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 의심' 혈압약, 가시지 않는 불안

발사르탄은 문제 안돼… 중국 제약사 설비과정서 불순물
불안한 환자들 오리지널 제품에 몰려… '디오반' 품귀현상
[정희원 기자] “아버님, 발사르탄은 효능이 검증된 혈압약의 한 종류에요. 이 자체가 발암물질은 아니고요. 제조공정에서 사용되는 원료의약품 중 중국산 원료가 논란인데, 이 약 때문에 암환자가 발생하지는 않았고요. 자세한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일단 논란 성분이 들어간 약을 회수 조치하는 상황이에요. 드시는 약은 다행히 문제가 되지 않네요.”

서울 강남구의 한 가정의학과 A모 원장은 지난주 ‘고혈압약 발암물질 사태’ 이후 지금까지도 약물상담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젊은 환자층은 식약처 발표 직후 빠르게 약물확인을 요청하거나 스스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홈페이지에서 관련 내용을 확인했지만, 이들에 비해 정보가 상대적으로 느린 노년층은 다소 시간이 지나서 내원하고 있어서다.

A 원장은 “처음 우리 병원에서 논란이 된 중국산 발사르탄 함유 약품이 있는지 확인할 때, 마치 의대 합격 확인을 했을 때처럼 떨렸다”며 “다행히 처방 이력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안해하는 환자들의 문의는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중국 제약사 제지앙화하이가 만든 고혈압 원료의약품 발사르탄에 불순물이 들어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네 내과·가정의학과 등은 ‘고혈압약 상담’으로 업무에 차질을 빚고 있다.

대학병원의 경우 문제약품 관련 공지를 띄워 사태 첫날을 제외하고는 잠잠한 분위기다.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고려대 안암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한림대병원 등 주요 대학병원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판매중지 처분을 받은 고혈압치료제를 처방하지 않았다. 반면 동네 병원에서는 아직도 환자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현재 국내서 판매금지된 고혈압치료제는 54개사, 115개 품목에 이른다. 이와 관련된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국내 환자는 전체의 3%(약 17만8000여명)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식약처는 국내에서 허가된 고혈압치료제는 2690개 품목에 이르는 만큼 대체제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발사르탄 자체는 문제없어


사실 발사르탄 자체는 문제가 없다. 이는 고혈압치료제의 다양한 성분 중 하나다. 2000년대 초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가 ‘디오반’이란 이름으로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다만,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기간이 끝나면 다른 제약사들도 같은 성분을 쓰는 복제약(제네릭)을 만들 수 있다. 국내 제약사들은 2012년 발사르탄의 특허가 만료되자 제네릭 개발에 착수했다. 가격 경쟁력을 따져 주로 중국에서 원료인 발사르탄을 수입해 완제품을 내놨고, 현재까지 관련 복제약 571종이 있다.

문제는 제지앙화하이 사가 제조한 발사르탄이다. 이 회사는 2012년부터 발사르탄 제조에 나섰다. 하지만 2015년 10월 제조공정·설비를 일부 변경하면서 의약품에 들어가서는 안 될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가 함유된 것이다.

◆NDMA, 암 발병 가능성 적다지만… “그래도 불안해요”

NDMA는 국제암연구소(IARC)가 사람에게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물질인 ‘2A등급’으로 분류된다. IARC는 발암물질을 총 4개 그룹으로 나누고 있으며 가장 위험한 물질은 ‘1A등급’이다. 2A는 인체발암성에 대한 자료는 제한적이지만, 실험동물 자료가 충분한 물질을 의미한다. 2A등급에 해당하는 NDMA는 물, 공기, 가공식품 등에도 소량 발견된다. 이는 붉은육류를 섭취했을 때 암을 유발하는 정도와 비슷한 위해성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알려졌다.

대한고혈압학회도 NDMA의 유해성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학회 측은 “이 물질은 체내에서 자연적으로 생기기도 하며 미량으로는 인체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NDMA 자체는 인간에게 발암 가능성을 유발할수 있지만, 아직까지 부작용이 보고된 사례는 학회가 알기로는 없다”고 말했다.

◆환자 불안감에 오리지널 ‘디오반’ 품절

만약 2015년 10월부터 약 3년간 중국산 발사르탄 치료제를 복용했더라도 발암우려는 적다는 게 학계 의견이다. 대한고혈압학회는 “외국 논문을 분석한 결과 NDMA를 5~6년을 복용해도 암 발병에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를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환자가 불안한 것을 깊이 이해한다고 강조했다.

조찬호 청담셀의원 원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은 “발사르탄 약물 복용이 걱정된다면 ARB 계열의 다른 약물로 교체 처방을 받을 수 있는지 주치의와 상담할 것을 권한다”며 “성분만 바꾸는 게 불안하다면 원료가 다른 제품으로 처방받으면 된다”고 조언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중국산 원료가 들어가지 않은 오리지널 발사르탄 제품 ‘디오반’은 이미 품절현상을 겪고 있다. 수입·판매사인 한국노바티스가 물량 공급 조절에 나선 것으로 파악된다. 당분간 발사르탄 오리지널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일부 국내 제약사들은 ‘우리 약은 문제가 없다’며 영업강화에 나서고 있지만 현재 문제가 된 약제가 모두 제네릭 약물인 만큼, 진료현장에서는 가급적이면 오리지널 약품으로 처방을 교체하고 있다.

한편, 식약처의 대처에 아쉬움을 내비치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 강남에서 가정의학과를 운영하는 B모 원장은 “중국산 발사르탄 약제에 발암물질 등을 언급한 식약처 발표가 성급했다고 생각한다”며 “의사와 상의하라면서 정작 의료기관을 찾기 힘든 주말에 관련 내용을 발표한 것은 환자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고 지적했다.

내가 복용하는 고혈압약, 제지앙 화하이사 원료 들어갔다면?

우선 식품의약품 안전처 홈페이지에 들어가 현재 복용하는 고혈압약이 문제가 되는 115개 중 하나인지 확인해보자. 이를 찾기 어렵다면 과거 약을 직접 조제받은 병·의원, 약국에 물어보면 된다. 이후 문제가 없는 다른 고혈압 치료제로 교환받을 수 있다.

- 이미 복용한 의약품은 환불해주는지?

환불 절차는 운영하지 않는다. 단, 복용 후 남아있는 의약품은 기존에 이용하던 병·의원에서 다시 처방받아 교환받을 수 있다. 기존에 이용했던 약국에서도 대체조제 받을 수 있다.

- 아무런 준비 없이 병원이나 약국을 찾아가도 되는지?

반드시 남아있는 약을 챙겨가야 한다. 교환도 아무데서나 하는 게 아니라, 과거에 약을 직접 조제 받은 곳에서만 받을 수 있다.

- 다른 품목으로 대체조제할 경우, 비용이 발생하는지?

당초 처방받은 약과 같은 가격의 대체 의약품으로 조제하는 게 원칙이어서 환자가 지불해야 할 금액은 없다. 병·의원과 약국의 부득이한 사정으로 당초 처방받은 의약품보다 비싼 가격의 의약품으로 조제하게 되더라도 따로 추가비용은 발생하지 않는다. 판매중지 품목이 다시 처방·조제되지는 않는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의료시스템 상 불가능하다.

happy1@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