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화재 참사' 상층 주민 사망 추정… 100명 이상 될 수도

14일(현지시간) 새벽 영국 런던의 24층 주거용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 희생자가 17명으로 늘었다. 영국 경찰은 15일 오전 11시쯤 현장 기자회견을 열고 “사망자 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수색견을 동원해 시신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테러와 연관된 증거는 찾지 못했다”면서 “건물 붕괴 위험 때문에 수색작업에 어려움이 있어 몇 주일이 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37명의 환자가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가운데 17명은 위독한 상태라고 전했다.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가족과 친지를 찾는 안타까운 사연이 줄을 잇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사망자가 100명 이상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이날 오전 현장을 방문해 시찰했다. 검은색 정장 차림의 메이 총리는 런던소방청 간부들의 설명을 들은 후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바로 현장을 떠나 ‘태도 논란’이 불거졌다. 주민들과도 만나지 않았고 별다른 메시지도 남기지 않았다.

◆첫 신고 6분 후 도착, “소방관 200명이 주민 65명 구조”

런던 소방당국은 999 화재신고가 처음 접수된 지 6분 만인 14일 오전 1시부터 소방차 일부가 화재 현장에 도착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불이 난 그렌펠 타워는 층마다 방 1∼2개짜리 여섯채가 있고, 전체 주민만 600명 안팎이다. 하지만 소방관 200여명이 구조한 주민은 65명에 불과했다.

인명구조 성과가 적은 것은 불길이 너무 빠르게 번진 때문으로 보인다. 소방당국은 “3층에서 불이 났다”는 첫 신고 접수 직후 4∼5층 화재 신고가 여럿 이어졌다고 밝혔다. 경찰은 오전 1시16분 지원 요청을 받았는데, 이 무렵 17층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주민은 “우리집 창문 밖까지 불길이 솟구쳤다”고 증언했다. 옆 건물 주민은 오전 1시30분 “불길이 건물 전체를 감쌌다”며 “불길이 그렇게 빨리 번질 줄 몰랐다”고 전했다. 건물 붕괴 우려가 제기됐고, 인근 30여개 건물의 주민들도 모두 대피했다.

건물 접근로가 좁아 대형 소방차의 접근도 쉽지 않았다. 이미 불길이 커진 상황인 데다 건물 안에 엘리베이터 2기와 3평(9.1㎡)도 안 되는 좁은 계단이 유일한 통로인 탓에 대피와 화재 진압 모두 더뎠다. 소방관들은 현장에 출동한 지 9시간가량이 지나서야 꼭대기층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인재 논란 확산… 스프링클러·화재경보 없고, 대피요령·자재 부실

데일리메일은 최상층 3개층 주민들은 화마와 연기에 모두 희생됐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24층에서 3살과 5살 아이들과 사는 라니아 이브라햄(30·여)이 화재 당시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건물 안에 갇혀 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영상에는 집 밖에서 다른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외치는 소리 등이 그대로 담겼다. 오전 2시45분 친구에게 아랍어로 “나를 용서해줘. 안녕”이라는 문자를 보낸 라니아의 가족들은 현재까지 실종 상태다.

일부 저층은 화마를 피했지만 대부분 거의 24시간 동안 화염과 연기에 노출된 만큼 시신 확인 작업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소방당국이 대피한 주민과 친지, 지인 등을 상대로 대대적으로 실종자를 확인하는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이슬람계 주민이 많은데, 라마단 기간이라 화재 당시 깨어 있다가 대피한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도 나온다.

영국 정부는 해당 건물에 스프링클러 등 기본 장비가 없었는지, 화재경보가 울리지 않았는지 등을 철저하게 조사할 계획이다. 1974년 건축 이후 지난해 리모델링 작업을 하면서 화재에 취약한 자재를 썼는지, 화재 시 집안에 대기하라는 부적절한 대피요령을 강요했는지 등도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일보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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