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먼저다' 지역명사와 함께하는 문화여행

[밀양·영주·정선·홍천=사진·글 전경우 기자] 한국관광공사에는 ‘관광콘텐츠팀’이 있다. 이들은 새로운 관광 자원을 발굴하고 콘텐츠로 만들어 내는 일을 한다. 이 팀이 지난 2015년부터 주목하기 시작한 관광 자원은 ‘사람’, 보통 사람이 아닌 ‘방외지사’다. (공자는 장자와 같은 사람을 두고 세상 바깥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방외지사(方外之士)’라고 했다.)

한국관광공사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숨어 있는 보석같은 인물들 14명을 선정했는데 마지막 황손 이석, 박경리씨의 딸인 김영주 토지문화 재단 이사장, 우리나라 1세대 커피 바리스타인 박이추씨 등 그 면면이 다양하다. 이들 명사와 함께 하는 여행상품은 롯데관광 등 여행사를 통해 예약 가능하며, 쿠팡같은 온라인 커머스 업체와도 판매 활성화를 논의 중이다.

‘경치에 감동받으면 일주일이 행복하고, 사람에게 감동받으면 인생이 바뀐다’는 소록도 성당 신부님의 말을 떠올리며 ‘사람을 만나는 여행’을 기자가 직접 체험해 봤다. 

▲밀양 춤꾼 하용부의 ‘보는 소리 듣는 춤’

경남 밀양에서 유명한 것은 ‘돼지국밥’, 그리고 ‘백중놀이’다. 조선시대 머슴들은 7월 보름(백중날)쯤 용날을 택해 지배계층이 마련해준 술과 음식을 먹고 춤을 추며 노동의 고단함을 털어냈다. 머슴들은 양반을 풍자하고 욕보이며, 비꼬는 춤을 추기도 했는데 흠뻑 취한 이날은 모든 것이 용서됐다.

밀양 백중놀이는 ‘가만히 서있어도 춤이 된다’던 고 하보경 옹이 독보적이었다. 백중날 하보경의 춤을 보려면 국내 3대 누각으로 꼽히는 영남루에 가야 했는데, 당시 한켠에서 할아버지의 몸짓을 따라하던 어린 손자는 ‘명인’의 피를 이어 받았다. 그가 세계적인 춤꾼으로 이름 높은 하용부다. 그는 조부의 춤을 더욱 발전 시켜 세계적인 춤꾼으로 우뚝 섰다. 영남루를 찾아가면 하용부 선생의 구수한 입담과 함께 즉흥 공연이 펼쳐지는데 그저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 하나로 좌중을 사로잡는다. 춤에 관한 지식이 없는 사람도 눈앞에 펼쳐지는 몸짓이 ‘명품’임을 단박에 느낄 수 있다. 

▲석계종택 종부 조귀분과 ‘음식디미방’

경북 영양 두들마을은 한식을 이야기 할때 빼놓을 수 없는 지명이다. 동아시아 최초로 여성이 저술한, 최초의 한글 요리책 ‘음식디미방’은 이 마을의 중심에 있는 석계종택에서 만들어졌다. 저자는 ‘여중군자’로 칭송받던 장계향인데 그는 자손들을 위해 일흔이 넘은 나이에 순 한글체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조리서를 만들었다. 반가에서 실제 만들던 조리법과 저장발효식품, 식품보관법 등 146가지가 그 내용이다. 장계향은 딸과 며느리들에게 책을 반출하지 말고 필사를 할 것을 당부해 지금까지 원형이 지켜져 왔다.

현재 석계종택의 안주인은 13대 종부 조귀분씨다. 종부는 ‘봉제사·접빈객’이 직업인 종손의 아내다. 보통 생각하는 맏며느리와는 레벨이 다르다. 전통 생활 양식을 지켜야 하고 가문의 온갖 허물도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 인생이다. 그저 맘씨 좋은 동네 아주머니 같던 조씨는 ‘음식디미방’을 설명하기 시작하면 눈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전통 음식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조근조근한 말투 마다 뿌리 깊이 배어 있다.

