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라붐 사재기 해프닝, 진짜 피해자는 누구인가?

걸그룹 라붐의 ‘음반 사재기’ 논란이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미 사회적 이슈에 가깝도록 번진 상태다. 그만큼 사태 진행 과정을 다시 한 번 나열할 필요는 없을 듯하고, 다만 라붐 소속사 글로벌에이치미디어 측에선 이에 대해 “지난 2월 프랜차이즈 요식업체 S사와 광고 모델 계약을 맺었”고 “광고주 측에서 국내외 매장의 프로모션용 고객 증정 이벤트를 제안하며 유통사를 통해 CD를 구입”한 것이라 해명했다는 점만 다시 언급해둔다.

일단 한국에서 음반 및 음원 사재기는 현 시점 엄연히 ‘불법’이다.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26조는 “음반/음악영상물관련업자등이 제작, 수입 또는 유통하는 음반 등의 판매량을 올릴 목적으로 해당 음반 등을 부당하게 구입하거나 관련된 자로 하여금 부당하게 구입하게 하는 행위”를 금하며, 이를 어겼을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법률은 지난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해 지난 3월28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시행으로부터 한 달도 채 안 돼 사건이 터진 지라 가장 빠른 적용대상이 될 위험도 있지만, 라붐의 경우 이런 규제에선 벗어날 가능성이 높다. 애초 자신들이 구입한 것도 아니며, 관련된 자로 하여금 ‘부당하게’ 구입토록 한 정황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린 것이든 아니든 ‘사재기 효과’를 보게 된 건 맞지만, 엄밀히 ‘사재기’ 그 자체의 정의와는 다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저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 취지다. 사실상 이미 팬시상품화 된 음반의 사재기를 규제하려는 목적보단, 지난 수년 간 ‘진짜 문제’로 대두되던 디지털음원 사재기를 막고자 하는 취지였다. 디지털음원 사재기는 근래 음악기획사들의 공공연한 투자수단처럼 여겨져 왔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온라인 음악저작권 사용료 징수방식을 기존 가입자당 징수방식에서 이용횟수당 징수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이쯤 돼선 음원 사재기가 ‘투자’ 차원이 아닌 실질적 수익창출 모델이 됐기 때문이다.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은 바로 이 같은 배경 하에서 성립된 것이다.

그런데 왜 음원 사재기가 그토록 엄격히 규제돼야 할 사항일까. 음악트렌드를 오도하는 문제 탓에?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사재기가 시장에서 ‘너무 잘’ 먹히기 때문이다. 한 음원서비스업계 관계자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소비자들은 음원 차트(순위) 위주로 음악을 듣는 이들이 많아 곡의 소비 주기가 짧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은 밴드웨건 효과가 극심한 문화시장 분위기란 것이다. 개인주의 성향이 희박한 집단주의 문화권에서 이런 분위기가 자주 연출된다. 자기 취향에 따른 제각각 소비보단 그냥 ‘남들이 듣고 보는 것’을 따라잡고자 하는 심리가 발동되기 쉽다. 그래서 사재기를 통해 음원차트 상위에 오르면 매출이 기하급수로 증대되는 효과가 나오는 것이다. 시장이 쉽게 교란된다.

그러나 이런 속성을 알면 알수록 더 궁금해지는 것이, 화두가 된 라붐 측 음반 사재기 이유다. 음반은 음원 사재기 같은 밴드웨건 효과를 내기 힘들다. 음반 판매량은 음원사이트 차트와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게토화 된 한터차트와 거기서 판매량을 받아오는 각 방송사 음악차트에만 영향을 준다. 그런데 라붐 사태로 문제가 된 KBS2 ‘뮤직뱅크’의 지난 주 시청률은 0.8%(닐슨 코리아 기준), MBC나 SBS 유사 프로그램들도 다 거기서 거기다. 각 방송사의 음악기획사 관리 목적 차원이 아니라면 진즉에 폐지됐어야 할 프로그램들이다. 상황이 이런데 여기서 차트 상위 랭크돼 수익증대 효과를 기대한다는 발상은 말이 안 된다.

