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숙원 풀어준 F-35, '적폐' 낙인찍히나

“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 방위사업과 관련해 로비자금 수수 등 대형 비리는 터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적폐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공군 전투기 전력 기반을 훼손하고 한국형전투기(KF-X) 개발 계획에 악영향을 미쳤던 차기전투기(F-X) 사업이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이달 중순, F-X 사업에 관여했던 관계자가 털어놓은 말이다. 로비스트 린다 김의 편지 사건으로 유명해진 금강백두 정찰기 도입 사업 등 전통적 의미의 비리는 없었지만 7조3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공군의 차세대 주력전투기를 도입하는 사업이 부실하게 진행되면서 공군의 전력 증강 계획을 통째로 뒤흔들었다는 의미다.

강력한 스텔스 성능을 바탕으로 북한의 강력한 방공망을 뚫고 후방 깊숙한 지역까지 침투할 수 있는 능력과 제공권 장악 능력을 우리 공군에 제공할 F-35A 40대는 향후 공군의 주력 전투기가 될 예정이다. 하지만 방위사업 비리 척결과 국방 획득체계 혁신을 내걸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4대강 사업, 국정 역사교과서 등 과거 정부의 주요 정책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최대 무기 도입 사업이었던 F-35A 구매에도 비판적인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 갑작스레 뒤집고도 “문제 없다” 넘어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은 사업 추진 절차다. 2013년 8월 하순, 방위사업청은 F-X 사업 기종으로 미국 보잉의 F-15SE를 선정했다. 수차례 진행된 입찰에서 방사청의 가격조건을 유일하게 충족시킨 F-15SE는 미국 록히드마틴의 F-35A, 유럽 에어버스의 유로파이터를 제치는데 성공했다. 8조3000억원을 투입해 2020년대 한국 영공을 지킬 전투기 60대를 보잉이 공급하게 된 것이다. F-15SE는 성능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으나 F-15K와의 호환성 등에서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단독 후보가 됐다.

방사청의 결정 직후 군 안팎에서 거센 역풍이 불었다. 전직 공군참모총장 15명은 국회와 청와대 등에 건의서를 보내 F-15SE 도입은 적절치 않으며 우리 군은 스텔스기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도 “스텔스 성능이 부실한 30년 된 전투기”라며 공격했다. 이에 방사청은 F-15SE 선정의 정당성을 적극 홍보하는 자료를 배포하는 등 적극 대응하면서 같은해 9월 24일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이 주재하는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F-15SE 구매안을 상정했다. 하지만 김 장관은 ‘정무적 판단’을 들어 F-15SE를 부결시켰다. 이후 절차는 일사천리였다. 2014년 3월 F-35A로 후보기종이 변경됐고 6개월 뒤인 9월 록히드마틴과 F-35A 40대를 7조4000억원에 도입하기로 수의계약했다. 당시 “사업이 재개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던 관측을 여지없이 깨버린 속전속결 방식이었다.

문제는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는 말처럼 F-35A 도입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정책결정 과정은 물론 그 이후의 상황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방위사업추진위원회가 열리기 전 방사청에서 사업관리분과위원회가 개최된다. 이 위원회에서 통과된 사안이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상정되며,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상정된 사안에 대해 가결과 부결 여부만 결정한다. 방위사업추진위원회가 F-15SE를 부결시키면 F-X 사업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과정은 최대 수년이 소요될 수 있다. 하지만 F-15SE가 부결된 직후 군요구성능(ROC) 수정부터 사업추진기본전략 수정, 기종 선 정, 계약까지 걸린 시간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공군의 전력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최단 시간에 사업을 진행해야 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애초 60대를 도입하기로 했던 전투기를 40대로 줄인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공군의 F-4, F-5 전투기는 도입한 지 30년이 넘은 상태로서 실질적인 전투력 발휘가 어렵다. F-15K는 치솟는 정비비로 가동에 제약이 많고, FA-50은 육군의 근접지원용이다. KF-16은 성능개량 때문에 순차적으로 공장에 입고되느라 100% 전력 발휘에는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차기전투기 도입은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다.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므로 전투기 추가 도입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 따라서 전투기를 한 대라도 더 들여올 수 있도록 예산을 증액하거나 억제 효과에 필요한 최소 수량만 도입하고 나머지는 공군이 주장하는 적정 대수의 전투기 숫자를 채울 수 있는 저렴한 기종을 도입하는 등의 대안을 검토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F-15K 도입 대수가 60대에서 40대로 감소했을 당시에는 IMF 구제금융에 따른 재정 악화라는 대의명분이 있었지만 F-35A 도입 수량 삭감에는 그런 명분조차 없었다. ‘정무적 판단’이라는 말 한마디에 전투기 20대가 사라진 셈이다.

