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국뽕'이라도 괜찮다

MBC에브리원 예능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당방송사 역대 시청률 기록을 경신했다. 아니 이미 기록 경신 자체는 지난 8월 이뤄졌다. 개국 이래 10년 간 2% 시청률 한 번 돌파해본 적 없었는데, 불과 방송 3회 만에 2.1%(AGB 닐슨코리아)로 가볍게 넘어섰다. 이후 지난달 31일에 3%까지 넘어서더니, 지난 14일엔 3.5%가 됐다. 거기다 3주 연속으로 유료미디어 시청률 동시간대 1위다.

대단한 성과다. 아직 tvN, JTBC 등의 성공사례와 비교할 만한 건 못 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지상파 중심 천편일률적 방송 흐름을 깨고 시장을 다양화하는 데 바로 그 지상파 방송사의 케이블 브랜치가 역할하고 있다는 점에선 더더욱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대대적 성과와 동시에 슬슬 비판여론도 형성되고 있다. 외국인들 입을 통해 한국을 자화자찬하는 콘셉트, 즉 ‘국뽕’ 콘셉트가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도 그렇게 틀린 얘긴 아니다. 확실히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외국인 집단 예능’ 시초인 KBS ‘미녀들의 수다’부터 JTBC ‘비정상회담’까지 이어진 계보와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가 한국을 ‘글로벌 시각’에서 재단하며 그 부조리함까지 가감 없이 분석하려는 시도였다면,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사실상 ‘우리 것에 자신을 갖자’를 넘어서 ‘우리는 이미 대단하다’ 분위기로 옮아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얼핏 1990년대 김영삼 정권 시절의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류 민족주의적 자긍심 고취 캐치프레이즈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국뽕’은 또 지금과는 조금 다른 형태이기도 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1990년대 ‘국뽕’ 문화는 궁극적으로 30여 년 간 지속된 고도성장의 열매를 막 따먹기 시작할 시점부터 불거졌다. 그간 선진국 중심으로 형성된 ‘글로벌 스탠더드’ 따라잡기에 골몰하느라 국가적/민족적 자긍심이 나락까지 떨어졌던 데 따른 스트레스가 그런 식으로 분출됐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를 넘어 “우리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란 우격다짐도 등장했다. 나아가 김치, 국악, 한복 등등을 해외로 전파시켜야 한다는 문화지배 발상까지 나왔다.

흥미로운 건, 한창 버블경제 끝물이었던 1980년대 후반 일본 역시 비슷한 현상을 겪었다는 점이다. 이시하라 신타로와 모리타 아키오 공저로 씌어진 서적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 희대의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등 대대적 ‘국뽕’ 현상이 일었다. 이제 우리도 선진국 질서에만 따라가지 말고 당당히 자기주장을 하자는 논리였다. 한동안 등한시 됐던 라쿠고, 스모 등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진 것도 바로 이때다.

그러다 결국 버블이 꺼지고 경제 불황을 맞이하고 부턴 모든 게 달라졌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다. 다시 ‘글로벌 스탠더드’ 문제로 돌아갔다. 우리에겐 뭔가 부족한 것이 있고, 그 부족한 부분을 빨리 수정해나가야만 이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단 인식이 들어섰다. 특히 한국에선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레토릭이 가히 국민구호처럼 대두됐다. 아직 그렇게, 소위 ‘자뻑’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단 반성과 자조가 일어났다.

그렇게 시작된 게 바로 IMF 충격으로부터 10년 뒤 2007년 등장한 ‘미녀들의 수다’ 열풍이었다. ‘미녀들의 수다’는 사실 무척 매저키즘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주로 서구 선진국 출신 백인여성들이 한국사회의 이런저런 부조리한 면모들을 들춰내 비판하는 형식이었다. 도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잡는 일에 골몰하게 된 한국인들은 즉시 이 프로그램에 반응했다.

그러나 이런 식 매저키즘은 그 시발동력 자체는 강렬할 수 있을지언정, 지속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특히 한 번 ‘영광’을 맛본 사람들이라면 그 다운된 정서에 쉽게 지쳐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정반대급부, 즉 ‘자화자찬’ 류 ‘국뽕’으로 옮아가기 쉽다. 해외에 배타적인 태도 등도 동시에 일어난다. 개인으로서 삶의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더 큰 ‘국가/민족적 자긍심’을 필요로 하는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일본선 이미 4~5년 전부터 ‘국뽕’ 현상이 일어났다. 방송프로그램은 온통 일본과 일본인들을 해외에선 얼마나 높게 평가하며 부러워하는지 자화자찬 일색으로 돌아섰다. 출판시장도 마찬가지다. 각종 혐한/혐중 서적 붐은 이제 옛말이다. 지금 그 자리는 노골적인 자화자찬 국뽕 서적들이 대체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흐름은 이제 한국에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처음 방송될 때, 많은 이들이 지적한 건 영국인 조시 캐럿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영국남자’와의 유사성이었다. 사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영국남자’의 케이블 버전이라 봐도 좋을 정도다. ‘영국남자’와 정확한 같은 아이디어, 즉 한국서 살아가는 외국인이 자신의 고향 친구들을 불러 한국의 갖가지 면면들을 소개시켜주는 콘셉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기본적으로 외국인이 기획한 ‘영국남자’와의 차이는 다소 간명하다. ‘영국남자’는 딱히 ‘국뽕’적이지가 않다. 한국의 갖가지 문화적 면모(주로는 음식문화 관련된)들을 자국 지인들에게 소개하고 또 직접 초대도 하고 하면서, 그들이 칭찬하는 것만큼이나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들도 동시에 소개한다. 그리고 사실 이런 부분들이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의 ‘국뽕’ 분위기는 ‘영국남자’와 유사한 지점에서 시작된 게 맞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부터 1990년대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선언과 차이를 만든다.

