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풍경소리] 겨울 길목 입동에 서서…

한국에서 생활하는 한 외국인의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여러 나라를 다녀보았지만 한국처럼 날씨가 좋은 나라도 드물다며 운을 띄웠다. 한국의 봄의 상큼함이나 가을의 청명함은 하루하루를 기대 속에 시작하게 하는 정말 기분 좋은 날씨라는 것이다. 한국날씨에 찬사를 던지던 그도 두 가지만큼은 싫다고 했다. 여름의 무더위와 겨울의 맹추위가 그것이다. 하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여름과 겨울은 힘들다. 겨울이 되어 동장군이 기세를 올릴 때면 특히 그렇다. 아랫목이나 군고마가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건 맹추위 때문이다. 그 추운 겨울이 시작된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 바로 입동(立冬)이다.

입동은 말 그대로 겨울로 들어가는 문이다. 음력으로는 10월에 속하고 양력으로는 11월7일이나 8일쯤이다. 24절기 중에서 열아홉 번째 절기인데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에서 15일 후가 된다. 입동이 되면 자연스럽게 이번 겨울을 어떻게 날 것인가 하는 걱정이 된다.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대표적인 행사는 김장이다. 김장은 예부터 입동 전후에 하는 게 일반적이다. 입동 즈음에 준비한 김장은 겨울나기에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각종 채소가 생산되지 않는 혹한의 시기를 버틸 수 있는 유용한 양식이 되는 것이다.

입동이 되어 따뜻한 온기와 먹거리가 떠오를 때면 ‘우동 한 그릇’이라는 일본 소설이 생각난다. 한 해의 마지막 날 한창 바쁜 우동집에 가난한 어머니와 어린 두 아이가 들어온다. 한 그릇 값밖에 없는 그들은 주인의 양해를 구하고 주인은 모자 몰래 정해진 양보다 더 많은 우동을 준다. 그렇게 우동을 먹고 가는 모자를 향해 주인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마음이 담긴 인사를 한다. 그렇게 매년 마지막 날 우동을 먹던 모자는 어느 날부터 자취를 감춘다. 우동집 주인은 그들의 자리를 비워놓은 채 장사를 하고 몇 년 뒤에 훌륭하게 성장한 아들과 어머니가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우동집 주인의 따뜻한 배려는 아들들을 성장시킨 힘이었다.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언제 다시 읽어도 감동을 주는 내용이다. 치계미(雉鷄米)라는 풍습이 그것이다. 치계미는 입동에 주로 행해지던 미풍양속으로 마을에서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을 모시고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도 입동 때의 치계 미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정성을 보탰다고 한다. 형편이 아주 빈한해서 아무것도 낼 수 없는 사람들은 도랑탕 잔치라는 것으로 대신했다. 도랑탕 잔치는 입동 무렵 겨울잠을 자려고 도랑에 숨은 미꾸라지를 잡아서 추어탕을 끓이는 것이다. 그 추어탕으로 노인들을 대접하는 것이 도랑탕 잔치이다. 치계미와 도랑탕 잔치에는 소설처럼 눈물을 끌어내는 감동은 아니지만 입동 즈음의 이러한 풍습은 겨울추위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불우이웃돕기 행사가 더 많아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2017년도 다른 해와 다름없이 겨울이 찾아온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면서 사람들의 힘겨움을 살짝이라도 껴안아본다면 따뜻한 겨울을 만드는 열기가 나에게서부터 시작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혹한이 몰려와도 추위에 떨지 않는 따뜻한 겨울이 될 것이다. ★김상회의 풍경소리(02-533-8877)에서는 부산 및 지방 애독자들을 위해 전화 상담을 진행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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