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블랙핑크 日 데뷔… YG, 2NE1 실패 설욕

YG엔터테인먼트 걸그룹 블랙핑크가 일본시장에 데뷔했다. 지난 8월29일부터 판매된 일본앨범 ‘BLACK PINK’를 들고서다. 그리고 이제 그 대략적인 성적이 나온 상태다. 9월3일 6일차까지 누적판매량 3만9089장. 보정치가 합산되는 오리콘 위클리 초동은 4만장을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동시에 ‘BLACK PINK’는 위클리 앨범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 같은 성적을 놓고 각 연예미디어와 아이돌 관심층 사이에선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연예미디어 측에선 찬양 일색이다. 물론 한국 아이돌그룹 일본진출 시 ‘일본정복’ 따위 과장된 캐치프레이즈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은 약간 양상이 다르다. 일본 활동 일거수일투족을 칭찬일색으로 묘사하는 것과 함께, 지난 6월28일 먼저 일본 데뷔한 트와이스와 비교하며 ‘한국 걸그룹 쌍두마차’를 선언하는 내용이 많다. 상당부분 소녀시대와 카라가 일본 상륙해 ‘한국 걸그룹 흑선’으로 묘사됐던 2010년 상황의 재현처럼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아이돌 관심층 의견은 전혀 다르다. 일단 위클리 1위는 흔히 말하는 ‘빈 집’ 상황에서 이뤄졌단 점을 들고 있다. 이렇다 할 경쟁상대가 없는 무주공산 상태에서 위클리 1위 기록이라면, 순위보단 판매량 자체를 놓고 성패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지난 7월 기록된 라이벌 걸그룹 트와이스의 초동 13만594장보다 1/3도 채 안 되는 판매량으로 ‘쌍두마차’ 운운하는 건 그 자체로 과장된 해석이란 비판이다.

액면 그대론 그렇다. 블랙핑크는 현재 일본에서 한류 관심층 내에서만 ‘트와이스와 쌍두마차’ 상황이다. 일반대중에까지 침투됐다 보긴 여러 가지 면에서 힘들다. SNS 등 여러 지표상으로 일반대중 화젯거리에 등극한 트와이스와 비교는 어렵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핑크의 이번 일본 데뷔는 ‘YG엔터테인먼트 카테고리’ 내에선 분명 주목할 성과를 거뒀다고 보는 게 맞다. 지금은 해체한 블랙핑크의 전신 격 걸그룹 2NE1의 일본 데뷔 상황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2EN1은 지난 2011년 9월21일 앨범 ‘NOLZA’로 일본시장에 본격 진출했었다. 그때 당시도 ‘빈 집’이어서 위클리 1위는 차지했다. 그러나 판매량이 형편없었다. 오리콘 초동 2만6334장을 기록했다. 블랙핑크 초동의 2/3 수준이다. 2NE1이나 블랙핑크나 ‘고만고만한’ 기록이라 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가 않다. 2011년은 제2차 한류가 활황을 맞이하던 시점이었다. 소녀시대와 카라를 필두로 수많은 걸그룹들이 일본시장에서 차례로 성과를 내던 때다. 그리고 2NE1 상륙은 ‘한류 최종병기’란 식으로 대대적 홍보를 거쳤다. 거기다 2NE1은 한국 활동 2년여를 거쳐 일본에서 일정부분 이상 팬덤을 형성한 뒤 데뷔했지만, 블랙핑크는 이제야 데뷔 1년을 넘어섰다. 한국에서도 아직 신인 티를 못 벗은 상태다. 2011년 당시와 비교해도 크게 위축된 일본 피지컬 음반시장 상황 역시 당연히 고려될 필요가 있다.

2NE1의 일본 활동은 사실상 재앙 수준이었다. 데뷔예정 시점에 도호쿠 대지진이 발생해 6개월 뒤로 상륙이 늦춰졌다. 또한 당시까지만 해도 일본 메인스트림 걸그룹 시장에 ‘힙합 계열 쎈 언니들’ 콘셉트가 전무했던 때라 데뷔 후에도 대중적 지지를 얻어내기 힘들었다. 그나마도 진득하게 시장을 계속 노크해봤더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는데, 막상 초반성과가 애매하게 나오자 YG엔터테인먼트 측에선 ‘일본을 넘어 월드로’란 캐치프레이즈로 전략을 바꿔버렸다. 그리고 난 뒤 2012년 이후의 ‘일본 내 한류 정체기’를 맞이했다. 그러다 다시 일본서 한류가 활황을 맞이하게 된 2017년, 2NE1은 해체됐다.

