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한서희, 논란이 아니라 현상

근래 서울시내 유흥가를 지나친 이들 중엔 “함께 가자 서희야!” “너는 어디로든 날 수 있어” 등 캐치프레이즈가 걸린 랩핑버스를 본 사례들이 꽤 있을 듯싶다. ‘스몰스타’ 한서희를 응원하는 한서희 서포터즈에서 모금을 통해 마련한 랩핑버스다. 이 ‘서희버스’는 12월7일부터 19일까지 운행하며, 첫 주엔 합정-홍대-신촌 등 강북일대, 둘째 주엔 청담-강남 등 강남일대를 돌아다닌다. 알다시피, 아이돌이나 영화상품 외에 이런 종류 랩핑버스가 돌아다니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한서희는 확실히 희한한 종류 준(準)셀레브리티, 스몰스타다. 어떤 의미에선 현재 한국 미디어에서 어떤 식으로건 활동하는 이들 중 가장 특이한 케이스라고도 볼 수 있다. 그 인지도 확장과 지지세 확보 과정 자체부터가 그렇다. 애초 일개 연예인지망생이었다. 2013년 MBC ‘위대한 탄생’ 시즌3에 출연해 탑10을 앞두고 탈락했다. 이후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하고, 또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 그리고 2015년 계약이 만료돼 퇴사했다. 그대로 계속 연예인을 지망했더라면 향후 행보를 알 수야 없겠지만, 여기까지만 보면 엔터테인먼트계 뒤안길의 저 수많은 ‘실패’ 사례들 중 하나다.

그러다 갑자기 ‘마약사범’이 됐다. 지난 6월 보이그룹 빅뱅 멤버 탑과 함께 그의 자택에서 대마초를 피웠다는 혐의로 형사입건 됐다. 정확히는 2016년 4차례 걸쳐 대마초 90g를 구매하고 7차례 흡연한 혐의다. 재판과정에서 직접 LSD를 구매해 2차례 투약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1심에서 한서희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과 보호관찰 120시간, 추징금 87만 원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에서도 같은 판결이 나왔다.

재판과정에서 한서희는 연예인지망생다운 빼어난 미모와 법원 출석 시 명품브랜드 착용 등으로 주목받았다. 한서희에 대한 일부대중의 ‘지지’가 드러나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사회사건 당사자들의 명품 착용 비판을 가리키는 이른바 ‘블레임 룩’을 놓고, 여성들 명품 선호에 대한 남성층 비판에 각을 세운 한서희 발언들이 유사 페미니즘 선동효과를 낸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한서희는 페미니즘 계열에서 환호 받을 만한 행태를 계속한다. 원심 선고 당일 “우린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한다(We should all be feminists)”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법원에 출석했다. 2017년 9월24일엔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이후 한서희는 SNS를 통해 워마드 등 여성우월주의 사이트에서 주로 사용하는 남성비하 언어 등을 꾸준히 사용하면서, “트랜스젠더는 여성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급진 페미니즘 발언으로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와 SNS 설전을 벌이고, 배우 유아인의 ‘메갈’ 언급 트윗이 화제가 되자 유아인 저격발언들을 이어갔다. 그리고 지금이 그 결과다. 이제 그녀를 응원하는 서포터즈는 이렇듯 랩핑버스까지 마련하며 그녀를 하나의 아이콘으로서 추앙하고 지지한다.

한서희 현상은 이처럼 매우 특이한 과정을 거친 것도 사실이지만, 어떤 의미에선 ‘올 것이 왔다’는 식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일단 메갈리아 등을 중심으로 뭉쳤던 급진 페미니즘, 사실상 여성우월주의 세력이 ‘원하던’ 아이콘이 나와 준 데 따른 현상이란 해석이다. 그녀는 여성우월주의 세력이 그간 뒤집어쓰고 있던 이미지의 정반대다. 미모에, 부유하고, 그녀 발언에 따르면 톱 아이돌과도 연애하는 화려한 생활을 누렸다. ‘사회부적응자-인생패배자들 넋두리’란 여성우월주의 세력에의 조롱을 일거에 날려버릴 수 있는 아이콘인 셈이다. 심지어 마약사범이란 그녀의 과오조차 방어해주고픈 심리적 동력이 거기서 마련된다.

