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아이돌 인성이 중시되는 이유

5월18일 첫 방송되는 엠넷 걸그룹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 48’이 지난 주말 동안 아이돌 팬층 내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프로그램 출연 오디션을 보고 있다는 48그룹 현역 멤버들 정보가 올라오면서 부터다. 출연 소문이 도는 멤버들 중 한 명의 과거 행적들이 다시 소개되면서 문제는 더 본격화됐다. 이런 식으로 ‘인성’ 논란 소지 있는 멤버가 출연하면 멤버 개인은 물론 프로그램과 48그룹 전체에도 좋을 게 없단 주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 아이돌판은 일본보다 아이돌 ‘인성’을 훨씬 중시하는 분위기란 해석이다.

이 같은 해석을 입증해줄 상황은 바로 지난달에도 벌어졌다. 1월24일 정식 데뷔한 CJ E&M 걸그룹 프로미스_9 사례다. 데뷔와 동시에 팀 멤버의 ‘과거’ 루머가 포털사이트 관련 뉴스 댓글창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실제로 이 같은 ‘인성’ 논란은 적어도 현재로선 일단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프로미스_9 데뷔성적은 화려한 프리데뷔 마케팅에 비해선 초라한 편이었다.

사실 이 같은 ‘인성’ 논란 위력을 단박에 설명한 만한 예시는 따로 있다. 걸그룹 티아라다. 티아라는 어마어마한 팀이었다. 2011년 ‘롤리폴리’로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 연간 순위에서 당당 1위를 차지했던 팀이다. 국내 인기만으론 당시 걸그룹 세 손가락 안에도 꼽혔다. 그러던 팀이 2012년 ‘화영 왕따 사건’을 만나 급격히 추락, 무려 5년간을 헤매야했다. 걸그룹으로서 가장 화려하게 보낼 수 있었던 시절을 통째로 놓친 것이다.

확실히 한국은 여타 대형문화시장들에 비해 연예인들 ‘인성’이 크게 중시되는 분위기다. 미국 같은 서구와는 아예 비교가 불가능하다. 미국서도 이번 ‘미투’ 캠페인으로 할리우드 성폭력범들이 일거에 퇴출되긴 했지만, 그 정도 범법사안 및 인종차별 이슈 등과 얽히지만 않으면 대다수 개인적 악덕들은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다. 소위 ‘본업’만 잘 하면 된다. 옆 나라 일본도 비슷하다. 아이돌, 그중에서 걸그룹으로 대상을 좁혀 봐도 그렇다. 사실상 ‘연애’만 발각이 안 되면 대부분은 그냥 넘어간다. 이런저런 인성 루머들이 터져도 오타쿠들 내에서의 화제로만 끝날 뿐이고, 그마저도 오래 가진 않는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먼저 걸그룹이란 작은 범주부터 생각해보기로 하자.

일단 한국에선 걸그룹 소비계층이 일본처럼 남성 중심으로 편중돼있질 않다. 팬층 대부분을 여성이 차지하는 걸그룹도 많고, 남성층에 반응 좋은 걸그룹도 먼저 여성층 ‘인정’을 받아야 메인스트림급으로 성장하는 게 기본패턴이다. 초반에 음원 총공 등으로 이른바 ‘시동’을 걸어주는 건 여성층이란 얘기다.

그런데 이 여성층은 근본적으로 남성들보다 관계지향성 측면에서 부단히 민감한 존재다. 페미니즘 관점에서 발달심리이론을 연구한 미국심리학자 캐롤 길리건은 심지어 여성의 도덕체계 자체를 ‘관계지향성 도덕’이라고까지 규정한 바 있다. 남성의 도덕이 사회정의와 신념 등에 기준을 두고 있다면, 여성의 그것은 인간관계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있단 얘기다. 그만큼 여성층은 ‘관계’에 관심이 많고, 여가로서의 아이돌 소비에 있어서도 팀 내 멤버들의 관계성에 주목해 소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다보니 이 관계성에 해가 되는 멤버 내지 과거 루머 등을 통해 공동체 내 관계에 위협적 행동을 했다는 멤버들에 대해선 사실상 반감을 넘어 도덕적 단죄를 내리려는 경향까지 발견된다.