언급했듯, 블랙핑크의 일본데뷔 초반 상황은 최소한도 ‘YG엔터테인먼트 카테고리’ 내에선 선배 걸그룹 2NE1에 비해 매우 좋은 편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선 외적 내적 원인을 따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외적으론, 그동안 일본에서 한류시장 자체가 여러 지류를 타고 보다 탄탄하게, 그리고 보다 폭넓게 굳어진 상황이 있다. 비단 K팝 상품뿐만이 아니다. 테니스 스커트 등 한국 패션, 한국식 화장법, 일본 젊은 층의 대표적 소통수단이 된 네이버 라인, 설빙이나 교촌치킨, 치즈닭갈비 등 일본 젊은 층 내에서 ‘줄 서서 먹는 맛집’으로 거듭난 한국 요식업 프랜차이즈 및 메뉴들, 사실상 끝도 없다. 그렇게 ‘한국’ 그 자체가 그동안 인기 아이템이자 주목할 트렌드로 자리 잡은 상황이기에, 아무리 한국 걸그룹 붐이 일더라도 자신들 취향과 안 맞으면 버렸던 2011년 상황과는 조건이 크게 다르다. ‘한국에서 인기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주목할 가치는 발생하는 시점이 됐다. 트와이스도, 지난주 한국영화 사상 일본서 최대 규모로 배급된 영화 ‘부산행’도 모두 그런 기반을 바탕으로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내적으론, 확실히 블랙핑크는 일본시장 데뷔 준비를 열심히 한 팀이란 점이 있다. 일단 언어 측면에서 멤버들 대부분 열심히 노력한 모습이 보인다. 이런 식 자세가 전반적으로 호감을 샀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멤버 구성도 기존의 ‘무조건 쎈 언니’ 노선과는 다른, 상당부분 남녀 고르게 대중성을 얻어낼 수 있는 조건이다. 미형의 멤버들로만 갖춰져 있고, 각종 사생활 모습들도 카리스마만을 강조하는 형태가 아니다. 그리고 도쿄걸즈컬렉션 등 출연 행사들도 짧은 기간 내 매우 잘 고른 편이다. 방송 출연이 많았던 건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젊은 층 트렌드를 좌우하는 흐름을 잘 잡았다.

이런 내적 외적 요인들이 총합된 3만9089장. 해석은 다양할 수 있지만, 새삼 주목해야 할 부분이 따로 있다. 그 판매 추이다. 2개월여 간 예약판매를 실시했기에 초반 강세는 당연했다. 그래서 8월29일 1일차 판매량이 2만1583장으로 집계됐을 때 실망의 한숨을 쉬는 팬들이 많았다. 첫날 판매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 즉 2NE1 데뷔 당시와 비슷한 최종 성적이 나오리란 예상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차가 넘어갈수록 색다른 현상이 발견됐다. 2일차 5914장, 3일차 4162장에서 4일차 2213장으로 뚝 떨어진 것까진 예상했던 바인데, 5일차 2799장, 6일차 2418장 등으로 그 선에서 평행을 그렸다. 이 같은 지표가 보여주는 대목은 하나다. 기존 팬층이 사줘서 얻은 게 1일차, 2일차라면, 그 이후부턴 ‘신규 유입’이라 봐야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위와 같은 내적 외적 요인으로 인해 블랙핑크가 일본시장에서 제대로 홍보되고, 또 예상치를 뛰어넘게 소비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블랙핑크는 YG엔터테인먼트로선 일종의 ‘설욕전’이다. 정확히 2NE1이 실패했던 지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낸 ‘수정병기’다. 비록 레이블 자체의 강한 개성과 특색 탓에 일본 메인스트림 시장에서의 한계는 다소 뚜렷할 수 있다. 그러나 애초 YG엔터테인먼트라는 카테고리는 ‘그런 식’으로 수익을 얻어내는 노선이 아니다.

같은 레이블 빅뱅만 해도 그렇다. 실질적으로 음반판매량 자체는 일본서 여전히 높지 않다. 정규음반 기준으로도 가장 최근 발표한 앨범 ‘MADE’가 20만 장 조금 넘는 정도다. 싱글이나 미니음반은 그보다도 많이 떨어진다. 그러나 빅뱅은 일본에서 ‘콘서트의 제왕’이다. 2016년 닛케이 엔터테인먼트 집계로 빅뱅은 일본 콘서트 동원력 랭킹 1위를 차지했다. 2015년에 이어 두 번째 쾌거다. 총 60회 공연에 185만9000명을 기록, 2위 아라시와 2배 이상 차이를 보였다. 사실상 해외 데뷔 시 최대 수익처는 음반이나 음원 등이 아닌 콘서트 집객이란 점에서 빅뱅의 수익가치는 현 시점 한국 아이돌 중 가장 높을 수도 있다.

YG 아이돌은 ‘이렇게’ 버는 팀들이다. TV에 자주 등장하며 그 대중성을 바탕으로 음반을 파는 팀, 음악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중심인 앨범보다 트렌드 성이 주가 되는 싱글 판매량이 더 높은 팀, 각종 악수회나 하이터치회 등 이른바 ‘접촉상법’에 근거해 유사연애적 감각을 파는 팀들이 아니다. 대중성 자체는 전형화 된 아이돌들보다 떨어질 지라도, 그 팬층의 막강한 충성도와 신뢰도를 바탕으로 공연 등 행사를 통해 수익을 거둬들이는 팀들이다.

한류는 여러 다양한 노선을 필요로 하는 브랜드다. ‘트와이스와 쌍두마차’ 같은 게 아니라 ‘트와이스와 다른 그룹’이 나와 다른 시장을 다른 식으로 접근해주는 게 미래한류에는 훨씬 이상적인 모델이다. 그리고 ‘YG의 설욕전’이란 기치답게, 이번 블랙핑크 전략은 2NE1처럼 섣부른 판단으로 재앙 노선을 걷지 말고, 빅뱅처럼 진득하고 실속 있는 모델로 일본 및 세계시장에서 기능할 수 있길 기대한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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