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옥자-권지용, 근거 없는 공포

대중문화계 미디어 플랫폼 이슈가 터졌다. 그것도 영화계와 음악계 양쪽에서 동시다. 인터넷 기반 뉴미디어 등장 이후 이 같은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번 양상은 좀 다르다. 이전엔 어디까지나 대중문화 콘텐츠를 담은 인터넷 파일의 불법유통 문제였다면, 이번은 그 양성화 단계에서 불거졌다. 아슬아슬하게 올드미디어와 공존해오던 스테이터스 쿠오가 깨지고 기 싸움 구도가 연출되고 있다.

먼저 영화계에선, 봉준호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옥자’가 상영파문을 겪고 있다. 극장상영과 넷플릭스 공개를 동시에 이루려던 계획이 전체 스크린 수 90% 이상을 차지하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3대 극장체인 반발에 부딪혔다. “세계영화산업 유통구조 질서에 반(反)하며 산업생태계를 파괴하는 등 심각한 혼란을 야기한다”는 취지에서다. 이에 ‘옥자’는 29일 넷플릭스 공개와 함께 서울의 대한극장, 서울극장 등 전국 개인극장 91개 스크린에서만 상영될 예정이다.

한편 음악계에선 보이그룹 빅뱅 멤버 지드래곤 개인 음반의 USB 공개파문이 일었다. 지드래곤은 지난 8일 총 5곡이 들어있는 미니앨범 ‘권지용’ 음원을 공개한 뒤, 19일 그 오프라인 앨범을 발표했다. 그런데 오프라인 앨범은 기존 CD 형태가 아니라 USB 형태였다. 물론 CD를 대신해 USB로 음반을 발표한 건 지드래곤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김장훈, 갓세븐, 이승기 등도 시도했던 발상이다.

문제는, 해당 USB 안에 음원이 들어가 있는 형태가 아니란 점이다. USB를 PC에 꽂아 나오는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앨범 내부에 있는 일련번호를 입력하면 해당 웹사이트에서 음원 및 독점 이미지, 독점 영상 등을 다운받을 수 있는 구조다. 이에 음반판매집계 단체 등에선 이를 음반으로서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이 같은 판단에 지드래곤은 SNS를 통해 불쾌감을 표하기도 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에 대해 너무 고루한 자세를 취하고 있단 취지다.

드물게 대중문화계 양대 분야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갈등은, 그 자체로 보면 그림으로 그린 듯한 신규 미디어 플랫폼 갈등이 맞다. 시대가 바뀌어 그에 적응하려는 쪽과, 기존 플랫폼에 지분이 있거나 적어도 그에 친숙해 적응을 거부하려는 쪽 사이 갈등이다. 어느 시대나 문명 발전과 함께 이 같은 갈등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옥자’와 ‘권지용’은 ‘미디어 플랫폼 갈등’이라 단정지어 부르기엔 상당히 애매한 구석이 있다. 나아가 사실상 갈등상황이 맞는지조차 애매한 측면도 존재한다. 이를 찬찬히 짚어보자.

먼저 지드래곤의 ‘권지용’ 앨범이다. 단적으로 말해, 이는 미디어 플랫폼 변화 갈등이 아니다. 대중음악계에서 미디어 플랫폼 전환은 ‘이미’ 이뤄졌다. 인터넷 기반 디지털음원이 막강한 대중선호를 바탕으로 패권을 쥔 지 오래다. 이제 오프라인 음원판매수단인 CD는 열혈팬층의 팬시상품 격 존재, 사실상 굿즈화 된 상황이다.

굿즈는 CD건 USB건 뭐건 아무 상관이 없다. 그 자체로 하나의 실물화된 콜렉션 거리가 되면 그만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 즉 그냥 인터넷에서 다운받는 수단 정도라면 어차피 음원 다 공개된 마당에 훨씬 싼 값에 다운받으면 될 일 아니냐는 반론에 대한 답은, 사실 간단하다. 지드래곤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 측 전략은 정확히 말해, 기존에 디지털음원 및 음반 판매 홍보수단으로 여겨지던 독점 이미지, 독점 영상 등을 이제 ‘따로 팔겠다’는 전략에 불과하다. 일본 등지에선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다만 그에 따른 시장충격을 감안해, 이를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이란 식으로 커버함으로써 인식을 환기시켜 소비자들을 납득시키려는 의도다. 어딘지 꼼수 같은 느낌도 들지만, 그 자체론 꽤 머리를 잘 쓴 전략이다.

이 USB가 음반으로 인정되느냐 아니냐는 의외로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이미 대중 차원에선 디지털음원 다운로드-스트리밍이 실질적 트렌드 지표가 되는 기준이다. 음반판매량은 아티스트 팬덤들 간 자존심 대결이 될 순 있어도 그 이상 의미는 없다. 기껏해야 해당 아티스트 팬덤이 어느 정도 규모고 또 어느 정도로 충성도 높은가 대결일 뿐이란 얘기다. 물론 지상파방송사 음악 차트에 영향을 줄 순 있지만, 그 역시도 어차피 팬덤을 제외하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차트다.

결국 지드래곤의 ‘권지용’ USB 앨범 문제는, 크게 봐봤자 일본식 부가상품판매 확대 문제, 작게 보면 그저 팬덤 내에서의 자존심 대결 문제일 뿐이란 얘기다. 다시 말하지만, 대중음악계에서 미디어 플랫폼 이슈는 이미 끝난 상황이다. 이건 그 문제가 아니다. 시대변화의 문제가 아니라 상업전략의 문제다.

