스포츠월드=권영준 기자] 최근 K리그의 뒷문은 사늘했다. 대표 골키퍼들이 줄지어 일본 J리그로 향했다. 지난 2016시즌에는 김승규가 빗셀 고배 유니폼을 입었고, 정성룡은 가와사키 프론탈레와 계약했다. 2017시즌에는 권순태가 가시마 앤틀러스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현재 J리그에는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골키퍼의 현재와 미래가 대거 자리 잡고 있다. 앞서 언급한 세 선수 외에도 이번 신태용호에 이름을 올린 김진현(세레소 오사카)을 필두로 2016 리우올림픽 멤버였던 구성윤(콘사도레 삿포로), 안준수(세레소 오사카), 박승수(에히메) 임진우(구마모토) 고동민(마츠모토 야마가) 이윤오(베갈타 센다이) 한호동(도스파쿠사츠 군마)이 뛰고 있다.

골키퍼들이 대거 일본으로 향하는 흐름을 막을 길이 없다. K리그 구단보다 많은 거액 연봉과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유망주들에게는 해외 진출이라는 상징성도 있다. 이처럼 골키퍼들이 대거 일본으로 향하면서, K리그 골키퍼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국 축구의 근간이라고 불리는 K리그의 골키퍼 라인 전체가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K리그의 풀뿌리는 시들지 않았다. 막막하고 어둡기만 했던 막다른 골목에서 희망의 빛을 보고 있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꽃들이 봉오리를 터트리며 만개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대표주자가 바로 조현우(대구FC)이다. 선문대 출신인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골키퍼가 아니었다. 연령대별 대표팀에 가끔 이름을 올렸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2013년 대구FC 유니폼을 입고 프로무대를 밟았으나 2년 동안 서브 골키퍼로 뛰었다. 그러나 그는 주저앉지 않고 꿈을 향해 달렸다. 2015시즌 풀타임 골키퍼로 K리그 챌린지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그는 2016시즌까지 두 시즌 연속 ‘챌린지 베스트11’ 골키퍼 부문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올 시즌 클래식에서도 여전히 맹활약을 펼치며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았다.

양한빈(FC서울)도 주목할 만 하다. 2011년 강원FC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를 밟은 그는 올 시즌 전까지 6시즌 동안 단 2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사이 강원-성남을 거쳐 서울로 팀을 옮겨 다녀야 했다. 2011 U-20 월드컵 대표팀의 멤버였던 그에게는 너무나 긴 겨울이었다. 그러나 그는 올 시즌 중반 황선홍 FC서울 감독의 신임을 받고 그라운드를 밟았고, 연일 선방쇼를 펼치며 팀을 이끌고 있다.

전북 현대의 홍정남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07년 전북 유니폼을 입고 10시즌 동안 팀을 지켰지만, 권순태에게 밀려 백업 골키퍼에 머물렀다. 상주 상무 시절을 제외하고 8시즌을 전북 소속으로 뛰었는데 총 10경기 출전이 전부였다. 그러나 올 시즌 27라운드까지 치른 현재 26경기에 출전해 총 24골만 허용하며 팀의 선두 질주를 돕고 있다. 최소실점 경기당 평균 0.92점으로 20경기 이상 소화한 골키퍼 가운데 선두를 달리고 있다. 무실점도 8경기로 신화용(9경기)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이 밖에 강현무(포항), 윤보상(광주), 이호승(전남) 등이 그늘을 벗어나 뜨거운 햇살에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신태용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나도 K리그 출신이고, K리그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며 “한국 축구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K리그가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도 강조했다. 단순히 뛰어난 선수가 등장하는 것만이 한국 축구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조현우, 양한빈, 홍정남의 케이스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 결국은 수면 위로 올라와 따뜻한 햇볕을 받는 선수가 많아지는 것도 한국 축구의 발전을 이끄는 길이다. 신태용호의 합류한 조현우의 성장이 시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전히 칼바람이 불고 어려운 현실 속에 있지만, K리그의 풀뿌리는 아직 시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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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대한축구협회,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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