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미녀와 야수’ 흥행 보며 영진위가 해야 할 일

3월16일 개봉한 실사판 ‘미녀와 야수’가 어마어마한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개봉 3일 만에 관객 수 100만 명을 돌파하더니, 8일째인 23일엔 200만 명까지 돌파했다. ‘겨울왕국’ 이후 역대 두 번째 1000만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한편 북미지역에서도 ‘미녀와 야수’는 기록적 흥행을 보이는 중이다. 첫 주말 3일간 무려 1억7475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역대 오프닝 성적 6위, 3월 개봉작들 중에선 당당 1위다.

그런데 이 같은 첫 주말 흥행보도에서 한국과 미국의 차이가 있다. 미국선 단순 흥행수치 외에 다양한 정보가 더 붙는다. 예컨대 ‘미녀와 야수’는 관객들에게서 A+부터 F까지 평점 중 A를 받았다. 그리고 관객의 72%가 여성, 28%가 남성이었다. 한편 45%의 관객은 25세 이하였다. 이는 첫날 관객 기준이고, 첫 주말 3일 통계는 또 조금 다르다. 3일 기준으론 60%가 여성, 40%가 남성관객이었고, 52%가 25세 이하 관객이었다.

당연히 흥행통계는 세분화된 편이 좋다. 일단 제작사 측에서 관객 동향을 파악할 수 있고, 근래 관객 취향이나 흐름을 다양한 지표로 확인할 수 있어 미래계획을 짜는 데도 더없이 도움이 된다. 관객평점은 또 다른 얘기다. 이는 극장 측에 중요한 정보다. 평점 떨어지는 영화는 입소문 탓에 뒷심이 발휘되지 않지만, 그 반대 경우는 같은 이유로 롱런이 가능하다. 어느 영화를 얼마나 걸고, 또 언제 내릴지 결정하는 데 도박성을 최소화시킨다.

위와 같은 세밀한 통계는 미국에서 시네마스코어란 민간단체가 내고 있다. 1979년 설립됐다. 처음엔 신문이나 라디오 등에 기사거리로 정보를 제공하다, 1989년부턴 그 중요성을 인식한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에 통계자료를 팔고 있다. 미국 전역을 15개 섹션으로 나눠 전반적 관객 동향을 보고한다. 관객들에 설문지를 돌려 정보를 얻는데, 대가가 따로 없음에도 의외로 회답율이 65%나 된다. 영화를 본 뒤 1차적으로 자기 의사를 표명하는 일에 다들 흥미를 느끼는 탓이다.

한국엔 이런 시스템이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각 제작/배급사에서 따로 조사를 한다곤 하지만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 언론은 그저 “극장은 여성관객들로 그득 차 있었다”는 식 인상비평 수준으로만 이를 다룬다. 유일한 공개 자료는 영화예매사이트 맥스무비 측 자료 정도인데, 회원들 전체 나이/성별/지역 등등이 어떻게 분포돼있는지 알 수 없는 표본군에서 제대로 된 통계가 나올 리 없다.

한국 정도 규모 영화시장에서 어쩌다 이런 통계 시스템이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나 의아해진다. 혹 이런 것도 ‘자사 정보’란 생각에 각 제작/배급사끼리 서로 공유하려 들지 않는 거라면, 숲을 보지 못하는 태도다. 당연히 데이터는 광범위한 영역일수록 더 정확하다. 그리고 이런 데이터는 비단 개개 제작/배급사 차원에서만 중요한 것도 아니다. 예컨대, 영화산업에 뛰어들 의향을 갖춘 미래인력들 입장에서도 이 같은 통계자료의 공개는 자신들 비전과 실제 시장 상황을 비교해가며 더 섬세한 미래비전을 성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민간에서 아직 이런 흐름이 나오지 않았다면, 공기관은 바로 이런 때 역할 하라고 있는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얘기다. 독립영화 지원 놓고 이러쿵저러쿵 논란 일으키느니, 이런 시스템 구축에 먼저 힘써주는 게 진정 ‘영화진흥’과 관련된 일이다. 영화 입장료의 3%를 자동 징수해 조성되는 영화발전기금이 마침 2021년까지 연장됐다. 이런 기금의 역할이 바로 이 같은 시스템 구축이다. 그렇게 한시적으로 시험가동해보고, 각 제작/배급사들이 그 필요성을 절감한다면 그때 민간 차원으로 돌려 제작/배급사들 지원금으로 운영하면 된다.

영화는 예술일지 몰라도, 그 예술품을 공급할 자본을 회수하고 돌리는 일은 경제와 과학의 영역이다. 이런 시스템을 도입해 관객들 니즈를 더 명확히 파악했을 시 얼마나 많은 영화들이 구제됐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데이터가 없으면 오히려 영화는 천편일률화 된다. 기존 흥행공식이랍시고 대충 뒤섞어 재탕 삼탕만 하게 되기 때문이다. 관객의 변해가는 니즈를 관찰할 수 없으니 새로운 가능성도 포착 못한다. 그러니 변화도 없다. 도전은 뚝심으로 하는 게 아니라 데이터로 하는 것이다. 섬세한 데이터 구축은 오히려 다양성 확보에 일익을 담당한다. 이정도 작업조차 진지하게 고려하며 시도해보지 않을 거라면, 대체 영화라는 장르에 왜 공기관이 따로 존재해야 하는 건지 의문이 갈 수밖에 없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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