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SM, 인도네시아 진출의 '진짜 의미'

연예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가 인도네시아 진출을 선언했다. 3월1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서밋’ 연사로 나선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는 “SM엔터테인먼트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서 가장 많이 ‘좋아요’를 누르는 나라가 바로 인도네시아”라며, 올해 인도네시아에서 아이돌 선발 오디션을 열어 자사소속 아이돌 그룹 NCT 아시아팀 멤버를 뽑겠다고 발표했다. 또 현지기업과 함께 조인트 벤처도 설립할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이 회장은 그러면서 “동양의 할리우드를 만들기 위해선 인구 대국이자 젊은 세대 비율이 높은 인도네시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확실히 인도네시아는 비단 한류뿐 아니라 모든 종류 국내 산업에 있어 매력적인 시장이다. 2억6000만 명에 달하는 세계 5위 인구를 지녔다. 그중 구매력 있는 중산층은 한국인구 배가 넘는 1억2500만 명 선으로 추산된다. GDP는 세계 16위권, 지난 2010년 이후 소비 지출액 평균 증가율 역시 18%로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거기다 ‘조코노믹스’로 불리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경제개혁이 상당한 성과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특히 한류 산업에 장점이 많다. 이수만 프로듀서 변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도네시아는 꽤 오래 전부터 가장 열렬한 한류사랑 국가 중 하나로 꼽혀왔다. 심지어 조코 대통령조차 자신의 딸과 함께 슈퍼주니어 콘서트에 다녀왔음을 밝힌 바 있다. 현지 활동 가수 이루는 이미 국민가수 급으로 성장했고, 전 엠블랙 멤버 천둥도 현지 영화 출연이 확정됐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 역시 이에 고무돼, 지난 2012년 슈퍼주니어 공연 이후론 웬만한 아이돌그룹 중 인도네시아 공연 한 번 안 다녀온 팀이 없다. 박보검 등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인구의 60.8%가 35세 이하인 ‘젊은 나라’여서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과 열정도 그만큼 높다.

인도네시아는 확실히 한류의 미래 중 하나가 맞다. 모든 환경이 최상이어서가 아니다. 그러나 이른바 셜록 홈즈 식 소거법으로 생각해보면 남아있는 카드 중 가장 유력한 것이 된다.

동북아시아는 서서히 한류 진출에 있어 매우 불편한 시장임이 드러나고 있다. 양대 시장 일본과 중국 모두 그렇다. 일본과는 과거사 문제로, 중국과는 안보 문제로 그렇다. 정치사회적 폭탄을 하나씩 안고 장사하는 시장이다. 그러니 이쪽에서 제대로 된 장기투자가 들어가기에도, 상대측에서 신뢰관계를 담보로 터전을 마련하기에도 모두 어렵다. 소위 물 들어왔을 때나 단타로 노 젓다 돌아오는 시장들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최소한도 이 같은 ‘폭탄’ 문제에선 어느 정도 자유롭다. 과거사로 얽히지도 않았고, 외교상으로 딱히 부딪힐 일도 없다.

한편 한류의 발동 계기도 주목해야 한다. 일본이나 중국이 콘텐츠발 한류, 즉 상식적 문화콘텐츠 교류 단계로 진행된 한류라면, 인도네시아는 조금 색다르다. 2002 한일월드컵 계기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폭등해 문화 콘텐츠로 옮겨 붙은 경우다. 월드컵 화면들을 통해 한국의 응원문화 등 한국인의 ‘기질적 측면’에 호감을 느껴 문화 콘텐츠로 옮아갔다는 순서다. 즉 한국인 그 자체에 대한 호감이 동력이 됐다는 점에서, 자국 유사상품이 등장하면 바로 시장이 교체되는 일본이나 중국보다 훨씬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이다.

한류란 우리가 직관적으로 예측하기 쉬운 흐름이 아니다. 직관적으론 당연히 유사한 인종 국가들 내 흐름, 즉 동북아시아 내 흐름이 가장 안정적인 것으로만 여겨진다. 유사인종이면 유사정서를 지녔으리란 지레짐작 탓이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당장 일본만 해도 ‘겨울연가’ 이후 대형히트 드라마는 나온 적이 없고, 한류상품에 열광하는 소수 오타쿠층을 형성했을 뿐이다. 반면 인종 자체가 다른 남미에선 한류가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남미 식 텔레노벨라와 형식은 물론 정서적으로도 꼭 닮은 한국 TV드라마가 그 시발점이 됐다. 그 여파가 아이돌 등으로 퍼져 중심부 진입 직전까지 왔다.

한편 용 꼬리가 뱀 머리보다 낫다는 식 시장개념도 점차 허랑한 것이 되고 있다. 아직 규모가 크지 않아도 성장 가능성 높은, 무엇보다 이미 충성도가 갖춰진 시장의 탄탄한 시장기반이란 게 미래 산업 방향에 있어 얼마나 리스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환경인 지 계산해낼 수 있다면, 결론은 달라진다.

물론 대중문화시장은 어차피 일종의 도박판이 맞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 그러나 그와 같은 불확실성과 저 ‘폭탄’들을 동일선상에 놓고 보긴 힘들다. 동북아시아의 정치사회적 대립과 갈등은 상수다. 이를 문화 보복으로까지 넘겨 시도하는 나라가 있다면 사실상 폭탄 이상의 문제다. 시장기반의 파국이 된다. 생각해 보면 한중일은 엄밀히 말해 국경이 붙은 나라들이다. 정치사회적 트러블은 언제나 있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기원전 4세기에 씌어진 고대문헌 ‘아르타 샤스트라’엔 지금 전 세계가 알고 있는 “적의 적은 친구다.”의 원전 격 문구가 등장한다. “인접국의 인접국은 우방국이다.” 인도네시아는 다행히 중국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이고도 있는, 인접국의 인접국이다. 그리고 현재 중국과 국경이 닿고 있는 인접국의 인접국은 총 16개국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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