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준의 독한S다이어리] 후속-도쿄가 끝인가요?… 2군 리그 필요성

[스포츠월드=권영준 기자] 한국 여자 배구의 그림자이자 숙제는 ‘김연경이 없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김연경이 그만큼 중요한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를 대신할 만한 대체자가 없다는 의미도 있다. 그래서 한국 여자 배구는 ‘포스트 김연경’을 발굴하는 것을 미래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최근 고교선수 정호영(선명여고)이 화제를 모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 그림자에 감춰진 더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바로 센터진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이후 대표팀을 짊어지고 나아갈 대표 주자가 없다. 프로배구 V리그가 선수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한국 여자배구는 센터 기근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 이는 국제무대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2군 리그가 필요한 이유이다.

▲블로킹 ‘톱 10’ 평균 연령 29.6세

지난 시즌 V리그 블로킹 순위를 살펴보면, 톱10 안에 외국인 선수 알레나(인삼공사)를 제외하고, 1위 양효진(28·현대건설)을 필두로 9명의 국내 선수가 포진했다. 9명의 선수 평균 나이는 29.6세이다. 25세 이하 선수가 단 1명도 없었다. 이는 ‘국제배구연맹(FIVB) 2017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에 참가 중인 한국 여자 배구대표팀의 센터진 평균 연령도 마찬가지다. 양효진, 김수지, 한수지의 평균 나이는 29세를 넘어섰다.

스포츠에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나이 자체가 논란이 돼서는 안 된다. 프로는 경기력으로 평가받는 것이 맞다. 김세영(현대건설) 정대영(도로공사·이상 36)이 여전히 V리그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는 점은 충분히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각 구단과 한국 배구계가 다음 세대를 얼마나 육성하고 있느냐에 있다. 블로킹 10걸 중 가장 어린 선수는 김희진(IBK기업은행)과 김유리(GS칼텍스·이상 26)였다. 두 선수가 2010~2011시즌 신인 드래프트 동기인 점을 고려하면, 그 이후 7년 동안 V리그에서 확실히 자리 잡은 센터가 없다는 뜻과 같다. 육성에 그만큼 소홀했다.

▲센터 기근 현상

당연한 이치다. 경기에 뛰질 못하는데,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가 있을 리 없다. 지난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순위에 도로공사 유니폼을 입은 센터/라이트 정선아는 데뷔 첫 시즌 5경기, 7세트 출전이 전부였다. 그가 남긴 기록은 유효 블로킹 1개였다. 2016년 AVC컵 여자배구 대표팀 출신인 센터 김현정(GS칼텍스), 이선정(인삼공사) 역시 각각 7경기, 2경기 출전이 전부였다.

범위를 넓혀보자. 최근 5년간 신인 드래프트에서 선발된 센터 중에 2014~2015시즌 신인 문명화(GS칼텍스) 정도만 두각을 나타냈다. 드래프트 동기 이영(GS칼텍스), 2012~2013시즌 신인 공윤희(흥국생명), 2011~2012시즌 신인 정시영(흥국생명)도 기대주이지만, 이들의 실제 포지션은 센터가 아닌 사이드 공격수이다. V리그에서 블로킹·속공 부문 톱 10에 진입한 선수 가운데 가장 최근 데뷔한 선수는 2011~2012 2라운드 1순위 유희옥(인삼공사)이다.
▲도쿄올림픽이 종착지인가

이와 같은 현상에 직접적인 영향은 도쿄올림픽 이후에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3년 후 도쿄올림픽에서는 30대 초·중반의 양효진, 배유나, 김수지 그리고 20대 후반의 유희옥 김유리로 치를 수 있다. 하지만 2024년 올림픽(개최지 미정)을 이끌 센터진이 당장 내세울 이름이 없다. 포스트 김연경도 절실하지만, 포스트 양효진도 없다는 사실은 인지해야 한다.

7년이라는 시간이 길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양효진 케이스를 들어보자. 2007~2008시즌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 무대를 밟은 그는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시작으로 2012 런던, 2016 리우 올림픽까지 대표팀 주축 센터였다. 2020년까지 뛴다면 4회 연속, 12년이라는 긴 시간 올림픽 대표팀으로 활약하게 된다. 거꾸로 말하자면, 12년이란 긴 시간 동안 양효진의 자리를 위협할 만한 센터 자원을 단 1명도 키워내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러한 현실이 지속된다면 도쿄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 여자 배구는 바닥을 칠 가능성이 크다. 김연경, 양효진 등이 은퇴하는 순간 전력 악화를 막을 길이 없다.

▲다시 느끼는 2군 리그 필요성

이 정도면 왜 2군 리그가 필요한지 설명을 하지 않아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앞서 <권영준의 독한S다이어리/또 리시브 타령… 그랑프리서 드러난 '2군 필요성'>을 통해 2군 리그 창설을 강조한 바 있다. 선수단의 기본기 부족을 선수 개개인의 능력 부족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현 배구계 시스템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우수 자원 육성 역시 시스템 문제와 같은 맥락이다.

우선 초중고 인재풀을 넓히기 위해서는 취업의 문이 넓어져야 한다. 여자부의 경우 신인 드래프트에서 선발되지 못하면 그대로 은퇴한다. 2016~2017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32명이 신청해 16명이 선택을 받았다. 이마저도 수련 선수 포함이다. 취업률 50%. 신인 드래프트 이전 시즌 정상에 오른 현대건설은 단 1명의 신인 선수만 선발했다. 프로구단의 선택을 받지 못한 선수는 고교 시절 운동에만 전념했기 때문에 대학 문을 두드리지도 못한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어느 부모도 귀한 딸에게 배구를 시키지 않는다.

취업문이 넓어지면, 그만큼 인재풀이 늘어날 수 있다. 신인 선수들이 늘어나면 그 가운데 인재를 찾을 확률도 늘어난다. 현실적으로 장신 선수의 발굴은 힘들더라도, 2군 리그를 통해 기술이 뛰어난 선수를 육성할 수는 있다. 특히 2군 리그는 1군과 달리 성적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선수 개인 경험이나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이러한 작은 변화도 시도하지 않는다면, 한국 배구는 김연경, 양효진이 은퇴하는 순간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다.

young0708@sportsworldi.com / 사진=FIV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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