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준의 독한 S다이어리] 슈틸리케 감독의 로맨스… 사랑일까 이별일까

[스포츠월드=권영준 기자]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그냥 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넌 그게 문제야.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미안하다는 말뿐이야.”

“아니 그럼 어쩌라고.” “본인이 잘못했으면서, 화내는 거야?”

“아 미안하다고.” “아니 뭐가 미안한 줄 알고 미안하다는 거냐고?”

연인은 서로 사랑을 갈구한다. 사랑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어김없이 지적하고 비판하며 심할 경우 비난을 하기도 한다.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정정과 이해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더 큰 사랑이 싹트거나, 반대로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래서 연인 사이의 다툼은 끝이 없다. ‘칼로 물베기’라고 하지만, 이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 싸움에 휘말려서는 도대체 답을 찾을 수 없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이 뫼비우스 띠와 같은 대화 공간에 갇힌다. 발끈해서도 안 된다. 언제나 서로 냉정하면서도 따뜻해야 한다. 이것이 연인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는 축구 국가 대표팀과 이들을 바라보는 언론, 팬과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언론과 팬은 언제나 대표팀의 사랑, 즉 승리와 좋은 성적을 갈구한다. 충족되지 않으면 비판을 가한다. 서로 상처를 입고 입히며, 실망을 하기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이 과정을 냉정하고 따뜻하게 넘겨야 한다. 그래야 한국 축구도, 팬도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슈틸리케 감독의 행동은 이러한 연인의 굴레에서 벗어난 모습이었다. 지난 23일 중국전 패배는 선수와 감독만큼 언론과 팬들에게도 충격이다. 팬들이 더 실망한 것은 패배 자체에 있기도 하지만, 패배를 당하기까지 과정과 내용에 있었다. 답답한 공격과 무기력한 수비에 고개를 숙였다. 슈틸리케 감독의 전술은 무색무취로 비쳐졌고, 후반 김신욱(전북), 황희찬(잘츠부르크), 허용준(전남)을 교체 투입한 용병술 역시 아무런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

패배에 화가 난 것도 있지만, 자존심을 다쳤다. 패배는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때 졌었다’가 전부이다. 앞으로 이기면 된다. 하지만 다친 자존심을 어루만져 달래줘야 한다. 상대를 이해하고, 그 마음을 알아줘야 한다. 그리고 함께 아픈 마음을 나눠야 한다. 그런데 슈틸리케 감독은 오히려 발끈했다. 그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상대가 스리톱으로 나선 상황에서 포백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어떤 전술로 나갔어야 할지 내가 묻고 싶다”고 발끈했다.

연인 관계에 비유하자면 ‘발끈’은 시작부터 패배를 인정한 것이며, 2∼3배의 사과를 동반해야 할 상황으로 치닫는 것이다. 사실 슈틸리케 감독 말이 맞다. 축구를 많이 알아도 언론인이나 팬들보다 그가 더 자세하고 많이 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앎’이 아니라 ‘이해’였다. 그의 전술 자체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그 전술이 왜 중국을 상대로 효율적이 못했느냐를 물은 것이다. 그것에 대한 답이 갈구했다. 사랑했으니깐.

국가대표 감독 자리는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렵다. 슈틸리케 감독이 스스로 밝혔듯,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자리이다. 승리를 해도 비판이 따르게 마련이다. 연인도 마찬가지이다. 뜨겁고 행복하지만, 그만큼 차갑고 힘들다. 다만 그 어려움과 힘겨움을 극복할 만큼 사랑이 있기 때문에 연인은 다투면서도 만나고, 싸우면서도 사랑한다. 대표팀 감독직도 같지 않을까. 언론이나 팬이 어렵고 힘들지만, 그만큼의 뜨거움이 있다. 그래서 다투면서도 사랑한다. 이러한 관계가 지겹고 싫다면, 종착지에는 이별뿐이다. 헤어져야 한다. 이별하면 그만이다. 슈틸리케 감독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 아닐까. 

young0708@sportsworldi.com / 사진 =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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