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위에 다시 선 '작은 일본', 원폭의 도시 히로시마에 가다

[히로시마(일본)=글·사진 장기남 기자] 지난 1959년 칸 영화제에서 상영된 ‘히로시마 내 사랑’은 일본 히로시마를 배경으로 프랑스 여배우와 일본인 건축가 사이의 짧은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제목에 적힌 그대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의 히로시마였다. 짧은 시간에 끝나버린 사랑의 허무함과 함께 전쟁의 유물로 기억되는 도시의 면면을 보여줬다.

오래된 영화와 함께 ‘원자폭탄’이나 ‘원폭피해’를 떠올리게 하는 항구 도시 히로시마는 본래 군사도시로 발전했다가 1945년 원자폭탄 투하 이후 도시 자체가 완전히 파괴됐다. 전쟁이 끝나고 오랜 기간을 거쳐 도시 복구에 성공한 히로시마는 주고쿠 지방의 경제·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히로시마는 ‘일본의 축소판’라는 별칭도 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함께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풍성하기 때문이다 .

히로시마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는 헤이안 시대의 대표적 유산 이쓰쿠시마 신사다. 일본 3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미야지마섬의 대표 관광지인 이곳은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593년에 창건, 1168년에 다이라노 기요모리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축된 이 신사는 바다위에 세워진 건물이 산과 일체를 이루는 모습에 감탄을 자아낸다. 전체 구조는 본전과 폐전, 배전, 불제를 하는 하라에도노, 고무대, 노무대를 비롯해 기타 신사 등이 300여m 길이의 회랑을 따라 늘어서 있다.

해발 535의 미센산에는 관광객 편의를 위해 정상 부근까지 로프웨이가 연결돼 있다. 또한 이쓰쿠시마 신사 건물 중심에서 200 떨어진 앞바다에는 일주문 역할을 하는 오토리이가 우뚝 서 있는데 밀물 때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습이 유별나게 아름답다.

불교 선종 사찰로 유명한 신쇼지는 2016년 9월 박물관으로 재개관했다. 약 7만 평에 달하는 신쇼지는 정원을 포함해 건축, 미술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쇼와 시대의 정원 창작자 나카네 긴사쿠는 바다의 파도가 연상되는 돌과 여러 가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모뉴멘트(기념적인 건조물), 작은 폭포와 나무를 배치해 선 사상의 세계관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이쓰쿠시마 신사와 신쇼지가 종교인들에게 1순위로 꼽히는 방문지라면 바닷가마을 도모노우라는 예술인들의 방문지라 이야기할 수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작품 ‘벼랑 위의 포뇨’의 배경을 이곳에서 구상했다. 1859년에 세운 석조 등대와 부두 등은 이 마을 명물이다.

조선통신사자료관(고치소 이치반 관)과 다이초로 역시 히로시마를 여행한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이다. 쇄국정책을 펴고 있었던 일본 에도시대, 조선왕조는 도쿠가와 장군의 대가 바뀌거나 경사가 있을 때를 계기로 합계 12회에 걸쳐 외교사절단인 조선통신사를 파견했다. 조선통신사 일행들이 각지의 민중과 문화에 접하며 쓰시마와 에도 사이를 왕래하는 과정은 당시 중요한 국제교류였다. 조선통신사는 대륙의 최신 정보, 시문, 서화 등을 일본에 가져다 줬고 제례, 공예품등 다양한 발자취를 남겼다.

다이초로는 조선통신사유적이 있는 해안가 후쿠젠지라는 절 경내에 있다. 후쿠젠지는 헤이안 시대 천역시기(950년경)에 창건됐다고 전해지는 진언종의 사원이다. 본당에 인접한 다이초로는 에도시대의 겐로쿠시기(1690년경)에 창건된 곳으로 영빈관과 서원으로도 활용된 공간이다. 일본의 국가지정 사적지인 이곳은 다다미방에서 바다를 조망하는 경치가 매우 훌륭하다. 1711년 조선통신사 종사관인 이방언은 ‘일본 제일의 경승지’라는 글을 남겼다.

히로시마의 문화적 정체성은 잿더미가 됐던 도시를 다시 만들어가는 모습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전쟁 이후 구호식품이었던 오코노미야키를 일본 대표 음식으로 만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찬란했던 전통을 지키고 재건을 두려워 하지 않는 히로시마 사람들은 ‘원폭의 도시’라는 오래된 이름을 ‘문화의 도시’로 바꿔놨다.

knchang2@sportsworldi.com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이쓰쿠시마 신사'

일본의 국가 중요문화재인 '오오도리이'

신쇼지 내 풍경

신쇼지 내에 위치한 아트 파빌리온 고테이는 바다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배 모양을 하고 있다.

도모노우라에서 바로 본 풍경

도모노우라에 있는 1859년 세운 석조 등대

조선통신사 행렬 모습

다이초로에서 바라 본 풍경

조선통신사의 종사관인 이방언이 남긴 ‘일본 제일 경승지’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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