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풍경소리] 복과 명을 감하는 '식탐'

대다수 사람을 포함한 동물에게 있어 식욕 수면욕 성욕은 본능적이며 기본적인 욕구라 한다. 굳이 차이점을 들라면 사람들에겐 재물욕과 사회적 욕구인 명예욕이 더 있는 것이 차이점이 될 것이다. 이 사회적 욕구는 인간이 문명을 만들어내는 원초적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이어서 채워지나 채워지지 않으나 생명의 유지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나 식욕과 수면욕은 생명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원초적인 중요성이 있다. 이런 이유로 역의 관점에서는 보통 어떤 사람의 복을 애기할 때 재물복보다도 식복(食福)이 있는 사람을 우선으로 친다. 또한 식복이 있는 사람치고 재물복이 없는 사람이 드문 것을 보면 이 식복이야말로 만복의 근원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즉 역(易)에서는 식신생재(食神生財) 라는 용어로 일부 정리를 할수 있다.

어쩌면 지극히 단편적인 얘기일 수 있겠으나 식복이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배경은 다분히 농경사회 전통의 결과라고 본다. 온전히 인간의 노동력에 의해 먹을 것을 생산하던 전통사회에서는 좋은 날씨가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풍작을 기대하기 어려웠고 혹여라도 가뭄이나 홍수로 인해 작황이 줄어들면 이는 바로 생사와 직결되는 식량부족의 어려움을 겪었던 탓이라 본다. 물론 물질이 풍요로와진 현대사회에서도 선진국에도 홈리스가 있고 아프리카의 황량한 가문 땅에서는 식량부족 물부족으로 많은 고초를 겪고 있는 것을 본다면 과거와 현재 시대의 단순비교는 그리 명쾌해 보이진 않지만 말이다.

인간의 탐심을 얘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식욕인데 음식 먹을 때 탐심이 많다는 것은 먹는 모습만 보아도 알 수가 있다. 음식을 먹을 때 깨작거리는 사람들은 보통 성격이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들이 많다. 반면에 게걸스럽게 먹는 사람들은 보통 식욕을 주체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자기 욕심을 잘 제어하지 못하는 성향을 보여준다고 행동심리학자들은 얘기하기도 한다. 사실 식욕이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욕심도 많은 것을 본다. 욕심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적당함을 모르는 것은 자기제어의 힘이 약함을 보여주는 것이고 또 다른 고통의 원인이 되기에 식욕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일에도 높은 자제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불교경전에도 “음식의 적당량을 알아라.”라는 구절이 자주 보이는데 깨달음을 얻은 선사들은 물론 대부분의 수행자들은 과식을 매우 저어하고 있다. 수행자들이야 많이 먹게 되면 식곤증으로 졸음이 와서 수행에도 방해가 되지만 배부르다고 느끼기 한 두 숟갈 전에 멈추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이는 매우 훌륭한 ‘놓는 연습’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일반인들도 이렇게 먹는 것의 적당한 양을 알고 또 자제할 수 있다면 웬만한 다른 일에도 적당한 절제가 가능해지니 몸과 마음을 다스림에 이만한 것이 없으리라고 본다. 쉬운 얘기인듯하지만 행동으로 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무엇보다 사주명리학에서는 많이 먹는 것은 복과 명을 감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사람에게 평생 동안 허용된 식복이 있는데 평상시에 과식 등으로 미리미리 써버린다면 이는 자신의 명(命)을 단축하는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산해진미를 즐기지 말고 산나물과 같은 거친 나물과 잡곡밥과 같은 소식(疏食)과 채갱(菜羹)을 성인을 즐겨먹는다 라는 글이 논어의 향당편에 나오는 것이다.

김상회 (사)한국역술인협회 중앙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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