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트와이스, 운도 실력이다

18일 발매된 걸그룹 트와이스의 일본데뷔 싱글 ‘One More Time’ 오리콘 위클리 결과가 나왔다. 20만751장. 2위와는 13만장 이상 차로 가볍게 위클리 1위를 차지했다.

이로써 카라의 ‘제트코스터 러브’가 세운 한국 걸그룹 일본싱글 역대 초동기록이 6년 만에 깨졌다. ‘제트코스터 러브’는 초동 12만2820장을 기록했고, ‘One More Time’은 이를 발매 이틀 만에 뛰어넘었다. 한국 걸그룹 싱글 역대 총판기록인 카라 ‘고고 섬머-!’의 23만82장 역시 1~2주 내로 넘어설 전망이다. 나아가 판매량 낙폭 및 지난 6월28일 발매한 일본앨범 ‘#TWICE’의 초동 대비 총판 상황 등으로 미뤄, ‘One More Time’ 총판은 30만 장 이상까지 확장가능하리란 예상이다. 역사가 새로 씌어지는 순간이다.

더 있다. ‘One More Time’은 역대 한국 아이돌 일본 데뷔싱글 초동기록도 동시에 경신했다. 기존 1위는 보이그룹 엑소의 2015년 싱글 ‘Love Me Right’가 기록한 14만6982장이었다. ‘One More Time’이 3일차에 뛰어넘은 수치다. 물론 데뷔가 아닌 전체 싱글 차원에서 초동 1위는 여전히 동방신기가 5인 체제 마지막으로 발표한 2010년 싱글 ‘Break Out!’이 보유하고 있긴 하다. 무려 25만5917장을 팔았다. 그러나 동방신기의 29번째 싱글과 트와이스 데뷔 싱글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 그리고 여성층이 팬덤 다수를 차지하는 일본 내 K팝 상황에 비춰 애초 걸그룹이 보이그룹과 비교될 수 있다는 점 자체가 놀랍다고 봐야한다.

이번엔 일본 걸그룹들과 비교해보자. 현재로서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의 48그룹(AKB, NMB, SKE, HKT, NGT, STU 등)과 사카미치 시리즈(노기자카46, 케야키자카46 등) 정도를 제외하면 싱글로 이만큼 팔 수 있는 팀 자체가 없다. 잘 알려진 모모이로클로버Z나 퍼퓸, E-걸즈, 베이비메탈 등도 싱글 차원에서 이 정도 세를 과시하진 못한다. 거기다 ‘One More Time’은 이미 난공불락의 48그룹 중 일부도 누른 기록이다. 지난 4월 발매된 NGT48 데뷔 싱글 ‘청춘시계’ 초동 16만271장은 크게 제쳤고, 총선거 1위 멤버 사시하라 리노가 재적 중인 HKT48의 지난 8월 발매 싱글 ‘키스는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건가요?’ 초동 19만9504장도 근소하게나마 앞질렀다.

거기다 이미 고정팬층이 자리를 잡아 초동과 총판 차이가 크지 않은 48, 46그룹들과 달리, 트와이스는 현재도 신규 팬층 유입이 지속되는 확장세를 타고 있다. 총판 차원에선 위 둘보다 성적이 월등한 SEK48, NMB46까지도 따라잡을 수 있으리란 예상이다. 늘 한국 걸그룹 한계처럼 여겨지던 ‘48, 46그룹 바로 다음’ 위치를 넘어서, 이미 첫 싱글부터 48, 46그룹 중심부를 치고 들어가기 시작했단 얘기다.

이 같은 성과에 대한 해석은 이미 수없이 나와 있다. 대부분 트와이스란 팀 자체의 구성 및 매력 등에 관한 설명이다. 나아가 한일 간 문화교류가 소위 ‘정치외교적 냉각기’라 불리는 기간 중에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었다는 점도 거론된다. 그러나 이른바 ‘트와이스 외적 상황’ 차원에서 트와이스가 이처럼 성공적으로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던 일본대중음악시장 현황에 대한 설명은 딱히 이뤄지질 않고 있다. 이 부분을 짚어보자.