물론 그녀를 소비하는 이들이 한서희를 단순히 보수적 사회분위기에 침투하고 저항하기 위한 도구로써 이용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내재된 진짜 욕망’에서 비롯된 동경심리가 작동하고 있는 건지는 본인들조차 헷갈려할 수 있겠지만. 어찌됐건 분명한 건, 한서희와 관련된 소비들은 현재 스타산업 형태로서 작동하고 있고, ‘서희버스’는 지금 이 시간에도 서울시내를 누비고 있단 점이다.

물론 그런 한서희도 그저 잠깐의 트렌드일 뿐 대중은 곧 다른 대체재를 찾아 이동하고 말 것이란 예상도 있다. 스타산업의 근본논리다. 사실상 누구도 이 논리에서 벗어날 순 없다. 그러나 한서희는 왠지 ‘그렇게 빨리’ 사라질 것 같진 않단 예상이다. 한서희 스탠스는 의외로 카피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녀에겐 단순히 미모+재력+여성우월주의 결합만 있는 게 아니다. 이 아이돌천국 시대에 하늘의 별과 같은 글로벌아이돌과 연애‘씩이나’ 했다고 말하는(그리고 사실상 그 정황도 납득할 만한) 스펙(?)이 하나 더 붙는다. 이 부분을 짚어보자.

흔히 한서희에 대한 해석 중 대표적인 것이 반(反)아이돌팬덤적이란 부분이다. 아이돌산업 특유의 유사연애적 소비를 비웃으며, 자신은 아이돌과 실제로 연애도 해봤다고 자랑한다. 흔히 말하는 ‘리얼충’의 오타쿠 비웃기다. 그런데 메갈리아 전신 여성시대의 남자 연예인 갤러리에서 시작된 여성우월주의 세력은 근본적으로 남자아이돌 팬덤과 교집합이 크다고 보는 게 또 맞다. 그럼 당연히 한서희에 대해 비판적이어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가볍게 유사연애적 소비를 즐기는 팬층에서야 기분 나쁠 수 있겠지만, 그 정도가 심해질수록 한서희에 대한 입장은 조금씩 달라진다. 어떤 의미에선 다분히 자학적인 흐름, 이른바 ‘성덕(성공한 덕후)’에 대한 질투와 동경심리가 동시에 이는 구조다. 그만큼 더 집착하게 되고, 더 지지하게 된다.

한 마디로, 대리만족의 꿈을 이뤄주는 모델이다. ‘남성을 소비한다’는 개념 하에 뭉친 여성우월주의 세력에 있어선 더 그렇다. 그런 종류 ‘스펙’은 쉽사리 대체재가 나오기 힘들다. 어쩌면 마약사범이란 과오까지도 팬덤 형성엔 도움이 될는지 모른다. 본래 그런 종류 뚜렷한 비판요소, 즉 약점이 존재해야 그를 방어하고자 하는 보호심리도 더 열렬해지거니와, 이미지 메이킹 면에서 소위 ‘갈 데까지 다 간 사람’(?)이란 인식이 같은 여성 입장에서 모종의 해방감과 통쾌감을 안겨주는 구석도 존재한다. 역시 마찬가지로, 대체재가 따로 등장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미모와 재력을 갖춘 또 다른 급진 페미니스트가 등장한다 해도, 한서희에 비해선 ‘고급스러운 척하는 된장녀’ 정도로만 여겨질 수 있다.

한편 한서희 현상에선 주목할 부분이 하나 더 있다. 어쩌면 훨씬 더 중요한 요소, 대중문화산업 전체의 미래비전과 관련된 요소일 수 있다. 바로 지난 수년 간 진행돼오던 ‘스몰스타 전성시대’ 정점을 찍어주는 현상이란 점이다. 지난 수년 간 엔터테인먼트계는 유튜브, 아프리카, 트위터 등 뉴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스몰스타들 융성을 꾸준히 목격해왔다. 이젠 유튜버들끼리의 작은 분쟁마저 소소한 대중적 화젯거리가 되고, 그 선두그룹에 있던 ‘영국남자’ 조슈아 캐럿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킹스맨 2’ 프레스 정킷의 첫 번째 순서로 낙점돼 그 주연배우들과 인터뷰하며 치맥도 같이 한다.

