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강동원, 조상에 대해 잘 모른 죄

이른바 ‘강동원 친일파 외증조부’ 사태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 지난 1일 한 온라인 영화 사이트와 블로그 등을 통해 배우 강동원의 외증조부 이종만 씨가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거진 사태다. 사실 연예계 차원에선 5일 강동원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 측에서 사과 보도자료가 나온 시점에 종결된 사태라고 봐야한다. 그러나 이제 사안은 정치사회 영역으로 번지고 있다.

6일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배우 강동원 외증조부 친일파 논란을 보면서 일제시대 기업인이 일제에 협력했다고 친일파 낙인을 찍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며 “일제는 살아있는 권력이기 때문에 기업을 영위하려는 사람이라면 일제의 협력요구를 거절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때문에 이런 기업의 권력에 대한 협력 행위를 친일로 모는 것은 기업의 속성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같은 날 한겨레도 드물게 지난해 8월17일자 게재칼럼을 다시 끌어와 입장을 내놓았다. 칼럼은 “이종만이 일제에 낸 돈은 일종의 보험금이었다. 그가 노동자 농민 교육사업으로 환원한 금액은 80여만원(지금 화폐가치로는 800여억원)에 이르렀다. 자신의 땅 157만평도 내놓았다”며 “누가 ‘일하는 사람이 다 잘사는’ 이상에 모든 걸 바친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라는 시각을 내놓았다.

이데올로기상 흔히 좌우로 표현되는 위 양 진영 입장의 공통점은 하나다. ‘친일’은 지금 기준으로 판단하기에 애매하고 미묘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 시점 모든 판단기준은 민족문제연구소 측 친일인명사전 하나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리고 이 사전은 2009년 발간 이후 끝없이 공정성 논란에 휩싸여왔다. 하태경 의원 변처럼 “일제시대는 지금보다 권력의 기업에 대한 생사여탈권이 훨씬 더 강했던 시절”이었음을 돌이켜보면 더더욱 그 ‘기준의 절대성’에 의문이 간다. 어디까지를 친일로 보고 어디까지를 그저 당대 생존투쟁으로 봐야할 지는 여전히 막막하다. 그 기준이 통일된다는 건 그 자체로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와중에 더 흥미로운 정보도 알려졌다. 강동원 측 사과문에서도 드러났듯, 그의 외할머니는 또 일제시대 당시 구포만세운동 주동으로 수감됐던 독립운동가 노원필의 후손이란 점이다. 한 집안에 친일파로 몰린 인물과 독립운동가 후손이 시아버지와 며느리로 함께 했단 얘기다. 당시 시대상이 그랬다.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사람들 간 관계뿐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 차원에서도 그렇다. 친일과 항일이 뒤섞인 인생들이 워낙 많다.

물론 또 다른 종류 비판도 있다. 외증조부 사연이야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그걸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굳이 과거 인터뷰에서 떠들고 자랑스러워 한 건 잘못이란 지적이다. 한 마디로 ‘잘 몰랐던 것’도 잘못이란 얘기다. 그런데, 일반대중 차원에서도 자기 조상에 대해 좋은 점만 간추린 소소한 사연들 외엔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요즘도 전직 대통령들을 일제시대 창씨개명 이름으로 부르는 정치적 공격이 틈만 나면 횡행하지만, 당시 조선인들 중 창씨개명 비율은 무려 79.3%에 이르렀다. 오늘날 모두가 양반집안 후손인 양 얘기하고 있지만, 1910년 전국호구조사 당시 양반가구 비율은 전체의 1.9%에 불과했던 것과 같다. 아니 애초 성(姓)을 갖고 있는 인구 자체가 갑오경장(1894년) 때까지 전체의 30%에 못 미쳤지만, 다들 성은 물론이요 본(本)까지 당연한 듯 읊는다.

우린 사실 우리 조상에 대해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도 어쩌다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상당부분 의도적으로 그렇게 됐다. 내 조상 성과 본, 그리고 신분 여부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듯이, 조상이 민족문제연구소 단독기준으로나마 친일파였는지 어땠는지도 알기 힘들단 얘기다.

한편 ‘공인’이라면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여튼 공인이 된 순간 하나하나 말조심하고 되도록 말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식이다. 그런데 그 공인이란 개념도, 그리고 그 역할에 대한 책임 영역도, ‘친일파’란 개념만큼이나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다. 누군가 그 개념을 바로 잡자고 나서도 문제다. 합의가 될 리 없다. 이런 문제는 이미 애매함 그 자체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공격도구화 됐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폭발성 강한 뇌관, 바로 저 ‘친일파’와 ‘공인’이 만난 뇌관이 지금 막 강동원이란 셀레브리티 이름으로 터졌다. 물론 그가 처음도 아니고, 당연히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피할 수도 없고, 애초 피해야 할 이유를 모르고 있는 경우들도 많기 때문이다. 현대사의 비극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에 대해 개그맨 이윤석은 한 방송에서 “친일파 청산 실패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가 안타까워했다”면서도 “다만 지금 와서 환부를 도려내고 도려내다 보면 위기에 빠질 수 있으니까 상처를 보듬고 아물도록 서로 힘을 합쳐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역시도 이 발언에 대해 여지없이 대중의 비판을 받고 사과문을 올려야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