돌이켜보면 ‘화영 왕따 사건’을 비롯, 갖가지 아이돌 ‘인성’ 논란 주역들은 대부분 공동체 내 인간관계 유지에 해악적 행동을 한 경우에 집중돼왔단 점을 알 수 있다. 왕따, 학교폭력, 인신공격성 저격, 동료 배신 등등 사례가 등장할 때 최대 화력을 발휘해 실질적으로 해당멤버를 매장(?)시킨다. 반대로 관종 등 관계성과 무관한 인성 논란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포용범위가 넓은 편이다. 이 차이를 명확히 인지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한편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사실상 한국인들 자체가 이 ‘인성’ 문제에 대해 유난히 관심 많은 편이란 점을 알 수 있다. 8년 간 서울대에 머무르며 한국철학을 공부한 지한파 지식인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의 최근 저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역시 이 부분을 짚는다. 오구라 교수는 한국사회 특성에 대해, 모든 사람을 그 ‘도덕 함유량’에 따라 평가하며 도덕영역과 무관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라고 진단한다. 운동선수나 가수 등에 대해서도 “경기 성적이나 노래 실력만으로는 평가받지 못하고, 자신이 얼마나 도덕적인가를 국민들에게 납득시킨 후에야 비로소 스타가 될 수 있는” 사회란 것.

그럼 왜 그런 사회분위기가 형성된 걸까. 근본적으론 사회학자 페르디난트 퇴니에스의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 논리로 해석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우리말론 공동사회와 이익사회다. 공동사회가 가족, 친족, 민족, 마을 등 혈연이나 지연 등을 통한 끈끈한 유대감에 기초해 이뤄진다면, 이익사회는 회사, 도시, 국가, 조합, 정당 등 계약이나 조약, 협정 등을 통해 타산적 이해로써 이뤄진다. 공동사회가 집단주의적이라면 이익사회는 개인주의적이란 속성도 존재한다.

그런데 압축성장을 통해 발전한 한국사회는 현재 공동사회-집단주의사회에서 이익사회-개인주의사회로 의식이 뒤늦게 이동하는 과도기에 놓여있고, 그렇기에 타산적 이해로써 소비되는 각종 문화상품들에도 공동사회적 덕목들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단 분석이다. 한국선 그 핵심이 ‘관계’를 중심으로 한 ‘인성’이 된다. 반대로 이익사회-개인주의사회로 의식적 이동이 어느 정도 마무리 지어진 사회에선 소비자들이 각 상품에서 자신이 필요로 하는 부분만 주고받으며 그 이상 요소엔 관심을 끈다. 특히 ‘관계’에 있어 ‘인성’ 부분은 실제로 맞상대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단 식이다. 한국 분위기와 크게 다르다.

이제 이 같은 논리들을 아이돌이란 상품에 적용해 생각해보자. 사실상 가장 대응하기 피곤한 상품이 바로 걸그룹이다. ‘동성’이 시동을 걸어 인정해주고 난 뒤, ‘이성’이 소비규모를 부풀려주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일단 ‘관계’ 중심 ‘도덕 함유량’ 차원에서 불리한 멤버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팀 내 관계성 측면에서도 따스한 가족적 이미지를 계속 선사해줘야 여성층으로부터 인정받는다. ‘도덕적 하자’가 없어야 일단 발동이 걸린단 얘기다. 그런데 여기서 통과되더라도, 이후 이성 소비자들을 만나는 과정에선 상황이 또 다르다. 유사연애심리를 사고파는 타산적 관계로 돌변하기에 ‘연애’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면, 동성 소비자들은 큰 문제 삼지 않더라도 이성은 확실히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게임이 맞다.

그런 점에서 일단 ‘프로듀스 48’ 경우, 특히 관계성 측면에서 여성층 비호감을 살 수 있는 48그룹 멤버들은 배제하는 편이 좋다. 왕따, 학교폭력, 저격 등 이슈가 발생할 수 있는 멤버들 얘기다. 공연히 한국 와서 배싱만 당하다 돌아갈 수 있다. 48그룹 한국 팬들이나 일본 팬들이나 모두 원치 않는 결과다. 최근의 프로미스_9에 대해선, 과거 루머에 대한 해명이 명확히 나와 줘야 하는 게 우선이고, 해명이 까다롭고 애매한 상황이라면 이제부터라도 팀 내 관계성의 가족적 포근함을 쉴 새 없이 소개하고 강조하는 편이 좋다. 다시 말하지만, 이 같은 측면은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걸그룹마저 무너뜨렸던 이슈다. 절대 간과해선 안 된다.

어찌됐건 이 같은 한국사회 분위기에 대해 딱히 좋다 나쁘다를 말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아이돌산업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엄격한 분위기에서 탄생된 아이돌들이 세계시장에서 호응을 얻어 팔리고 있는 건 맞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인기에 도움이 됐을 지도 모를 일면이다. 그런데 이 같은 일면이 알고 보면 시장을 경직시키고 위해를 주는 상황이더라도, 이를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시대와 함께 대중의식 흐름이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것 외에 다른 출구는 없는 것이다. 다만, 어찌됐건 한국사회는 그 의식 변화가 외적 압축성장만큼이나 빠른 것도 사실이란 점 정도는 인지할 필요가 있다. 세밀한 관찰이 꾸준히 요구된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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