일단 비교적 단순한 부분부터다. 먼저, 지금은 지난 7~8년 간 절대위용을 자랑하던 대표 걸그룹 AKB48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때다. 정확히는 2012년 하반기 경부터 꺾였다고 봐야 하고, 2014년 즈음부턴 눈에 띄게 하락세가 보였다. AKB라는 기묘한 시스템 자체에 피로현상이 온 것이다. 대중은 점차 질려하고, 그 팬덤도 상당부분 사카미치 시리즈인 노기자카46과 케야키자카46으로 넘어갔다. 지금은 팬덤의 대대적 이동이 벌어지는 시점이란 얘기다. 그리고 그렇게 어지러운 전환기였기에 트와이스 같은 이질적 팀의 자리도 성립될 수 있었다. 반면 첫 ‘K팝 흑선’ 시기였던 2010~2012년은 AKB48이 어마어마한 광풍을 일으키며 세를 불려나가던 시기다. 한국 걸그룹은 잘 해야 틈새시장 정도에나 안착할 수 있었다. 시장환경 면에서 트와이스 쪽 상황이 훨씬 좋다.

둘째, 지금은 걸그룹 차원에서 K팝 가치가 2010~2012년 당시보다 훨씬 올라있는 상황이다. 일본대중문화시장은 언제나 해외상품 유입에 적극적이다. 섬나라 특유의 고립공포 차원에서 해석되기도 하는데, 어찌됐건 자국 내 정체된 흐름을 해외문물의 적극적 유입을 통해 해소하려는 경향이 수세기 전부터 있어왔다. 2000년대 대중음악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K팝이 들어오기 전에도 중국 크로스오버 여성밴드 여자12악방 등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정체된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렇게 한 번 시장에 새바람이 불어 활력이 불어넣어진 뒤엔, 곧바로 해당상품 개념을 카피한 자국상품으로 대체해버린다. 2010년 ‘K팝 흑선’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2011~2012년 사이 LDH의 에그자일 여동생 그룹 플라워와 그를 흡수한 E-걸즈가 정확히 한국 걸그룹 콘셉트로 등장, K팝이 주춤하던 틈에 바로 시장을 대체했다. K팝 팬층 흡수는 물론이고, 소녀시대와 애프터스쿨이 맡던 사만사 타바사 CF를 E-걸즈가 물려받는 등 아예 시장 내 포지셔닝 자체에 대한 대체가 이뤄졌다. 언어 등 소비자와의 친밀도 측면에서 자국 팀들에 비해 한없이 떨어지는 한국 걸그룹 자리는 더더욱 좁아졌다. 2013년 즈음이면 사실상 퇴출 상태였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이들 콘셉트 카피 그룹들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단 안무나 뮤직비디오, 굿즈 등에서 K팝 표절 논란이 지속적으로 일었다. 플라워부터가 이미 K팝 표절 논란 속에 론칭된 팀이고, E-걸즈로 넘어가면서 부턴 아예 상시적으로 논란이 벌어졌다. 이 같은 지적이 한국도 아닌 일본에서부터 일기 시작했다는 점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들을 지휘하던 에그자일마저 한국 보이그룹 빅뱅과 굿즈 표절 논란이 일자 이제 일본 대중음악 팬들도 서서히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방증으로, E-걸즈 음반판매량은 한국 걸그룹이 시장서 사라져 동일 콘셉트 독주가 시작되던 2013~2014년 사이 정점을 찍은 뒤, 잦은 논란 후부턴 점차 하향세를 겪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즈음부터 다시 콘셉트 ‘원류’인 한국 걸그룹들에 대한 관심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멤버 구성상 론칭 당시부터 눈길을 끈 트와이스가 그 최대 수혜를 입긴 했지만, 그 이전에도 이미 부활 조짐은 있었다. 2014년 10월 일본 데뷔한 에이핑크 사례다.

상당히 애매한 시점에 데뷔했음에도 데뷔 싱글 ‘NoNoNo’는 위클리 초동 3만2720장을 기록했다. 소녀시대나 카라 등과만 비교해서 그렇지, 사실 이는 2010~2011년 당시 일본진출 후발주자였던 애프터스쿨(2만3760장)이나 레인보우(2만4082장) 등의 데뷔에 비해 호전된 수치였다.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온 것이다. 기세를 업고 2015년 에이핑크 다음 싱글 ‘Mr. Chu’는 초동 5만4161장까지 확장됐다. 이후 매니지먼트 한계로 하향곡선을 걷긴 했지만, 어찌됐건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점을 인식할 수준은 됐다. K팝 걸그룹 가치는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렇게 트와이스의 탄탄대로 레드카펫도 함께 성립됐다.

