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풍경소리] 진정한 보시란

사회적으로 기부문화가 퍼지면서 나눔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나눔이라는 말이 지닌 뜻을 찾아보면 ‘자기의 것을 갈라서 나누어 주다’ 이다. 이런 뜻을 가진 나눔이라는 말은 불교의 보시(布施)라는 단어가 바로 그것이다. 보시는 자비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재물이나 불법을 베푸는 것을 뜻하고 한편으로는 불가에 재물을 바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보시는 불교도들의 실천덕목인 육바라밀 가운데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이다. 베푼다는 뜻의 보시는 부처님도 강조한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보시를 하는데 있어서 기본이 되는 정신은 조건 없이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참된 보시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한다. 무주상보시란 말 그대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이르는데 금강경에서 볼 수 있다. 이는 내가 베풀었다는 생각조차 버리는 게 우선이다. 무엇을 베풀었다는 것도 마음에 남기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서 누구에게 베풀었다는 것 역시 지워버린다. 보시를 하기는 했으되 다른 마음이 하나도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하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이런 보시를 진정한 보시라고 한다. 보시라는 것을 어렵게 생각 할수 있다. 재물을 베풀어야 하니 선뜻 마음이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보시는 단순히 재물을 베푸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 말씀에 의하면 보시는 복을 짓는 일이다. 마음을 다해 보시를 하면 넉넉한 복을 받게 되고 보시에 인색하면 받을 수 있는 복이 줄어든다는 의미와도 같다. 재물을 나누는 것만 보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빈곤한 사람에게는 재물을 베풀면 되고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희망을 갖게 하는 좋은 말을 나누는 것도 보시이다. 외로운 사람을 따뜻하게 대해주고 함께 하는 것도 훌륭한 보시가 된다. 중생들을 평안하게 해주는 어떤 것도 보시인 것이다.

필자가 주석하고 있는 월광사에도 때마다 보시를 하는 분이 있다. 알찬 사업체를 운영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이기는 하지만 부담이 될 정도로 하지는 말라고 권하곤 했다. 그러나 그 분의 얘기는 달랐다. “이렇게 보시를 하면 부처님의 가피를 흠뻑 받습니다. 보시한 이상으로 돌려받으니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보시를 할수록 더 좋아지는데 어떻게 안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인지 그는 항상 즐거운 얼굴이며 사업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나눔을 권하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 “가진 게 없어서 어렵습니다.” “제가 요즘 이렇게 일이 꼬이고 있어서 베풀 여력이 없어요.”

내가 가진 것이 없어서 베풀기 어렵고 내가 힘들어서 베풀 수 없다는 것은 타당한 말이다. 불가에서는 재물을 베푸는 것도 힘들지만 더 힘든 것은 마음을 베푸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가진 게 없어도 마음을 베풀 수 있다. 마음을 나누는데 재물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일이 안 풀려서 남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는 말에 부처님은 다르게 대답한다. 일이 꼬여서 남을 돌아보지 못하는게 아니라 그런 결과로 인해서 복을 받지 못하기에 꾀하는 일들이 계속 꼬인다는 것이다. 앞뒤가 바뀌었다는 말이다. 보시는 가진 게 없다고 못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주어진 상황에 따라 내가 가진 것을 부처님과 남들에게 베풀면 그것이 보시이다.

김상회 (사)한국역술인협회 중앙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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