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이병헌, 브래드 피트처럼…

제89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최악의 방송 사고를 일으키며 끝났다. 역대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수상자 봉투를 전달받지 못한 경우는 있었어도, 수상작/자를 잘못 호명하는 경우는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작품상은 결국 ‘문라이트’에 돌아갔고, ‘문라이트’는 남우조연상, 각색상과 함께 3개 부문 수상작이 됐다.

그런데 이 ‘문라이트’에 대해 생각해볼 부분이 더 있다. ‘문라이트’는 작은 영화다. 그러나 그 뒤엔 결코 작지 않은 거물이 자리 잡고 있다. 할리우드 스타배우 브래드 피트다. 그가 차린 프로덕션 회사 플랜B에서 제작한 영화고, 피트 역시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로 크레딧에 올랐다. 플랜B는 지난 수년 간 ‘노예 12년’ ‘셀마’ ‘빅 쇼트’ 등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수작들을 제작해왔다. 작품상만 이번으로 두 번째 배출이다.

남우주연상과 각본상을 수상한 ‘맨체스터 바이 더 씨’도 비슷하다. 그 자체론 작은 영화지만 제작자로 또 다른 할리우드 스타배우 맷 데이먼의 이름이 올라있다. 데이먼도 지난 수년 간 제작자로 함께 활동해왔고, 내년에도 친우인 벤 애플렉 감독작 ‘검찰 측 증인’에서 제작자로 크레딧에 올라있다.

현재 흥행에서 고전 중인 한국영화 ‘싱글라이더’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싱글라이더’도 한국영화계 걸출한 특A급 배우 하정우와 이병헌이 제작에 참여한 영화다. 제작사 퍼펙트스톰필름 대표가 하정우고, 이병헌은 공동제작과 주연을 겸했다. 물론 ‘싱글라이더’는 딱히 작은 영화는 아니다. 약 45억 원가량 제작비가 들었고 손익분기점도 관객 수 150만 명 선이다. 그러나 한 가지 점에선 위 ‘문라이트’ ‘맨체스터 바이 더 씨’와 일치한다. 일반적 경로론 사실상 제작 자체가 어려웠을 수 있는 영화란 점이다. 값비싼 해외 로케를 감행해야 할 기러기 아빠 드라마란 게 그렇게 쉽게 통과될 콘셉트가 아니다.

영화계건 어디건, 대중문화계 스타들 역할은 이런 지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른바 ‘못 만들어질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힘이다. 그게 직접 출연하는 형식이건 제작자로서 배경을 받쳐주는 역할이건 간에, 이들이 지닌 스타성과 인맥, 노하우 등은 할리우드건 한국에서건 모두 동일하게 작용한다. 결국 영화의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역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스타의 힘으로 ‘안 될 영화’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얘긴 아니다. 그러나 얼핏 기존 흥행공식에서 벗어나 위험해 보이지만 발 빠른 감각과 비전으로 추진해보면 또 ‘되는’ 영화들이 있다. 예컨대, ‘문라이트’와 ‘맨체스터 바이 더 씨’도 모두 제작비 대비 흥행에서 성공했다. ‘싱글라이더’는 안타깝게도 실망스런 결과를 낳고 있지만, 브래드 피트나 맷 데이먼도 처음부터 제작업 관련으로 성공을 거둬온 건 아니다. 안목과 노하우가 쌓이다 보면 그렇게 영화산업 사각지대를 메워주는 기능을 기대해볼 수도 있다.

‘싱글라이더’의 부진한 성적이 이처럼 ‘제2의 역할’을 추진하는 야심찬 영화인들을 의기소침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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