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비싼' 뮤지컬이 살아남은 이유

국내 뮤지컬시장의 ‘선방’ 상황이 화제다. 한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5대 뮤지컬 업체 중 전년대비 매출이 증가하지 못한 업체는 오디컴퍼니 한 곳뿐이며, 흑자를 내지 못한 업체도 CJ E&M 한 곳뿐이다. 다시 말해, 오디컴퍼니마저 흑자는 냈고, CJ E&M마저 매출 자체는 증가했다는 것이다.

사실 뮤지컬시장은 지금쯤 극심한 저하를 겪고 있어야 정상이다. 뮤지컬은 지난해 초미의 관심을 모은 김영란법에 유일하게 타격 입은 문화예술 장르이기 때문이다. 뮤지컬 입장권을 대거 매입해 ‘선물’로 관계자들에 뿌리던 각 기업 및 기관들 관행이 금지된 탓이다. 게다가 이 상황은 2년 전 메르스 사태 여파가 채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했다. 메르스 사태 역시 사람들 많이 모인 공연장을 꺼리는 대중심리를 낳아 공연시장 전체에 타격을 줬다.

그럼 뮤지컬시장은 어떻게 이 같은 악조건을 극복해냈을까. 이에 위 언론은 각 업체들의 투자 축소를 통해 수익성이 개선되고, 보수적 작품 편성으로 문화산업 특유의 리스크, 즉 도박성이 최소화된 결과라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후자의 ‘보수적 작품 편성’을 돌아보자. 방법론은 크게 둘이다. 먼저 기존 인지도가 성립돼있는 해외 유명뮤지컬 라이센스 공연, 그리고 이미 성공사례가 존재하는 히트 뮤지컬 리바이벌 공연. 이를 두고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지난해 공연 시장 전반을 보면 신작은 크게 줄었고, 돈을 벌겠다고 작정하고 만든 작품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시장 전체의 질적인 성장보다는 위기의식에 따른 극약처방의 결과라고 보는 게 맞다”고 분석했다. 이 분석을 기반으로 인터뷰가 실린 기사 역시 “시장의 질은 나빠졌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이 같은 분석은 사실 원칙론이다. 그리고 여타 문화예술 장르에선 이를 입증해주는 사례도 존재한다. 대표적 예가 홍콩영화산업 몰락 상황이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아시아의 할리우드’라 불리던 홍콩영화산업은 이후 급속한 쇠락을 겪다 지금은 아예 독자성 자체를 잃고 중국영화시장에 종속된 상태다.

이유는 단순하다. 홍콩영화산업은 1990년대 내내 불법복제CD 문제와 영화인력의 할리우드 진출로 인한 인재 공백상태, 그리고 홍콩반환에 따른 불안과 해외도피 러시 등 악재들을 겪으며 산업 전반에 위기감이 돌았다. 그런데 이를 타개하려 선택한 전략들이 최악이었다. 이미 흥행한 영화 인지도를 바탕으로 한 속편 러시, 속편은 아니더라도 그 유사상품 인상이 역력한 졸속영화 제작, 콘텐츠 자체의 이노베이션은 접어두고 스타배우에 의존하거나 CGI 등 눈요깃거리 덩치만 키우는 기획풍조 등등 ‘가지 말아야 할 길’은 알아서 다 찾아갔다.

위 원종원 교수 변처럼, “돈을 벌겠다고 작정하고 만든 작품”에 대한 안이한 발상 탓에 “시장 전체의 질적인 성장보다는 위기의식에 따른 극약처방”만 늘어나 전반적으로 시장 자체를 저하시키고 관객들을 자국영화로부터 내쫓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같은 논리가 모든 문화예술 장르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일단 뮤지컬과 영화는 그 생리부터가 전혀 다른 장르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싸다. 웬만한 대형 뮤지컬 평균 티켓 가격의 1/10 값으로 볼 수 있다. 향유비용이 싼 장르의 시장 분위기는 짧은 소비주기를 바탕으로 한 극히 트렌디한 형태로 갈 수밖에 없다. 저가형 SPA 브랜드들이 주도하는 패스트 패션 분위기를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그래서 위 홍콩영화산업 사례처럼, 이노베이션 없이 지지부진한 분위기로 콘텐츠 경향이 침체되면 특유의 트렌드성을 충족시켜주지 못해 시장이 괴멸되는 것이다.

그러나 뮤지컬은 위 언급했듯, 비싼 장르다. 그만큼 트렌드성 확보가 절체절명 과제가 아니다. 저렇게 비싼 장르에서 대중은 좀처럼 모험을 하려 들지 않는다. 이미 ‘검증된’ 콘텐츠를 따라잡는 구조, 영화로 따지면 웹하드나 토렌트처럼 ‘콘텐츠 창고’ 역할이 강조된다. 초연에서 호평 받은 공연이 입소문을 타 그 리바이벌이 거듭될수록 성공에 이르고 시장이 탄탄해지는 구조다. 영화에서 2차시장 논리가 뮤지컬에선 영원히 반복되는 1차시장 논리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비싼 티켓 가격만큼이나 일종의 문화허영 논리도 동시에 발생한다. 문화예술 분야 소비에서 허영이란 다른 게 아니다. ‘모험’이 아니라 ‘이미 검증된 것’을 따라잡겠다는 욕구를 기반으로, 그 ‘검증된 것’을 소비했을 시 남들 눈에 자신의 계급적 위상이 향상돼 보인다 믿고 스스로도 취향의 성질 차원에서 고양된 느낌을 받는 속성을 가리킨다. 똑같이 의류산업 차원으로 보면, SPA 정반대인 명품 브랜드 속성을 그대로 따라간다. 비싼 가격을 주고 처음 보는 브랜드 가방을 사는 사람이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남들이 다 알고 또 알아주는 가방을 메고 싶어 한다.

결국 지금과 같은 외부적 악조건 속에서 생존 방법론을 찾아낸 국내 뮤지컬 업체들 선택은 딱히 틀린 것도, 위험한 것도 아니란 얘기다. 뮤지컬시장은 ‘그런 식으로’ 괴멸되지도 않으며, 질적 성장 동력이란 개념도 뮤지컬시장에선 다분히 다른 논리와 순서로 확보되고 진행된다. 대중시장 차원에서 상당히 독특한 위치에 있는 뮤지컬시장 특성 탓이다.

물론 신작의 중요성, 창작뮤지컬의 필요성이 폄하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반대로 그 지점에서 상황이 원활치 않은 것을 두고 시장의 질적 저하를 논할 이유 또한 없다. 현재로선 좋은 방편이다. 이후는 시장의 요구가 변화함에 따라 또 다시 모습을 바꿔 자연스럽게 다른 전략으로 이동될 것이다.

애초 대중문화산업은 누군가의 이상주의적 설계로 시작된 게 아니라, 시장경제 기반 하에서 소비자 대중에 적응하는 형태로 자연스럽게 성립된 것이다. 그리고 좋은(혹은 좋다고 생각되는) 쪽이 선택되는 게 아니라 그저 필요가 발생한 쪽이 선택되는 게 자유시장경제 본질이다. 그런 점에서 저 “시장의 질은 나빠졌다”는 평가는, 공급자 측이 소비자 대중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나 할 수 있는 얘기지, 공급자 측 문화예술 철학이 가리키는 방향과 어긋난다고 해서 붙여질 수 있는 오명은 아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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