세상은 스몰스타들을 ‘지지’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이야말로 한국식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이기 때문이다. 전용극장 찾아가면 실제로 볼 수 있단 개념이 한국식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이 아니다. 인터넷이 가장 활성화돼있는 나라, 그러다보니 인터넷 중심으로 모든 스타산업이 작동하는 한국 현실에선, 인터넷 상에서의 접촉면적 확대와 심화가 곧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이다. 스몰스타들은 그렇게 인터넷상에서 가깝고 친숙하며 소위 피드백이 너무나도 잘 된다. 활동이 열렬해지면 준(準)친분관계도 가능해진다.

그리고 바로 그게 21세기 엔터테인먼트계 전반적 흐름이다. 정확히는 인터넷이란 도구가 상용화된 1990년대 중후반부터 차근차근 진행돼온 흐름이다. ‘빅스타’는 사실상 제한된 출구를 통해서만 탄생됐다. 몇 되지도 않는 TV채널, 걸리는 영화라 봤자 한계가 있는 극장, 공간제약이 그보다 더 심한 공연장 등등. 각기 다른 소비취향은 그처럼 좁은 출구로 빠져나온 몇몇 스타들에 ‘적응’됐다. 꼭 맞진 않더라도 ‘대충’ 입고 보는 기성복 느낌으로. 그런데 인터넷은 이 같은 출구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넓혀놨고, 그 결과가 지금의 ‘스몰시대 전성시대’다. 각자에게 꼭 맞는 스타들을 작은 규모로 더욱 살갑게 소비하는 시대다.

한서희도 이미 그 대표주자 중 하나가 됐고, 사실상 상당히 충격적인 과정을 거쳐 그렇게 됐다. 그러나 위 언급했듯, 그 과정 하나하나가 작지만 탄탄한 스몰스타 기반을 만들어줬단 점 역시 부정하기 힘들다.

이런 흐름 자체는 딱히 나쁜 게 아니다. 여성우월주의건 뭐건 범법 영역으로 치닫지 않는단 가정 하에서라면 다들 자기 욕망에 꼭 맞는 스몰스타들을 소비하며 살아가는 게 2000년대 스타산업 본질이 돼가고 있다. 굳이 빅스타가 되지 않아도 무방할뿐더러, 더 유리한 구석도 많다. 빅스타는 보다 넓은 범주 타깃을 포괄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보수적 스탠스로 갈 수밖에 없다. 모두가 다 ‘착한 아이’가 될 필요가 있다. 무대에선 거친 랩을 쏟아내도, 무대에서 내려오고 나면 다들 사회모범이 되는 순한 아이들이어야 했다. 반면 스몰스타는 무대 위에서나 아래서나 ‘나쁜 아이’도 충분히 역할 가능하다. 그리고 어쩌면 시대는 모두가 다 ‘착한 아이’들뿐인 기존 엔터테인먼트계 구조에 질려 이 같은 과격한 스몰스타를 탄생시킨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서희는 이제 더 이상 ‘논란’이 아니라 어엿한 하나의 ‘현상’인 것이다. 기존 존재하던 수많은 흐름들 속에 순차적 단계를 거쳐 완성된 가장 대중적인 형태의 스타덤이다. 대중이 드러내고자 하는 가치와 숨은 욕망이 이처럼 처절하게 결합된 형태도 또 없다.

어찌됐건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과격하게 A급과 B급, 대중상품과 틈새상품의 경계가 무너지곤 하는 한국 엔터테인먼트계는 이제 이런 현상까지 낳게 됐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 하나의 연구대상으로서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와중에 한서희가 그간 등장한 가장 기괴하고 이해하기 힘든 종류 스몰스타라 보긴 또 어렵다. 많이들 잊었겠지만, 2000년대 초반 한국 엔터테인먼트계엔 유명 뮤지션들 노래를 일부러 엉터리로 따라 부르며 스타가 된 경우도 있었다. ‘음치가수 이재수’, 기억들 할는지 모르겠다. 뭘로 보든 여긴 참 과격하고 실험적인 엔터테인먼트 천국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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