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아의 연예It수다] 나훈아 VS 남진, '오빠'는 건재하다

[스포츠월드=최정아 기자] “라이벌이 있어 우린 발전할 수 있었다.”(남진)

대한민국 대중가요사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 세기의 라이벌 나훈아와 남진이다.

둘은 영호남의 중심지역 부산과 목포 출신. ‘윽수로’ 능청스러운 나훈아의 경상도 사투리와 ‘징하게’ 정겨운 남진의 전라도 사투리는 이들의 트레이드 마크다.

두 사람의 인기는 지역 감정도 뛰어넘었다. 전 세대와 전 계층, 전 국민이 나훈아인가 남진인가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H.O.T냐 젝스키스냐, 엑소냐 방탄소년단이냐를 두고 목에 핏대를 올리는 것은 귀여울 정도다.

산업화 시대 일에 지친 노동자들은 두 사람의 노래를 듣고 위로를 얻었다. 배운 것 없고 배고프던 그 시절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남진, ‘님과 함께’) 살 수 있길 꿈꿨다. ‘코스모스 피어 있고 이쁜이 꽃분이 모두 나와 반겨주는 고향역’(나훈아, ‘고향역’)에 금의환향 하길 바랐다.

투박한 외모로 소도둑 별명까지 얻은 나훈아의 반전은 고운 고음. 당대 배우들도 부러워한 부잣집 도련님 외모의 남진이 가진 무기는 굵은 저음. 정반대의 매력을 가진 둘은 60년대 말부터 70년대까지 나라를 두 동강 내듯 인기를 양분한다. 가수왕을 뽑는 시상식에서 상을 못 받은 쪽 소녀 팬들은 대성통곡을 했다.

데뷔는 남진이 1년 먼저한 선배다. 남진은 1965년에 ‘서울 플레이보이’, 나훈아는 1966년에 ‘천리길’로 각각 마이크를 잡았다. 1972년 남진이 ‘님과 함께’로 가요계를 휘어잡을 때 나훈아는 ‘물레방아 도는데’로 선배의 뒤를 따랐다. 매번 신곡 발표마다 나라를 들썩인 이들은 명실상부 가요사 최고의 톱스타였다.

그렇게 정상의 자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던 나훈아와 남진은 51년이 지난 지금까지 최고의 라이벌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런 두 가왕이 연말 콘서트로 각각 팬들과 만난다. 그동안 꽁꽁 숨어지내며 이혼 소송 재판에 참석하는 것 외에는 공식 활동이 없던 나훈아가 먼저 등판했다.

나훈아는 지난 11월 3~5일 서울 공연으로 화려한 컴백을 알렸다. “내 별로 안 늙었지예”라며 관객에게 웃음을 안긴 그는 결국 공연에서 눈물을 흘렸다. 무대에서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하며 팬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나타내기도. 나훈아는 지난 24~26일 부산 공연을 마쳤고, 오는 12월 15~17일 대구에서 ‘나훈아 드림콘서트’를 이어간다.

남진은 나훈아와 불과 일주일 차이로 공연을 개최한다. 12월 24일과 25일 이틀간 서울 한남동의 한 호텔에서 ‘크리스마스 디너쇼’를 여는 것.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대결구도도 형성됐다.

앞서 남진의 디너쇼 개최 소식이 처음 전해졌던 지난 3일은 나훈아의 서울 콘서트가 열리기 전날이어서 당시 가요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남진과 나훈아가 나란히 1, 2위에 올라 중년팬들의 추억을 자극했다는 후문이다. 40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다시 ‘라이벌 대결’의 구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기도 했다.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 나훈아와 남진은 서로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중압감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흔의 오빠’들에겐 서로의 존재가 든든한 울타리다. 남진은 나훈아가 칩거하던 10여년 동안 “함께 무대에 서고 싶다” “가요계 영원한 동반자”라며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아마 썩히기엔 너무나 아까운 후배의 재능 때문이었으리라.

한 무대는 아니지만 2017년 연말 팬들을 만나는 나훈아와 남진. 이들을 향한 대중과 언론의 사랑은 현재진행형이다. 가요계 살아있는 전설, 오빠는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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