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풍경소리] 바른 믿음이란

믿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은 예수께서 제자인 도마에게 했다는 말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께서 부활했다고 하자 예수의 열 두 제자 중의 한 명이었던 도마는 믿지 못한다. 그러면서 부활했다는 예수를 향해 묻는다. 당신이 진정 사흘 전 십자가에서 모진 형극을 받고 돌아간 예수가 맞는다면 그 상처를 보여 달라고. 예수는 못에 박혔던 자리 중의 하나인 허리를 보여 주시며 만져보라 한다. 이에 직접 상처에 손을 대어 만져본 도마가 눈물을 흘리며 “오, 예수님! 나의 주여!“라고 하자 예수께서는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복이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 후 도마는 자신의 믿음의 허약함을 자책하며 복음의 전파에 혼신을 다하여 도마복음서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실로 정신적 영적인 세계를 논함에 있어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일깨우는 대목이다. 석가모니부처 처럼 도과를 이루시고 육신통을 얻은 그리하여 천신과 인간의 스승이라는 칭호를 얻은 분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부처도 어쩌지 못하며 제도하지 못하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부처의 삼불능(三不能)이라는 것이다. 첫째가 불능면정업중생(不能免定業衆生)이라 하여 자신의 업을 소멸시키지 못하는 중생은 제도하지 못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불능도무연중생(不能度無緣衆生)이라 하여 가르침에 인연이 없는 중생은 구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는 불능진중생계(不能盡衆生界)라 하여 이 세상 모든 중생을 한꺼번에 다 제도할 수는 없다 라는 것이다. 각각에 대하여 설명하자면 역시 얘기가 장황해질 수밖에 없으나 삼불능의 두 번째에 초점을 맞춰보자면 아무리 삶의 우비고뇌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가르침을 전해주고자 하여도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고 배우려하지 않는다면 지옥고와 같은 윤회의 고통에서 구제할 방도가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사실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으며 따라서 알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은 굳이 믿음이라는 단어를 들먹이지 않아도 된다. 형상을 가지지 않고 실체가 없어 보이지만 마음의 작용과 믿음이라는 인식작용이 주는 힘을 신앙이라고 이르고 있는 것이다. 보이는 것만을 믿는것은 저차원적인 인식세계다. 형상을 뛰어 넘어 본래 실체의 속성을 꿰뚫는 것이 세계의 형성과 존재의 실상을 바로 보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신앙이나 종교를 믿어야만 마음의 힘이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세상과 존재의 이치와 실상을 본 이들을 일러 도인(道人)이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도 말하시길 만약 외도라 할지라도 그 가르침 속에 사성제와 팔정도가 들어 있다면 그것은 여래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신 것이다.

인종과 민족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 할지라도 육도윤회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는 길을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인데 무슨 종교라는 외양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바른 대상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어야 함이 중요하다. 신앙이라는 빌미 아래 그릇된 믿음으로 호도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시대다. 오탁악세의 시대 중의 뚜렷한 특징 중의 하나가 그릇된 신앙이 흥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바른 믿음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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