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새출발… 금융권, 취약층 부채 탕감 검토

문재인 정부 출범을 계기로 금융권이 취약계층의 빚 탕감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등 금융공공기관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시효가 지나지 않은 빚을 탕감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이들 기관은 지금까지 채무자의 이자를 감면해준 적은 있지만 원금까지 탕감해준 일은 없었다. 기술보증기금 관계자는 이날 “3월에 금융위원회에서 ‘금융공공기관 부실채권 관리 제도개선 방안’이 발표됐고 그 이후 채무에 대한 원금까지 탕감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신용보증기금 관계자도 “과거 채무자의 이자를 면제해준 적은 있지만 최근에는 이자와 함께 원금까지 탕감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들도 취약층의 빚 탕감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상환 능력이 없는 취약계층의 빚을 탕감해줘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먼저 나서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 먼저 취약계층에 대한 채무재조정을 시작할 경우, 다른 곳은 상당한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이 시효가 지나지 않은 빚을 탕감해주는 일은 드문 일이다. 2012년 대구은행은 장기연체자 4만9000명의 빚 970억원에 대해 최고 70%까지 탕감해준 적이 있다. 취약계층 채무재조정 방안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내놓은 가계부채 관련 공약 중 하나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 후보는 가계부채 해결책으로 총량 관리제를 통한 양적 규제와 함께 취약계층에 대한 채무재조정 방안을 내놓았다. 그는 우선 행복기금이 보유한 1000만원 이하 10년 이상 연체 채권을 탕감해주겠다고 공언했다. 이럴 경우, 탕감 규모는 약 11조원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문 후보가 내놓은 빚 탕감 공약은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신용보증기금 등이 검토 중인 탕감책은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은 채권도 포함하고 있어 문 후보의 공약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다.

지금까지 시중은행들은 취약계층을 위해 시효가 지나 회수가능성이 없는 채권만을 소각해왔다. 지난달 신한은행은 소멸시효가 지난 특수채권 4400억원을 소각해주기로 했다. 기초생활 수급권자와 장애인, 고령자 등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계층의 특수채권과 미수이자, 장기연체 채권 등 소멸시효 포기 특수채권이 그 대상이다. 특수채권 감면 대상 고객은 개인채무자 1만9424명으로, 이들은 계좌 지급정지, 연체정보, 법적 절차 등이 해지돼 다시 정상적으로 금융거래를 할 수 있게 된다.

시장은 금융권의 빚 탕감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빚 탕감이 현실화하면 성실히 빚을 갚아온 채무자와의 형평성 논란이 예상된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취약계층의 빚을 탕감해주는 방안을 둘러싸고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과)는 “저소득, 저신용 채무자의 신용채무를 적극적으로 탕감해 가계부채 전체 양을 줄여야 한다”면서 빚 탕감에 찬성했다. 하지만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과)는 “빚 탕감은 도덕적 해이가 우려되는 만큼 (적용대상 등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세계일보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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