끝으로, 트와이스는 2010~2011년 당시와 달리 한국 걸그룹 진출 남발 상황을 겪고 있지 않다. 사실상 당시 K팝 붐을 일본 내에서 사그러뜨린 주범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불과 1년여 사이 국내에서조차 자리 잡았다고 여겨지지 않는 팀들까지 우후죽순 난립해버리는 통에 특화된 상품으로서 한국 걸그룹에 대한 피로도가 가중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2012년 이후 대부분 한국 걸그룹은 일본을 포기한 채 중국시장만을 바라보며 기획되고 또 운영됐다. 산업 간 연계도 그만큼 탄탄해져 ‘새로 나온 걸그룹 중 중국 돈 안 들어간 팀 없다’는 말까지 돌기도 했다. 그렇게 중국시장에 올인하다 사드 배치 갈등으로 한한령(限韓令)이 발동되자 업계는 일대 혼란에 빠졌다. 판매처를 바꿔보려 해도 지난 수년 간 중국으로만 채널링됐던 흐름을 돌리기엔 무척 까다로운 상황이다. 일본시장으로 굳이 선회하려 해도, 대행을 맡을 일본 측 대중음악기업에서 신뢰를 얻어내기가 힘들다. 2010~2012년 사이 안 좋은 경험을 한 사례도 많거니와, 당시처럼 우후죽순 시장에 밀어 넣으면 바로 시장이 붕괴돼버린단 점을 일본 측에서도 이미 경험했다. 진출하고 싶어도 받아주기 어렵다.

반면 트와이스는 그 어떤 측면으로 봤을 때도 온전히 일본용 모델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중국시장에서 받아들여지기 무척 어려운 형태로 팀이 짜여졌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과는 껄끄러운 관계인 일본 출신 멤버 3명에, 아예 갈등의 온상인 대만 출신 멤버 1명이 포함된 팀이다. 처음부터 중국시장을 놓은 채 일본시장만을 바라본 팀이기에 중국 측 한한령에 오히려 강했다. 그리고 그만큼 일본 업계와의 유대와 신뢰를 끌어내기에도 수월했다.

물론 결국은 한국 K팝 기업들 체질도 변화할 것이다. 중국이 생각보다 얼마나 리스크가 큰 시장이었는지 이젠 다들 파악했다. 그리고 아무리 정치외교적 갈등이 벌어지더라도 민간 차원 문화교류를 막는 일까진 없는 일본시장의 안정성도 다시 돌아보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새롭게 전략을 수정해 일본까지 커버 가능한 팀을 내놓는 데까진 시간이 걸린다. 똑같이 일본 출신 멤버를 넣어 지금 바로 론칭시킨다 해도, 국내서 자리 잡고 해외 팬덤을 쌓아 정석적으로 진출하려면 최소 2년은 걸린다. 그 동안 트와이스는 일본에서 틈새가 아닌 메인스트림 시장 K팝 걸그룹 주자로서 사실상 독주하며 더더욱 기반을 굳히게 된다.

트와이스 일본진출 앞날은 이처럼 갖가지 호재 탓에 상당기간 쾌조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상대적으로 짧은 전성기를 누린 카라, 소녀시대보다 조건이 훨씬 좋다. 시장 내 절대적 강자도 없고, 콘셉트 카피 효력도 떨어졌으며, 같은 한국 걸그룹 난립도 어렵다.

그러나 이를 두고 ‘운이 좋다’고만 말할 일도 아니긴 하다. 2015년 M.net ‘식스틴’을 통해 멤버들을 선발할 때부터 고려된 미래전략이었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당시는 사드 갈등이 본격화되기도 전이고, 한한령 따윈 예상조차 못하던 시점이다. 점차 포화돼가는 중국시장에 비해 일본시장은 상대적으로 비어있고, 곧 일본 내 한류가 재점화될 것을 내다본 결정이라고 봐야한다. 그리고 일본 메인스트림 시장에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콘셉트와 곡들을 차례로 내놨다.

흔한 얘기지만, ‘운’의 대부분은 사실 ‘준비’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준비’는 언제나 대범하면서도 치밀한 ‘판단’ 하에서만 효력을 발휘한다. 한류란 결국 ‘우리 것을 중독시킨다’는 식 민족주의적 우격다짐 발상이 아니라, 그저 그때그때 가장 정확한 전략으로 해외를 공략하는 것, 그 이전 그런 공략을 감행할 의지가 있느냐는 부분에 대한 산업적 체질규정일 뿐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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