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같은 감독의 등장이다. 자신의 영화를 까는 감독이라니. ‘잘빠진 작품’이란 공동의 목표를 위해 동고동락한 사람들 입장에선 기운이 쪽 빠지는 일이다.
최근 영화판에서 안타까움을 자아낸 이슈가 있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 연출을 맡은 변성현 감독의 경솔한 SNS 사용법이 그것.
‘불한당’은 지난 17일 개봉 직후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등 흥행 청신호를 밝혔다. 평가도 좋았다. 스타일리시한 화면과 설경구, 임시완의 열연, 탄탄한 스토리는 관람객들의 입소문을 낳기 충분했다. 하지만 영화 홍보에 제동을 건 것은 ‘불한당’의 수장, 변 감독이었다. 그가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 SNS에 쓴 글이 문제가 된 것이다.
변 감독은 ‘정말 이제 불한당에서 벗어나고 싶다. 끝났다. 이 영화 꼴도 보기 싫다. 이제 깐느에서 마지막으로 보고 평생 안 보고 싶다’란 글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한편으론 이해가 되는 발언이다. 시나리오를 쓰고 2016년 8월부터 12월까지 촬영, 5개월간 편집과 홍보에 목을 맸으니 영화를 수백, 수천 번은 더 봤을 거다. 정답이 없는 답안지를 받아들고 제작자, 투자자, 배우, 관객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영화에 대한 애정, 부담을 이고 지고 있는 감독으로서는 빨리 이 무거운 시간에서 벗어나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저속한 표현이 화를 불렀다. 여성, 지역 비하 등 변명의 여지가 없는 글들도 발견됐다. 평점 테러와 보이콧 운동 조짐까지 보인다. 여러모로 변 감독은 관객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책임질 게 꽤 많은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깝다. ‘불한당’은 참 잘 만든 영화다. 올해 개봉작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변 감독은 ‘불한당’을 통해 차세대 스타 감독으로 기대를 모았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관심까지 받는 데 성공한다. 예고편과 4분 분량의 프로모션 영상으로 홍콩 필름 마트에서 판매를 시작해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일본, 호주, 인도 등 전 세계 85개국에 선판매되는 성과를 이룬 것. 이들 중 7개국은 현지서 개봉 날짜까지 확정된 상태다.
올해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는 단 3편의 영화만 부름을 받았다. ‘칸도 반한 불한당’이라는 수식어가 과장이 아닌 이유다.
변 감독은 논란 후 “상처를 받은 모든 분께 사죄드린다”며 사과글을 썼다. 그는 글의 말미에 “염치없지만 영화 ‘불한당’은 제 개인의 영화가 아니라 수백 명의 땀과 노력의 결정체다. 이 영화가 저의 부족함 때문에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덧붙인바 있다.
변 감독은 오는 25일 칸에서 국내 취재진과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었다. 변 감독은 불참 의사를 밝혔으나 제작사와 투자배급사에서 영화제 참석을 설득 중인 상황. ‘막말 논란’에 대한 사과의 뜻을 다시 한 번 전할 기회이기도 하다. 그의 말처럼 영화를 위해 힘쓴 수백 명의 정성을 위해서라도, 잘빠진 작품을 위해서라도 실망한 관객들에게 머리를 숙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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