한편 해당 차트 결과가 인터넷기사로 소비돼 음원판매효과로 이어진다는 발상도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기사로 소개된 음원은 일반대중 차원에서 유튜브 등으로 소비되고 끝난다. 정보취득과 소비 간 흐름에 심리적 진입장벽이 없기 때문이다. 음원사이트 경우는 다르다. ‘공짜’로 본 기사와 ‘유료’ 음원 구매 사이 심리적 장벽도 뚜렷하거니와, 그런 장벽을 혹 뛰어넘는 경우가 있더라도 일단 음원사이트 안으로 들어온 이들 대상으로 차트를 눈에 잘 띄는 곳에 노출시키며 곡을 선택케 하는 탄탄한 연결구조에 비할 바 아니다.

이러니 라붐 측에서 음반을 사재기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대체 뭔지는 점점 더 애매해진다는 것이다. 인지도를 높이겠단 측면이라면, 이미 활동 4년차 라붐은 잠재 음원소비층에서 ‘이름 정도는’ 알고 있다. 시장 정보에 민감한 실질적 아이돌 소비층, 아이돌 관심층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단순 인지도 상승 차원으론 지금 와서 뭔가를 더 기획할 이유가 없다.

그럼 남는 건, 아이돌 팬이 아니라면 보지도 않을 저 방송사 음악프로그램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영광’ 외엔 없다. 그 정도 유명무실한 영광을 위해 이토록 거대한 투자계획을 내민다? 상당히 어색한 대목이고, 애초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국회통과 후 음반은 사재기 자체가 휘발된 시장 분위기란 점도 고려해야 한다. 매출 전표가 바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음반 사재기는 이제 너무 위험한 도박이 됐단 것이다. 그럼에도 저 ‘영광’을 위해 아슬아슬 줄타기하며 사실상의 음반 사재기를 시도한다? 상식적 감각으론 어불성설이다.

그럼 대체 이유가 뭘까? 별다른 꼼수 없이, 그저 광고주 측과의 조율과정에서 도출된 단순 사업 방향 정도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음반판매에 따른 방송사 차트 상위 랭크로 광고주 측 홍보효과가 상승하리란 청사진 정도는 포함돼있었을 수 있다. 그래도 글로벌에이치미디어 측 목표는 바로 이 같은 이벤트를 성사시켜 2만여 장 넘는 음반을 선판매한 시점에 이미 달성된 것이었을 수 있다. 그쪽이 훨씬 더 큰 거래고, 실질수익과 연결된 거래다.

무엇보다, 대중음악시장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쪽은 글로벌에이치미디어 측이다. 4년여 간 지지부진했던 팀이 억지 차트 입성 하나로 갑자기 주목받으리란 기대는 이미 접고 있었을 공산이 크다. 그런 효과는 EXID 상황처럼 어디까지나 대중발(發) 현상이 일었을 때나 성립 가능하다. 결국 방송사 차트 입성은 곁가지 보너스 효과(그것도 상당부분 광고주를 만족시키기 위한) 정도로만 생각한 것이었는데, 거기서 문제가 터진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물론 크게 보면 이번 사태는 그저 해프닝에 가깝다. 방송사 음악차트는 현 시점 시장구성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뮤직뱅크’ 1위 놓쳤어도 아이유 신곡은 여전히 잘 나가고, 1위 차지하고 노이즈 효과까지 가세했음에도 라붐 신곡은 음원차트 진입에 맥을 못 춘다. 오직 라붐 측에 오명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에 따른 진정한 피해자는 과연 누구일 지도 쉽게 가늠이 된다. 소속사와 광고주 측은 애초 이 같은 전략을 기획하거나 실행한 측이다. 피해를 말하기엔 책임이 뚜렷하다. KBS 측은 분명 신뢰도에 피해를 본 게 맞지만, 애초 존재의미 자체가 휘발돼가던 ‘뮤직뱅크’에 책임 부분을 지적받으면서 존재감을 늘렸다. 궁극적으론 득이 더 많다.

결국 진정한 피해자는, 이 같은 ‘어른들의 사정’에 의해 사실상 팀의 존폐 여부까지 불투명해진 라붐 멤버들 개개인이라 봐야한다. 4년여에 걸쳐 제대로 뜨지 못한 것만으로 충분히 불안한데, 그나마 행사 중심으로라도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대중적 이미지 기반마저 무너졌다. 딱히 동정론을 부여할 상황까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들의 미래가 생각보다 밝길 바란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해온 팀이다. 시장 차원 자연소멸 외에 다른 요인으로 무너지기엔 그런 노력들이 안타깝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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