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위크엔드스토리] 이순재 “드라마는 보고 없애는 소모품이 아니다”

[스포츠월드=최정아 기자] 여든이 넘은 노배우는 지금도 젊은 배우 못지않은 뜨거운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올해로 85세, 연기 경력 62년의 대배우 이순재는 어느덧 필드에서 활약 중인 최고령 배우다. 출연한 영화가 129편, TV 프로그램 106편, 공연이 59편이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은 그의 작품을 봤으리라. 최근엔 영화 ‘덕구’를 개봉해 7년 만에 주연작으로 돌아왔다. 노개런티로 출연한 이번 영화는 현재까지 18만 명의 선택을 받아 흥행 순항 중이다.

지난 1956년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가’로 데뷔한 그. 연극 영화 드라마 시트콤 예능프로그램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시대의 얼굴로, 연기 장인으로 거듭났다.

누군가는 이순재를 보며 나의 할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누군가에겐 연인의 모습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겐 스승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순재는 우리 곁에 없어선 안 될 배우로, 큰 어른으로 스며들었다. 

▲이순재의 연기 첫 발…그땐 그랬지

처음부터 대중의 사랑 속, 꽃길만 걸었을 것 같은 이순재이지만 그도 누구보다 치열한 20대를 살았다.

이순재는 “영화에 대한 충동으로 연기를 시작했다”고 그의 시작을 짚었다. 하지만 옛날에는 모두가 ‘흙수저’였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주로 드라마에 출연했고, 영화는 마지막에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순재는 배움에 대한 갈증과 호기심이 큰 학생이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고전 영화를 섭렵하며 막연히 예술가의 길을 동경했던 20세의 이순재. “재수하고 서울대 철학과 시험을 보며 떨어지면 서라벌예대(현 중앙대)에서 영화를 전공하려 했다”며 “그랬으면 영화감독으로 활동했을 것”이라고 미소를 짓기도.

“우리는 원래 빛나는 주인공부터 한 사람들이 아니다”라며 당시 배우들의 활동 분위기를 설명하기도 했다. 연극부터 시작한 이순재에게 처음 맡겨진 역할은 60대 노역. 그땐 모든 배우들이 주연과 조연을 오가며 역할의 다양성을 체험했다. 그렇게 배역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는 “우리는 직장 자체가 조금 다르지 않나. 신혼 초에는 연기하느라 20일 내내 밖에 못 들어간 적도 있었다. 열심히 해야 경제적으로 좋아질 수 있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며 쉽지 않았던 젊은 시절을 회상했다. 아이들의 불만도 있었다. 바쁜 아버지의 뒷모습만 바라봐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이 없다는 것. 그는 “운동회나 졸업식장을 못 갔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아내들도 다 함께 고생했던 시절이었다. 영화를 찍기 시작하면서 10여 년 만에 25평 내 집을 처음 마련하기도 했는데 항상 벌이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생활에 위기를 느껴서 아내가 만두 장사를 한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 덕분에 우리 가족이 잘 살 수 있었다”며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내가 바라본 드라마 제작 현장, 그리고 미투 운동

이순재는 인터뷰 동안 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소신을 갖고 이야기를 풀어냈다. 대한민국의 드라마 제작현장과 최근 불거진 미투 운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방송 적폐가 바로 드라마 제작 풍토다. 전 세계에 이렇게 드라마 만드는 데가 없다”며 일침을 놨다. 이순재는 “드라마는 우리끼리 보고 없애는 소모품이 아니다. 이젠 전세계로 우리나라 드라마가 나간다. 생산품을 이렇게 만들어서 경쟁하겠나. 심기일전해서 모든 역량을 발휘해도 부족한데 말이다. 주인공을 맡으면 매일 밤을 새워야 한다. 대사를 충분히 외울 시간이 안 된다고. 다 외워서 해도 될까 말까인데 간신히 대사 외워서 무슨 연기가 나오냔 말이다. 이런 풍토를 만든 게 잘못된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미투에 대한 질문도 피하지 않았다. 이순재는 “(현장에서) 엉뚱한 짓을 하는 친구들이 있는 모양이더라. 모든 직종이 마찬가지지만 유명해지고 영향력이 커질수록 자기를 절제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잘못하면 자기를 과시하게 된다”며 “그건 뭐가 모자란 거예요. 모자라서 그런 겁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국회의원 당선…그래도 연기가 좋더라

전 국민적 호감도가 높은 배우. 이순재에게도 정치의 유혹은 있었다. 이순재는 지난 1992년 민자당 중랑갑 지역구 의원으로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1년 뒤인 1993년 민주자유당의 부대변인까지 역임한 바 있다.

그는 “정말 열심히 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순재는 “특히 문화예술 쪽에 해야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 분야의 흐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했다. 그때 내 나름대로는 겸손을 배운 시기다. 신뢰도 쌓였고”라며 국회의원 시절 이야기를 풀어냈다. 하지만 진짜 행복한 자리는 ‘연기자 이순재’였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돌아가고 싶었다. 국회의원을 제대로 하려면 본인과 가족의 행복권을 포기해야 한다”며 “같은 대중을 상대하는 것이지만, 연기는 고통이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연기자의 자리로 돌아오고 싶었고, 그래서 더 열정적이게 연기를 한 것 같다”며 자신의 롱런 이유를 밝히기도.

연예계 어른으로 존경받는 그는 “팔십 넘어서까지 일을 하니까 부러워하는 거다. 젊었을 때 경험을 생각하며 후배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지 않으려 한다”며 자신의 가치관을 밝혔다. 이순재는 “나이 먹었다고 행세하고, 이것저것 조건 달며 까다롭게 굴면 다음부터 안 부른다. 모두가 즐겁게 일을 해야 하는데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그는 “우리 때는 행복의 개념이 막연했는데 요즘은 확실하게 찾는다”며 “오늘 하루의 행복에 유념해야 한다. 그렇게 일주일이 행복하면 계속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cccjjjaaa@sportsworldi.com 사진=김용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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