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풍경소리] 정유년 또 하나의 단상

중국의 역사는 삼황(三皇)과 오제(五帝) 때부터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삼황은 복희씨 여와씨 신농씨라고 알려져 있으나 어떤 기록에서는 천황씨 인황씨라고 하기도 하나 또 다른 기록에서는 여와씨 대신 축융씨 혹은 수인씨를 넣기도 한다. 그 유명한 하도낙서(河圖洛書) 중에 하도를 만든 이가 복희씨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역사서 ‘사기’를 지은 사마천은 삼황시대를 역사로 인정하기 곤란하다고 하면서 오제 때부터의 역사를 기록했다. 오제(五帝)는 황제(皇帝) 전욱 제곡 제요 제순을 일컫는데 오제의 처음인 황제는 창힐에게 문자를 만들라 명해 현재 한자의 원형이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상형문자이자 뜻글자인 한자의 원형인 문자를 만들게 한 황제는 당연 걸출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었을 것이다. 그 옛날 당시에도 천하의 패권을 다투는 호걸들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는 여느 인물들과 달리 과학적 실용적인 사고를 지닌 총명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었을 것이다.

태어난 지 70일도 못 되어서 말을 하고 모르는 것이 없이 총명했다는 글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도 적지 않았지만 그가 발명해 냈다는 지남차(자석이 달린 수레)는 정적인 치우를 무찌르는데 큰 공헌을 했고 백성들을 다스리는데 유용한 여러 기구를 만들어 농사일에 도움이 되도록 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니 힘과 지혜를 가진 실용적 군주였던 것이다. 여러 제후들과 겨뤄서 중원의 패권자가 되었고 천자가 된 황제는 천하를 잘 다스려서 백성들이 편안하고 즐거운 생활을 누렸다 한다.

물론 역사는 승리자의 기호에 맞춰 편찬되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특히 중국 사람들은 황제를 ‘중국 문명의 할아버지’라고 칭할 만큼 창힐을 시켜 문자를 만들고 영륜에게는 악기를 만들라 명했으며, 대요는 십간 십이지 육십갑자(十干十二支;六十甲子)를 만들라 해서 음양오행(陰陽五行)설과 사주명리학(四主命理學)의 기초를 세웠다 해도 지나침이 없으니 황제야말로 하늘과 땅을 둘러싼 우주의 원리를 직관하고 통찰했던 것이다.

부인인 유조에게는 누에치는 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도록 했고 황제 자신은 배와 수레와 집짓는 법 등을 발명했다 하니 어찌 사람들이 황제를 일러 ‘중국 문명의 할아버지’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중국의 태평성대라 일컬어지는 요순시대는 황제의 이와 같은 전초적인 문명작업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하늘의 뜻에 거스르지 않으며 땅의 기운에 순응하며 조화하는 덕과 실용의 반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 본다. 황제가 죽은 뒤에는 요(堯)임금이 천자가 되어 나라 이름을 ‘당(唐)’이라 했으며, 또 순(舜)임금은 요 임금의 뒤를 이어 천자가 되어 나라 이름을 ‘우(虞)’라 했다. 이 요·순 두 임금은 가장 훌륭한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다. “요 임금의 어진 마음은 하늘과 같고 지혜는 신과 같았다. 백성들은 요 임금을 해처럼 따랐으며 구름처럼 바라보았다”라고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는 기록되어 있다. 필자는 역에 신념을 실어 용기를 고취시키는 역할을 하는 한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 글에 마법을 걸어보고자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어진 마음과 지혜는 하늘과 같고 국민들은 대통령을 해처럼 따랐으며 구름처럼 바라보았다.” 말이 씨가 되는 법이니 이렇게라도 해서 그 동안의 충격과 혼란을 이제는 추스르고 겸손한 노력으로 대한민국의 미래가 해와 달 별과 같이 힘이 되고 희망이 되어보길 바래보는 것이 정유년(2017)의 또 하나의 단상이다. 

김상회 (사)한국역술인협회 중앙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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