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풍경소리] 진정한 스승이란

사주를 본다면 얼핏 팔자타령이나 한다고들 생각하겠으나 이는 생각의 혼잡에서 오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역은 확고한 신념을 설정해주며 본질을 비켜 나가지 않게 하는 논리의 학문이다. 종교의 의미와 역할은 무엇일까. 인간의 삶에 있어 분명 그 역할이 지대함을 부정할 수가 없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한 것처럼 육신을 지탱하기 위한 몸의 영양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영적 충만함과 성취를 위한 종교적 신앙은 동물과 인간을 구분 짓는 가장 큰 요소일 것이다.

특히나 선사시대 이후 역사시대를 통과해오면서도 정신의 함양과 영성의 추구와 발전은 서양에서는 기독교문화로 종결되는 문화사회적 특성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문화의 발상지인 서구에서는 과학의 발달과 함께 기독교에 대한 반성과 회의가 점점 커가져 가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천주교를 비롯한 개신교인구가 전통 종교인 불교를 훨씬 능가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기독교와 불교를 대립적 관계로 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믿음과 신앙의 대상을 떠나 종교적인 진리와 의미를 외면하는 것은 참 종교가 아니라고 보고 있기에 물질문화를 숭상하는 모양새로 커가기만 하는 교회건물 대형교회의 세습화 등의 모습은 진정 종교가 추구해야할 방향성과 청정함에는 반하는 것이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어느 종교 역시 자유로울 수 없는데 성직자나 출가 승려들이 구도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일반 재가 신자들이 느끼는 실망감은 그 어디에 비할 바가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려 하자 시자인 아난다존자는 후계자를 지정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 드린다. 부처님의 입멸 후 승가를 결속하고 수행을 굳건히 이끌어 갈 구심점을 정해주시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후계를 지명하지 않으셨다. 다만 거듭 말하시길 내가 지금껏 가르치고 펼친 법들이 스승이 될 것이라고 말씀했다. 그러시면서 덧붙이시길 너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진리)을 등불로 삼아 방일하지 말며 수행에 매진할 것을 독려하실 뿐이었다.

이것이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라고 하는 유명한 문구다. 참된 수행의 길에 있어 스승의 도움이나 의지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겠으나 구도의 종착점은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며 도과에 이르는 수행과정은 이미 다 밝혀 놓았으니 누군가를 법왕이라 지정하였을 경우 파생될 파벌과 분열을 미리 내다 보신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고 자못 짐작해본다.

그러셨음에도 이 문구가 주는 또 하나의 커다란 의미는 석가모니부처님은 스스로를 내가 법왕이니 나를 따르라! 라고 말씀하신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자신도 세상의 진리를 깨달아 수도 없이 반복해온 고통의 원인인 윤회를 벗어났으니 이러한 진리를 알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감춘 것 없이 잘 드러냈으니 여러 뭇 중생들이 이 길을 부지런히 닦아 해탈할 것을 당부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았음에도 수행자들은 물 밀 듯이 부처님을 따라 승가를 이루었던 것이다. ★김상회의 풍경소리(02-533-8877)에서는 부산 및 지방 애독자들을 위해 전화상담을 진행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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