1990년대 식 민족주의적 자긍심 고취 캠페인은 그 속성이 선명했다. ‘우리가’ 자긍심을 얻기 위해 하는 캠페인이니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긍심 가질 만한 요소들을 해외에 알려 전파해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해외’가 아니라 ‘한국’의 입장이 너무나도 중요했다. 그러다보니, 위 언급했듯, 김치 국악 한복 따위가 한국문화 전파의 중점적 요소가 됐다. 그러나 그건 금세 ‘우리에게나 중요한 것’이었단 점이 드러났다.

실제로 해외에서 주목한 건 우리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해외 갖가지 장르와 방법론들을 혼합시킨 K팝이 글로벌 트렌드 중심에 섰다. 늘 서구처럼 세련되지 못하고 감정과잉이라 폄하하던 TV드라마가 아시아와 남미대륙을 휩쓸었다. 자질구레한 패션 트렌드와 화장법 등등도 K팝과 TV드라마 붐을 타고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음식문화 관련해서도 김치니 불고기니 하는 것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게 아니란 점을 잘 깨닫게 됐다. 막상 해외에서 환호하며 받아들인 건 메로나, 교촌치킨, 설빙, 이삭토스트였고, 하다못해 컵밥이나 치킨무 같은 마이너 메뉴들까지도 해외 열광을 얻는 모습을 지켜봤다. ‘먹는 방식’에 불과한 ‘치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B급 구르메 계열에서 확실히 자기 자기를 넓혀나가고 있다.

결국 이 새로운 2010년대식 ‘국뽕’은 민족주의와 하등 관계없는 지점, 정확히 자유시장경제적 지점에서 시작된 것이다. ‘우리가 알리고 싶은 것’이 전파되는 게 아니라, 그저 저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가져다 즐길 뿐이란 것. 거기엔 우리 민족의 우수성이니 뭐니 하는 ‘민뽕’ 요소가 전혀 없다. 오히려 ‘우리가 즐기는 것을 세계가 같이 즐긴다’는 식 동질성 확인의 반가움이 그런 종류 자긍심을 대체한다.

‘영국남자’는 이 같은 새로운 버전의 ‘국뽕 아닌 국뽕’을 정확히 짚은 프로그램이었다. 반면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대한 ‘국뽕’ 비판여론도 정확히 이 지점에서 불거진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자화자찬 일색 분위기는 저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실패한 모델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분위기와는 다른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새 시대의 주문과 일치하려 노력하는 것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외국인이 스스로 기획한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을 다시 한 번 한국인이 재해석해 ‘한국인이 바라본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이란 기이한 모델로 콘셉트가 재편된 형태다.

물론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은 아니다. 일단 대중 호응이 그렇게 좋다면 그런 식 ‘국뽕’도 현재 한국대중이 필요로 하는 것이란 방증이 된다. 다만 이런 식 성공사례가 지금의 일본 방송계와 유사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신호탄이 될지 모른단 예감은 존재한다. 이른바 ‘자화자찬 프로그램’ 성행 말이다. 그럼 또 그건 그것 나름대로 상당히 피로한 흐름이 될 것 같단 생각이다.

한국의 UCC 문화가 일본에 비해 훨씬 왕성하다는 점이 이럴 땐 참 든든하게 여겨진다. 커다란 대중적 흐름에 굳이 대항하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그와는 조금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해주는 이른바 대안적 흐름을 형성시켜주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종류 문화시장이란 그 폭이 넓으면 넓을수록 소비자 만족도는 높아지게 마련인 것이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성공은 여러모로 축하할 일이 맞다. 그러나 동시에 그 원전이 된 ‘영국남자’의 존재이유도 그만큼 더 탄탄하게 성립될 듯하단 예상이다. 그런 식 윈윈 구조가 궁극적으론 방송시장, 아니 대중문화시장 전체를 살찌워주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여전히 막강한 지상파 스테이션 파워에 좌지우지되는 일본과는 전혀 다른 총체적 문화 흐름을 만들어내게 될 것이란 기대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