◆ KF-X 발목잡았던 F-X

졸속으로 진행된 F-35A 도입은 피할 수 있었던 논란을 불러들인 결과를 낳았다. 2년 뒤인 2015년 불거진 한국형전투기(KF-X) 개발 사업에 필요한 미국측의 기술이전 문제다. F-35A 도입계약 당시 방사청은 록히드마틴과 절충교역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KF-X 개발에 필요한 25건의 기술이전에 합의했다. 그런데 2015년 4월 미국 정부는 25개 기술 중 다기능위상배열(AESA)레이더 등 4개의 핵심 기술을 이전할 수 없다고 우리측에 통보했다. 이같은 사실은 같은해 하반기 언론에 보도되면서 정국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이러한 사태는 2년 전에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2013년 8월 F-X 사업이 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됐을 때, 사업에 참가한 업체들은 방사청의 요구에 따라 KF-X 개발 관련 기술 51개 중 이전이 가능한 기술을 제시했다. 미국 보잉은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할 가능성에 대비해 이스라엘 협력사 등을 통해 우회해서 51개 기술을 모두 이전하겠다고 했고, 에어버스는 기술 이전과 함께 KF-X에 2조원을 투자해 공동개발하겠다고 제안했다. 반면 록히드마틴은 21건만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수의계약으로 F-35A를 도입하기로 했을 때 미국 정부의 승인을 전제로 4건을 추가했다. 논란이 발생했던 것이 바로 이 4건이다.

F-35A를 도입하면 미국으로부터 기술이전이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2013년 F-X 사업이 경쟁입찰방식으로 진행됐던 시기부터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 사업 참여 업체들이 제안한 기술이전 수준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따라서 F-15SE 구매를 부결시킨 직후 F-35A를 도입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국방부와 방사청은 기술이전 문제를 명확히 짚고 넘어갔어야 했다. 만약 핵심기술 이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면 공군의 전력공백을 막고 적은 예산으로 KF-X 개발을 추진할 수 있는 대안을 찾을 기회를 얻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스텔스 성능을 앞세워 F-35A 도입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도 기술이전은 장밋빛 환상에 기초해 낙관적인 전망만 내놓았다. 그 결과 록히드마틴이 절충교역의 일환으로 진행했던 군사통신위성도 비용 분담을 요구하면서 사업을 지연시켜도 사업 재개를 조건으로 지체상금을 물리지 않는 등 부작용을 낳았다.

KF-X 기술이전 파문 직후 방사청은 AESA 레이더를 국방과학연구소(ADD) 주관 하에 개발을 진행하고 KF-X 체계통합을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맡기는 등 국내 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공기업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는 KAI는 정권이 바뀌면 사장도 교체되는 게 일반적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임명된 하성용 현 사장 역시 새로운 인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방산업계와 군 안팎에서는 KAI의 최대 프로젝트인 KF-X를 실제 운용할 공군과의 긴밀한 소통능력과 공중 전장 환경 특성 및 공군 구조에 해박한 전문가가 사장을 맡아야 한 번 엉킨 KF-X개발이 더 이상 차질을 빚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상황을 정리해보자. 결국 F-15SE 대신 F-35A를 도입하기도 한 결론이 문제가 아니라 결정 과정에서 제대로 된 사실 확인과 검토가 이뤄지지 않아 KF-X 사업도 엄청난 혼선을 초래했다. 남은 쟁점은 하나다. 도입 대수를 줄이면서까지 F-35A에 매달리면서도 기술이전의 어려움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던 이유다. 전직 공군참모총장들의 건의서가 영향을 미쳤을까. 당시 정부 관계자는 “그 때 청와대는 그 건의서를 무시하다시피 했다. 건의서가 언론에 보도돼 공론화됐을 뿐, 그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KF-X 기술이전 논란이 불거졌을 때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조사를 진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됐다. 로비나 금품수수도 비리지만 정책결정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간과한 채 속도전으로 사업을 진행한 것도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적폐다. 새 정부가 4대강 사업에 대한 정책감사에 착수하는 등 보수 정부의 주요 사업에 대한 재검토가 본격화되면서 F-X 사업도 되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세계일보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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