이제 ‘옥자’와 넷플릭스 상황을 보자. ‘옥자’의 넷플릭스-극장 동시공개는 극장 개봉과 인터넷 기반 서비스 공개 간 간격을 3주간 보장하는 기존 홀드백 질서가 깨진다는 개념이다. 개봉 1~2주 동안 스크린을 독과점시킴으로써 트렌드성을 극대화시켜 초장에 승부 보고 바로 빠지는 한국 영화배급구조 속성으로 보아, 3주 정도면 극장 측도 콘텐츠 제작 측도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 맞다. 그런데 이게 ‘동시진행’으로 가는 구조가 되면 극장 측에선 그 타격이 어마어마하리란 우려가 나온 것이다. 지금은 넷플릭스라는 일개 제작배급업체 한 곳의 특수사정일 뿐이지만, 이런 전략이 적용돼 인터넷 기반 플랫폼이 압도적 우위를 보인다면, 향후 다른 스튜디오들도 비슷한 전략을 꾀해 전반적으론 극장업 자체가 사멸의 길로 접어들지 모른다는 공포도 서려있다.

그런데 사실 지금과 같은 극장체인들 보이콧은 뭔가 좀 이상하다. 1980년대 비디오플레이어 보급 이후 이미 자리 잡은 개념, 아니 그 이전 TV 보급 이후 자리 잡은 개념에 대한 몰이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바로, 극장과 안방은 서로 전혀 다른 플랫폼이란 개념이다. 극장은 ‘나들이’다. 그 자체로 데이트 등 바깥나들이 차원에서 즐기는 레저가 된 지 오래다. 그리고 나들이는 여러 기능을 갖고 있다. 그야말로 ‘바깥공기’를 즐기려는 의도와 함께, 타인을 만나 커뮤니케이션하려는 의도도 공존한다.

이런 갈등은 1980년대 인스턴트커피 붐이 일 때도 똑같이 존재했다. 인스턴트커피가 보급되면 다방 등 커피판매점들은 문 닫게 되리란 예상들이 나왔다. 그런데 오히려 커피판매점은 1990년대 후반부터 브랜드커피를 중심으로 어마어마하게 성장했다. 커피판매점은 커피를 마시러 가는 곳이 아니라 커피란 매개를 통해 홀로나들이 또는 타인과 커뮤니케이션하러 들르는 공간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똑같이,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극장에서 보는 것과 집에서 보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전자는 명확히 나들이 기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몰이해는 곧 2000년대 들어 왜 한국에서 영화산업이 이토록 부흥했는지 그 근본적 원인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 된다. 영화는 장기불황 속 한국에서, 가장 싼 값에 가장 오랜 시간 즐길 수 있는 나들이 레저수단이기에 그 수요가 폭발한 장르다.

인터넷 기반으로 서비스 돼도 극장 갈 사람은 다 간다. 나들이 수단으로서 기능이 훨씬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영화 그 자체만을 보러 그토록 많은 관객이 몰려가는 시장, 영화 마니아층이 그토록 많은 시장이라면, 2차시장인 비디오-DVD 시장 등이 그토록 자리 못 잡은 상황이 말이 안 된다. 그리고 지금도, 특히 외국영화의 경우, 극장개봉 시점에 인터넷에서 불법파일이 돌아다니는 경우는 수도 없다. 아무리 단속해도 소용없을 정도다. 사실상 인터넷-극장 동시공개 차원인 경우들은 이미 비일비재하단 얘기다. 그래도 대중은 극장에 간다. 대중 소비패턴과 그 심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기껏 변화라고 한다면, 1950년대 TV 등장 이후 할리우드가 선택했던 극장용 영화 방향성이 다시 고려되는 정도가 예상된다. 극장에서 봤을 때 전혀 다른 감흥을 주는 영화들, 큰 스케일의 비주얼 스펙터클 영화들, TV에선 보여주지 못하는 성적 표현이나 폭력묘사 등을 보여주는 19금 영화들이 득세하는 구조가 나온다. 그런데 이미 TV시대와 비디오시대를 거치며 할리우드 영화들은 그런 식으로 변모한 지 오래고, 한국 역시 1970~80년대 내내 외설영화들로 TV를 극복해오다 1990년대부턴 투자를 늘려 비주얼 스펙터클 중심으로 변화가 모색된 지 오래다. 이미 극장을 선택해야 할 조건들은 다 갖춰놓은 상황이란 얘기다.

결국 미디어 플랫폼 문제처럼 떠올랐던 ‘옥자’와 ‘권지용’ 상황의 결론은 같다. 미디어 플랫폼 문제는 사실상 ‘이미’ 다 결론지어진 문제라는 것이다. 답도 나왔고 해결방안도 나와 있다. ‘옥자’와‘ ’권지용‘ 탓에 특별히 시장이 교란되거나 질서가 파괴될 우려는 극히 적은 상태다. 그런 점에서 지금 ‘옥자’와 ‘권지용’으로 불거진 문제는 모두 본질적 문제들이 아니다. 그저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 지 관찰하는 개개상품 테스트베드 사례가 될 뿐이다. 개개 상업전략 차원 문제란 얘기다. 그리고 모든 종류 새로운 상업적 가능성과 그를 통한 시장 확대의 기회는, 이처럼 새로운 상업전략 실험무대를 방해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시장 확대의 주적은 언제나 ‘공포’이고, 그 중에서도 최악은 ‘근거 없는 공포’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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