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물러선 문재인, 남북정상회담은 이뤄질까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북한의 추가 도발 중단을 전제로 북핵 논의의 핵심 의제를 한꺼번에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고 협상할 뜻을 공식화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17주년 기념식 축사를 통해 북한이 핵·미사일 추가 도발을 중단한다면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 그리고 북·미관계의 정상화까지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계속되는 북한 미사일 도발에 ‘빈틈없는 안보’를 강조해온 문 대통령이 6·15 기념식을 계기로 ‘포괄적 협상’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날 대북 메시지는 최근 북한이 6·15 공동선언, 10·4 선언의 이행을 강조한 데 대한 ‘화답’ 성격이 짙다. 문 대통령은 6·15 공동선언 이행 등을 압박하는 북한에 “핵과 미사일 고도화로 말 따로 행동 따로인 것은 바로 북한”이라고 책임을 분명히 묻고 북한의 변화를 촉구했다. “우리는 우리대로 노력할테니 북한도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도 정세논설에서 “6·15의 기치보다 더 좋은 평화와 통일, 민족번영의 표대(푯대)는 없으며 6·15가 가리킨 길보다 더 나은 길은 없다”고 강조했다.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15 공동선언은 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 남측 연합 제안과 북측 연방 제안의 공통성 인정, 경제협력을 통한 민족경제의 균형 발전 등을 골자로 한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이 최근 북한의 잇단 도발과 관련해 “위기는 기회”라고 언급한 점이 눈길을 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 등 한반도 긴장국면 속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새로운 장을 열었듯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는 새롭게 정립되고 발전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경색된 북핵·미사일 위기 국면을 김대중정부와 마찬가지로 남북 대화에서 돌파구를 찾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전향적’ 의지에도 불구하고 남북대화 재개로 이어지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북한의 호응이 필요하다. 김정은체제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에도 미사일 연쇄 도발로 미국만을 상대하겠다는 ‘통미봉남’ 행보를 고수했다. 전문가들의 관측과 달리 핵실험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만 긍정적일 뿐이다. 이달 말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도 변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 안보라인은 강도 높은 대북 제재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의식불명 상태로 귀환한 오토 웜비어 문제도 북·미 관계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여건에서 한국 정부가 ‘운전석’에 앉아 한반도 문제를 끌고 갈 수 있을 지 미지수다. 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핵·미사일 도발 중단과 대화 재개 의지를 밝힌 건 남북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체가 돼야한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11년 만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기념식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등 김대중정부 인사를 비롯해 전현직 관계자들로 성황을 이뤘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원식 원내대표, 국민의당 박주선 비대위원장과 김동철 원내대표 등 김 전 대통령 적통 계승 경쟁을 벌이는 양당 지도부가 총출동했다.

세계일보 유태영·김민서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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