두들 마을을 방문한 여행객은 조리 시설을 갖춘 체험관에서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잡과편’ 등 간단한 음식들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고, 음식디미방을 코스메뉴로도 맛볼 수 있다. 자극적이지 않고 기품 있는 우리 음식과 함께 별이 쏟아져 내리는 밤하늘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두들마을이다. 

▲‘아리랑 덕후’, 진용선이 들려주는 ‘아디동블루스’

정선이 고향인 진용선 아리랑 박물관장은 원래 직업이 토플강사였다. 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했는데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번역에 어려움을 느껴 아리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후 평생 틈틈히 아리랑에 관한 모든 것을 수집하고 연구해 왔던 진관장은 두만강을 건너간 아리랑의 발자국을 따라 만주와 러시아, 중앙아시아 곳곳을 누비며 사라져 가는 흔적들을 채집해 왔다.

발로 뛰어 만든 ‘내공의 깊이’는 정선 아리랑센터에서 그가 진행하는 토크콘서트를 ‘명품’으로 만들었다. 설명 중간 중간 지직거리는 옛 음반을 통해 아리랑의 변천사를 들려주는데 ‘아디동블루스’라는 이름을 달고 미국과 유럽에 퍼져나간 아리랑 가락들이 재즈와 팝 버전으로 변신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리랑과 함께 유랑생활을 이어간 ‘코리안 디아스포라’ 이야기도 관객들의 마음 깊숙한 곳을 뒤흔든다. ‘디아스포라’는 유태인들이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모습을 말한다. 후에 그 의미가 확장돼 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민족의 모습을 뜻하는 단어가 됐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아리랑이 급속도로 퍼져나간 것은 일제 강점기다. 우리 민족 수난의 역사 곳곳에서 아리랑은 여러가지 형태로 변형되어 존재해 왔다.

감동 가득한 토크 콘서트가 끝나면 아리랑 공연단과 함께 아리랑 가락을 배워볼 수 있고 아리랑의 모든 것을 모아 놓은 ‘아리랑 박물관’도 콜렉션도 수준이 남다르다. 아리랑 박물관은 진관장이 원래 운영하던 장소와 아리랑 센터에 새롭게 만들어진 공간 두 곳에 있다. 찾아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동강 주변의 비경도 마음에 담아 갈 수 있다.

▲검은 항아리에 담긴 세상, 홍천 도예가 김시영의 ‘가평요’

‘흑자’를 굽는 도예가 김시영은 대학 산악부에서 태백산맥을 종주중 화전민 마을터에서 오묘한 빛을 내는 검은 도자기 파편을 주웠다. 그리고 그날 그의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잠시 직장인 생활을 했지만 이내 사표를 던지고 전국각지 흙과 불에 대한 연구에 빠졌다. 외길 인생 40여년. 그는 ‘대가’로 거듭났다. 조선백자, 고려청자에만 익숙해 있던 수집가들 사이에서 조선시대에 맥이 끊겼던 흑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후 그의 작품 가격도 훌쩍 뛰어 올랐다. 그는 조선 백자 달항아리를 흑자로 해석한 작품을 보여주며 흑자의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말한다. 느릿한 말투지만 눈빛은 깊이가 끝을 알 수 없고 형형하게 빛난다. 딱 그가 만든 도자기에서 나오는 광채다.

‘가평요’라는 이름은 홍천으로 이사를 오기 전 써왔던 걸 그대로 가져왔다. 조소를 전공한 두 딸이 함께 하는 흑요작품 해설 및 관람, 말차 시음 등의 프로그램을 준비해 놨는데, 그가 가족들과 함께 가꿔온 아름다운 삶의 공간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홍천강 맑은 여울을 즐기는 모곡 유원지가 지척에 있다. kwjun@sportsworldi.com

사진설명
1. 춤꾼 하용부의 즉흥 공연.
2. 조귀분 종부가 잡과편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3. 진용선 아리랑박물관장이 아리랑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4. 도예가 김시영이 달항아리를 재해석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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