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성룡 취급으로 본 중국 엔터환경

홍콩 액션스타 성룡의 신작 ‘쿵푸 요가’가 지난 3월29일 조용히 국내 개봉했다. 4월5일까지 누적관객수는 1만871명. 배급 상황으론 여기서 더 기대할 모양새가 아니다. 흥행도 흥행이지만, 국내용 포스터를 보면 성룡의 현 국내 위상을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쿵푸 요가’ 포스터엔 그의 출세작 ‘사형도수’ 이래 최초로 그의 이름이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다. 성룡은 이제 국내 흥행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이름, 오히려 구닥다리 인상을 줘 기피해야 할 이름이 됐다. 성룡도 어느덧 한국나이로 64세. 전성기가 유난히 짧은 쿵푸 액션스타로선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커리어 마감 풍경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런 성룡도 막상 중국시장에 가면 위상이 확 달라진다. ‘쿵푸 요가’만 해도 그렇다. 정월에 개봉해 현재까지 17억5050만 위안을 벌어들였다. 중국 역대 박스오피스 5위, 중화권 영화 중에선 ‘미인어’와 ‘몬스터 헌트’에 이어 3위다. 그러나 중요한 건, 오직 중국에서만 그렇다는 것이다. 지난 10년여 간 중국 외 지역들에서 성룡 영화 현실은 한국에서 ‘쿵푸 요가’가 당한 취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차이가 벌어진 걸까. 궁극적으론 지난 10년여 간 성룡 영화가 ‘중국영화’로 변모해버린 현실을 들 수밖에 없다.

성룡의 활동무대는 시대별로 셋으로 나뉜다. 먼저 1978년 ‘사형도수’ ‘취권’의 대히트로 슈퍼스타가 된 시점부터 1997년 ‘나이스 가이’로 마지막 4000만 홍콩달러 수익을 돌파했던 때까지가 홍콩 기반 아시아권 스타로서 전성기다. 그 다음 1998년 ‘러시아워’를 시작으로 2007년 그 3편이 나온 시점까지가 할리우드 스타 시절이다. 이때 주 무대는 미국이었다. 그리고 2008년 무렵부터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중국시장 총력기다. 중국은 신선한 신예보다 오래되고 익숙한 노장들에 점수를 많이 주는 문화 분위기다. 늙을 노(老)는 중국에서 극존칭이자 무한한 신뢰를 상징하는 글자다. 이 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중국시장에서 일단 자리를 잡으면, 어마어마한 시장규모 탓에 타 지역에서 떨어진 인기를 만회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바로 이 세 번째 무대, 중국시장에서 발생한다.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은 대중문화 분야에서도 강력한 국가통제를 시도한다. 국가에 도움 되는 문화상품은 적극 밀어주는 한편, 그 반대라면 아예 유통경로를 차단하는 식이다. 이런 국책적 노선을 주선율(主旋律)이라 부른다. 애국적․전체주의적 정신을 고양시키는 문화상품, 중국 공산당 정책 선전임무를 맡은 상품들이 이 주선율 계보에 들어온다. 국내에도 소개된 ‘운수요’ ‘건국대업’ ‘공자’ ‘건당위업’ 등이 대표적 주선율 영화들이다. 이들은 공산당의 적극지원을 받기에 블록버스터급 규모 제작이 가능하며, 그렇게 중국 영화시장 중심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성룡 역시 이 주선율 계보에서 활동하게 된다. 2008년작 ‘신주쿠 살인사건’부터 뭔지 심상치 않더니, ‘건국대업’에도 조연급 출연으로 기여하고, 2011년엔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탄생한 계기를 다룬 노골적 프로파간다 영화 ‘신해혁명’에서 주연을 맡았다. 지나친 정치색 탓에 국내 극장에선 제대로 걸리지도 못한 영화다. 이후로도 그는 ‘철도비호’ 등 주선율 영화들에 주력하며 중국 공산당의 대대적 지원을 받고 ‘예정된’ 흥행가도를 달려왔다.

그렇게 중국 공산당 노선에 충심을 보인 결과, 성룡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친선대사는 물론 2013년엔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지닌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이 됐다. 덕택에 사업적으론 더더욱 일취월장했다. 중국서 세그웨이 수입 대리점 사업을 시작하고, 멀티플렉스 극장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현재 중국에선 성룡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투자한 영화관 37개가 운영되고 있다. 그의 액션연출을 담당하던 JC스턴트 팀도 지금은 스턴트 코디네이터부터 조감독까지 인력과 시스템을 완비한 엔터테인먼트 에이전시로 거듭나고 있다.

그렇게 성룡은 ‘중국의 대표스타’가 됐다. 그 대가로 잃은 것은, 중국 외 모든 국가 시장이었다. 누가 성룡 영화를 보러와 중국 신해혁명에 대한 강의를 듣고 싶겠나. 또 누가 1940년대 중국의 항일투쟁사를 보고 싶겠나. ‘쿵푸 요가’마저도 그렇다. 영화 중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상을 언급해 중국 공산당 시책에 야합한 프로파간다 영화란 비판이 영화 무대가 된 인도 측 언론들로부터 쏟아지고 있다.

그래도 성룡은 끄떡없다. 할리우드 스타 존 쿠색, 에이드리언 브로디 등을 불러와 ‘블레이드 드래곤’도 만들고, 할리우드에서도 여전히 그를 불러 ‘스킵트레이스: 합동수사’ 같은 영화에 출연시키기도 한다. 성룡이 참여해있으면 그 영화는 저 황당한 외화개봉 제한조치를 지닌 중국시장에서도 ‘당연히’ 개봉해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성룡의 변모한 커리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로부터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파악해둬야 할 것은 하나다. 중국은 그 막강한 시장 가능성을 무기로 ‘성룡마저’ 선전선동용 도구로 만들어낸 국가란 점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그런 역할을 감당해 도맡아줄 게 아닌 다음에야 그 누구라도 위태로울 수 있는 시장이란 얘기이기도 하다. 비단 사드 문제로 비롯된 정치적 갈등 상황만이 문제는 아니란 얘기다. 특히나 ‘교류’ 차원 흐름이 원활하게 돌아가야만 동력을 얻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면, 중국처럼 애초 자유시장이 성립돼있지 않은 시장 환경은 그 자체로 지뢰밭이란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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